Our BlueBird, 現.

나의 파랑새,

by 라파엘

써도 모자란 사랑을 주워다 묻은 물기를 닦는다. 나에게 박한 내가, 널 품을 때 몰인정하지 않기를. 내 사랑이 무르익어서, 네가 볕을 받기를 바란다며. 너는 어떤 소원을 들고 있을까. 마침내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현아, 나는 이런 기도를 했어.

나약한 나로부터 우릴 지켜 달라고.


넌 모를 거야. 우린 태어나기 전부터 서로를 향해 손을 뻗고 있었어. 애당초 예정된 인연이라는 거지. 또 넌 모를 거야. 시계 초침과 분침이 포개지며, 우리가 만났고, 파랑새가 태어났다는 것을.


서툰 내 걸음걸이를 봐. 마냥 딱딱한 어투도.

계산하지 않으려 치열하게 악전고투를 벌이지만, 못난 성정은 늘 분주하게 암산을 해. 사랑에서 비롯됐다는 구차한 변명은 늘이고 싶지 않아. 그런 거짓된 말은 파랑새에게 어울리지 않아. 우리의 파랑새를 위해, 우리를 위해,


내가 너에게

운명처럼 다가가도 될까?


유순하게 모자란 우릴 봐.

모든 순간을 세어 보지 않아도 우린 기적이 맞아.


내가 너를 위해 정의되고 있어. 우주가 정의된 단어를 파랑새에게 전하고 있어. 현아, 세상이 넓어지고 있어. 깊어지고 있어. 파래지고 있어.


가장 연약한 너를 개화해 볼래?


[behind]

한참을 여름처럼 앓은 글이다. 시와 수필, 그 어딘가에서 아슬한 줄타기를 하며 스스로도 ‘더 나은 방향’의 퇴고를 하기 위해 무진 애를 썼고, 그만큼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던 글이다. 하지만 그만큼 내가 좋아하는 글이기도 하다.


나보다 한참 어린 친구가 빌려 준 예쁜 마음에 보답하듯 쓴 글이다. 또한 처음에는 빅나티의 ‘daylight’를 들으며 썼는데, 한참 시간이 흐르고 나서 퇴고를 하려니, 지금의 나는 또 다른 라파엘인지라 전혀 다른 분위기의 노래를 들으며 퇴고를 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 한로로의 ‘0+0’이다. (유명한 곡이니 대부분 알 것이라 믿는다.)


나는 곡을 고를 때, 이 글의 분위기와 얼마나 부합하느냐보다 꽉 막힌 내 글을 잘 써지게 하느냐를 본다. 한로로의 영영이라는 곡은 그런 내게 마법처럼 꽉 막힌 손을 탁 트이게 해 줬다.


모쪼록 그대들에게도 색다른 옷을 입은 Ourbluebird라는 글이 마음의 쉼이 되기를, 쏟아지는 여름 장마에서 춤을 추게 하는 글이 되기를 바란다.

월, 수,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