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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권 Nov 11. 2022

위로하는 애벌레3

-천상의 색을 빚다

시간의 주름이 깊게 새겨진 미라      


 주홍 박각시나방 애벌레는 낙엽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서 집터를 닦는다. 마른 낙엽, 어느 정도 썩은 낙엽, 잔뿌리들을 모아 모아서 제법 크게 꾸러미를 만든다. 그런 다음, 꾸러미 속에서 실을 뽑아 타원형의 폭신폭신한 방을 꾸미고 편안하게 몸을 눕힌다. 세상의 모든 언어가 따라오지 못하는 곳에 와서야, 애벌레는 불안전하고 약한 자신의 존재가 자랑스러워졌다. 이미 몸속 배설물을 다 짜낸 상태라서 육신의 무게도 느껴지지 않는다. 더 이상 버릴 것이 없는 아주 가벼워진 것들은, 비로소 어떤 영원함을 느낀다. 그의 조상들이 그랬듯이, 애벌레는 미라로 변하는 주문을 천천히 읊조린다. 죽어서야 미라가 되는 인간하고 달리 그들의 미라는 살아있으며, 새로운 환생을 위한 마법의 시간이 시작된다.

나방은 겉에서 보이는 날개 바깥쪽보다는 보이지 않는 날개 안쪽의 색이 더 미적으로 세련되고 신비롭다. 그 색은 인간의 과학의 영역에서 벗어나 있다.

 인간은 그것을 번데기라고 부른다.

 어둠으로 새로운 형체를 빚어내는 마법, 어떤 인간의 과학으로도 풀 수 없을 만큼 신비로운 것들이 그 안에서 새로운 시간을 만들어낸다. 몸은 서두르지 않는다. 그러나 잠시도 멈춤이 없이 미라로 변해간다. 비밀스럽고도 아름다운 의식이다. 한동안 움직이지 않고 침묵의 시간을 갖는다는 것. 어쩌면 뇌를 가진 동물들에게는 그런 과정이 꼭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인간들도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침묵하는 법을 터득하려고 하지 않는가. 애벌레는 1주일 만에 쭈글쭈글 시간의 주름이 깊게 깊게 새겨진 완벽한 미라로 변신했다.

 피가 흐르는 미라, 그것은 내면에서 살아가는 영적인 삶이다. 미라의 내면에서는 끊임없이 시간이 흘러간다. 천천히 새로운 목숨을 설계하여 탄생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단순하게 헌 옷을 벗어 던지고 몸 색깔을 바꾸는 차원이 아니다. 새로운 환생을 꿈꾼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라가 되어 새로운 목숨을 기원하는 과정을 필수적으로 거쳐야 한다. 과정을 무시하고 환생이라는 결과를 얻을 수 없다. 미라의 기도가 1년 정도 이어지기도 하고, 몇 개월, 며칠... 각자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애벌레로 살아온 시간보다 훨씬 길 수도 있다.

 미라는 잠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만의 삶을 살고 있다.

 나는 새로운 환생의 전초기지인 미라 집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그런 곳에서 잠들고 싶다고 얼마나 중얼거렸는지 모른다.      


연분홍의 경건함     


애벌레의 몸속에는 봉숭아를 먹어서 주황색으로 빚어내는 단지가 들어있다. 그래서 애벌레는 나방이 되었을 때 아름다운 주황색 옷을 입고 나온다.

 밤낮이 스무 번 정도 바뀌자, 미라가 꿈틀거린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누군가의 부름이 들리는 것 같았다. 미라는 응답하듯 몸을 떨었다. 그러자 머리 쪽 단단한 피부가 갈라지면서 새로운 생명이 꿈틀거리며 나온다. 인간도 자궁에서 그렇게 머리부터 세상으로 나왔다. 미라에서 나온 나방은 자신이 애벌레였을 때 공들여 지은 집안에서 한동안 휴식을 취하다가, 입으로 특수한 마법의 침을 흘려서 벽을 녹인다. 벽에 구멍이 생겼다. 나방은 그곳으로 힘겹게 기어 나왔다.

살모사 패션으로 공포심을 주던 애벌레는 사라지고 마법처럼 아름다운 나방이 태어났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방이다.

 


밤 11시쯤 꽃보다 아름다운 나방이 나타났다. 천상의 색깔이라고 할 만큼 순결한 분홍빛 옷을 입고 있는 요정이었다. 그의 몸속에는 푸른 봉숭아 이파리를 발효시켜서 걸러낸 물감을 보관하는 소중한 항아리 하나가 숨겨져 있다. 나방이 애벌레였을 때, 봉숭아 잎을 모으고 또 모아, 보이지 않는 분홍빛을 모으고 또 모아, 그 항아리에다 숙성시키고 또 숙성시켰다가 저토록 아름다운 옷감을 만들어낸 것이다. 색이 아름다울수록, 그가 애벌레였을 때 열심히 살았다는 뜻이다. 열심히 살지 않고서는 그런 진실이 나올 수 없을 테니까. 그들은 그런 색을 훔쳐 올 수 없고, 돈으로 살 수 없고, 오로지 자기 생을 걸고 만들어내야만 하니까. 그래서 분홍빛 시간이 더 아름답다. 휴대폰으로도 그 색깔을 오롯이 담아낼 수가 없다. 봉숭아 고유의 근원적인 색을 어찌 인간의 과학으로 다 담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어림없다. 온몸에 퍼져있는 연분홍 그리고 날개 안쪽 배에 번져있는 분홍의 경건함이란, 이제까지 보지 못한 색깔이다. 

 나방이라는 존재는 태어나자마자, 누군가를 먼 곳까지 데려다줄 만큼 나이가 들어 보이기도 하고, 놀이공원에 갈 꿈을 꾸면서 솜사탕 맛을 갈망하는 천진난만한 아이 같기도 했으니, 내 눈으로는 전혀 예측 불가능한 목숨이다.      


<이 글은 에세이 <<위로하는 애벌레(궁리, 2022년 11월 말 발행))>>에서 일부를 꺼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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