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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권 Nov 11. 2022

신선이 차려준 새팥밥

 

대학 다닐 때 알게 된 후배 영달이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한 학번 아래라서 후배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그는 나보다 나이가 많았다. 내 앞에서 한 번도 자신의 나이를 밝히지 않았지만 적어도 두 살 이상 많은 건 확실했다. 언뜻 보기에는 얼굴이 갸름해 보였으나 몇 번만 눈빛을 주고받으며 말을 섞다보면 “이 사람은 아주 깊은 사람이구나!”하는 걸 느끼게 하는 힘이 있었다. 그는 겸손이 몸에 베어있어 어떤 상대를 만나더라도 함부로 대하지 않았고, 또한 상대편에서도 절대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은은한 카리스마가 있었다. 목소리도 굵었고, 말수도 많지 않았다. 나는 며칠 전 30년만에 그하고 통화를 하였다. 그는 몇 마디 인사가 오가자마자 “선배님, 보고 싶습니다. 저희집 한 번 놀러오십시오.”하였고, 나는 당장 달려가겠다고 하였다. 

 “자네, 어디 사는가? 소문에는 지리산 깊은 골짜기에서 나이차이 많이 나는 예쁜 여자랑 결혼해서 산다고 하던데......아니, 치악산 어딘가에서 산삼농자 지으며 산다는 소문도 들었던 것 같고......뭐? 전라북도 진안? 깊은 골짜기는 아니고 평범한 마을에 산다고? 허허허, 결혼은 했지? 아이는 몇인가? 아아, 알았네.”

 그는 내 질문공세를 만나서 이야기하자는 한 마디로 다 물리쳤다. 내 고막에서는 지금도 그 너털웃음이 살아나는 것 같았다. 그가 알려준 대로 내비게이션에다 주소를 입력하고 출발한지 2시간이 넘어갈 무렵 하늘이 꾸물꾸물 어두워지더니 기어이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차는 전라북도로 접어들었다. 그의 집까지 1시간 가량 남았다. 눈발이 점점 굵어지자 마음이 급해졌다. 그가 큰길까지 마중을 나왔다. 주름골이 몇 개 패여있고, 흰머리가 몇 가닥 섞여있는 것만 빼고는 예나 지금이나 큰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한창 때보다 살이 약간 빠져서 전체적으로 더 맑아보였다.

 “자네, 똑같구먼!”

 “선배님도 똑같네요!”

 나는 그래 오래오래 끌어안고 있었다. 그러고 싶었다. 대학시절 나는 힘들 때마다 선배가 아닌 그에게 속엣말을 풀어놓고, 그가 따라주는 막걸리 몇 사발 취해 그의 자취방에서 한바탕 뒹굴고 나면 엄청난 위로를 받은 것처럼 다시 살아갈 수 있었다. 그는 선배 같은 후배였다. 그는 나를 밀어내자마자 웃었고, 눈이 하염없이 쏟아지는 하늘을 보고 고맙다고 소리쳤다.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는 날 이렇게 아름다운 눈을 보내주어 고맙다고 하였다. 그의 집은 작은 개울을 건너 제법 큰 산을 등에 지고 앉아있었다. 재실 옆에 지어진 작은 흙집이었다. 원래는 재실에서 살다가 3년 전에 그 흙집을 혼자 지었다고 하였다. 팔랑거리는 눈발이 울타리를 하얗게 수놓기 시작했다. 그는 새순이 돋기 시작하는 봄이 되면 울타리가 마술을 걸기 시작한다고 하였다. 처음에는 울타리를 할 생각이 없었는데, 누가 와서 살아있는 나무로 울타리를 만들어보라는 말을 듣고 조팝나무, 구기자나무, 으름덩굴, 고추나무, 싸리나무, 보리수나무 등을 심기 시작하였다고 하였다. 한 울타리의 식구가 된 그들은 봄부터 가을까지 서로 순번을 정해놓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각자 취향에 맞는 나비와 새들을 불러들인다고 하였다. 하지만 마당을 지나 토방으로 올라섰을 때까지도 집안에서는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그는 곧 밥상을 차려서 들어갈 테니 먼저 방에 들어가 있으라고 하였다. 그는 곧 부엌으로 들어갔고, 나는 본능적으로 나무타는 냄새를 맡았다. 방으로 들어가자 수천 권의 책들이 나를 반겼고, 방바닥에는 길쭉한 앉은뱅이책상이 하나 있었다. 밥상 겸 책상 같았다. 그 어디를 보아도 여자의 섬세한 손길이 거쳐 간 흔적을 발견할 수는 없었고, 벽 어디를 둘러보아도 그 흔한 가족사진 하나 없었다. 

 곧 부엌문이 열렸다. 밥내가 폐를 급습하였다. 그제야 나는 아무것도 사들고 오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나는 괜히 당황하면서도 벌써 밥을 준비했냐고 물었다. 그는 다시 특유의 너털웃음을 뿌리면서 차린 건 없으니 욕만 하지 말라고 하였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선배님이 오시는데.....고기라도 사올까 하다가, 고기야 아무 때나 다 먹을 수 있는 것이고 해서 그만 두고, 대신 제가 가꾸거나 장만한 음식을 조촐하게나마......선배님, 오늘 밥상에 오르는 것은 모두 다 제 손으로 가꾸거나 뜯은 것입니다. 술도 제가 빚었습니다. 그냥 오늘은 이런 걸 먹고 취하고 싶었습니다.......”

 알 수 없는 까만 콩이 들어간 밥, 잘게 무를 썰어서 끓인 무국, 고추나무잎 묵나물로 추정되는 반찬, 도토리 묵, 김장김치, 도토리가루로 부친 부침개, 그리고 고구마로 빚었다는 막걸리가 마지막으로 상에 올라왔다. 그는 내내 차린 게 없어서 미안하다고 했고, 이런 음식을 좋아할지 모르겠다면서 계속 내 눈치를 살폈다. 나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최고의 성찬이라고 말했다. 조금도 과장이 아니었다. 입안으로 밥알을 들이기 전에 그의 살냄새가 날 것은 막걸리부터 들이켰다. 그제야 그가 까만 콩알이 들어간 밥을 한술 뜨면서 “어떠세요?”하고 물었다.

 “이게 새팥이라는 야생콩밥입니다. 아시죠? 작년에 뒷산에서 수확한 것을 술병에다 담아놨는데, 며칠 전에 우연히 눈에 띄더라고요. 그래서 옳지, 선배님 오시는데 저 밥이나 해먹자 하고 한 겁니다. 예전에도 지인들에게 새팥밥을 해서 드린 적이 있는데 별 맛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저는 이게 콩밥보다 더 좋더라고요. 이걸 씹다보면, 새팥 작은 이파리도 생각나고, 노란꽃, 꼬불꼬불한 덩굴, 그 주위에서 살아가는 온갖 곤충들까지 다 생각나면서 그냥 마음이 즐거워지더라고요........”

 나는 그의 말을 뇌리에서 몇 번이나 되샘길질하면서 새팥밥을 씹었다. 새팥이라는 풀은 요즘이야 거의 잊혀져가는 풀이 되었지만 불과 이십여 년 전만 해도 아이들이랑 소들이 좋아하는 풀이었다. 콩과 식물인 새팥은 철사보다 가는 덩굴성 한해살이풀이로 생명력이 강하지만 소들이 워낙 좋아해서 거의 남아나질 않았다. 아이들도 새팥이 눈에 보이기만 하면 걷어다가 소한테 주었다. 아이들은 새팥덩굴을 걷어다가 풀모자를 만들어서 쓰고 놀기도 했다. 다른 덩굴식물보다 줄기가 부드럽고 순해서 아이들이 가지고 놀기 좋은 풀이었다. 게다가 이파리도 벌레가 거의 없었다. 어른들은 노란 꽃이 지고 작은 콩깍지가 달리면 밭가에서 쉬다가 무심코 보이는 그걸 까서 한주먹씩 호주머니에다 담았다. 그걸 일부러 시간내서 수확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집에 와서 쌀을 안칠 때 같이 넣었다. 그렇게 해서 새팥 몇 알을 씹어본 적은 있지만 이렇게 밥 한 공기에 쌀과 새팥이 주연배우가 되어 올라와 있는 것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맛이 괜찮다니 다행입니다. 이걸로 밥 한 끼 해먹으려면 얼마나 손품 팔아야 하는지 아시죠? 워낙 새팥이 작아서요. 그래도 이게 수천 수백만 명의 생명을 먹여키운 자랑스러운 어머니입니다. 아주 오랜 옛날에는 이걸 사람들이 먹었잖아요? 그때는 지금처럼 팥이나 콩이 크지 않았을 테니까요. 가뭄이 들거나 세상이 난리가 나서 먹을 게 없을 때도 이것들이 사람들 목숨을 지켜주었지요. 화전민들은 죄다 이런 걸 먹고 살아야 했어요. 어디 인간들 뿐이겠어요? 수많은 새들과 산토끼, 노루 같은 초식동물 그리고 풀벌레들이 이걸 먹고 살았으니까요. 그러니 고마운 풀이죠. 전 그런 생각하면서 이걸 먹습니다. 헤헤헤. 선배님, 전 이렇게 삽니다. 십년 전에 아내를 먼저 먼 곳으로 보내고 무작정 시골로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삽니다. 쌀농사만 저 먹을 만큼만 짓고요. 나머지 먹거리는 저 산과 들에 널려있는 것들을.....제가 새팥 깎지를 따면 이 동네 어르신들도 다 저보고 손가락질하고 그래요. 제 친구들도 몇 와서 보더니, 왜 이렇게 힘들게 사냐고 하기도 해요. 전 힘들지 않아요. 이게 좋아요. 남들 보기에는 심란해 보이기도 할 것이고, 야생콩이나 풀뿌리 캐먹고 백년 천년 살 거냐고 비웃기도 하지만, 제가 오래 살려고 이러는 건 아닙니다. 그냥 이게 좋고 편안해서 그래요. 돈벌고 출세한 사람들도 다 자기들 멋대로 살잖아요? 고급 승용차 몰고, 외국에서 사온 물 마시고, 좋은 고기 먹고, 몸에 좋다는 온갖 보약 다 먹고 살잖아요? 저는 그렇게 할 수 없으니까, 제 방식대로 사는 겁니다. 이건 저 같이 모든 걸 비운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좋아요? 돈도 하나도 안 들잖아요? 평화롭잖아요? 이런 음식은요, 절대 빨리 먹을 수 없습니다. 빨리 먹으려고 해도 온갖 생각이 다 나거든요. 그래서 느릿느릿 먹어요........”

 나는 속으로 ‘자네야말로 신선이구먼!’하고 중얼거렸다. 제멋대로 자유롭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인지, 이제 나는 잘 아는 나이가 되었다. 나는 그를 새삼 유심히 바라다보았다. 새팥줄기가 같은 가느다란 풀덩굴이 꿈틀거리고 있는 그의 얼굴을 보니, 이미 나하고는 다른 세상에서 사는 인간 같았다. ‘저 친구가 싸는 똥은 산토끼똥처럼 냄새가 안 날지도 몰라. 풀만 먹고 살아가니까.’ 나는 갑자기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래, 그래!”하고 웃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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