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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권 Nov 11. 2022

겨울의 끝자락에 맛보는 구수한 소리쟁이국

 가뭄과 태풍과 온갖 애벌레들의 사나운 입질을 견뎌낸 나뭇잎이 깊게 물들었다. 바람이 그런 나뭇잎들의 수고로움을 위로하면서, 이제 모든 것들을 편안하게 내려놓아도 된다고 속삭이는 저물녘이었다. 한동네 사는 지인인 B가 저녁이나 같이 하자고 하여 슬금슬금 마실 나가는 중이었다. B의 집에 들어서자 이미 밥상이 차려지고 있었다.

 “간단하게 먹자면서 뭘 이렇게 많이 준비하셨어요?”

 내가 밥상을 빽빽하게 채운 반찬들을 보면서 한 마디 하자, 텃밭 주위에 소리쟁이가 많이 보이기에 그걸 뜯어다가 국을 끓여봤다고 B가 말했다.

 “맛이 있을지 모르겠어요. 처음 하는 음식이라 인터넷 보고 따라해 봤어요. 신기한 것은요, 처음에는 소리쟁이 이파리가 엄청 미끈거렸는데 끓이니까 전혀 미끈거리지 않더라고요.......”

 B의 아내는 마치 음식품평회를 앞둔 사람처럼 조심스럽게 말했다.

 나는 소리쟁이국을 한 수저 떠서 천천히 입안에다 밀어 넣었다.

 “어, 맛있는데요. 어렸을 때 먹었던 그 맛이 그대로 느껴지네요. 부드러운 소리쟁이 이파리야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고, 시원하면서도 단맛이 느껴지는 그 특유의 맛이 나요. 시금치나 아욱 같은 맛인데 절대 안 밀리지요.”

 “그치요? 저도 이런 맛이 날 줄은 몰랐어요. 이런 걸 왜 안 먹는지 모르겠어요. 이거요. 그냥 맹물에다 넣고 끓인 거예요. 된장 외에는 아무것도 안 넣었어요. 그래도 이런 맛이 나니까, 대단하지요.”

 “소리쟁이는 이렇게 이파리만 끓여서 먹기도 하고, 이파리랑 뿌리를 같이 넣어서 끓이기도 해요. 이파리랑 뿌리의 비율을 8:2 정도로 넣고 끓이면 괜찮대요. 사실 저도 뿌리랑 같이 끓인 건 먹어보지 않았는데요. 전라도에서는 뿌리랑 같이 끓여먹었어요.”

 그쯤에서 B가 나섰다. 인터넷에는 이파리만 뜯어서 국을 끓인다고 나와 있어서 그래 했노라고 하면서 그것이 인터넷의 한계 아니냐고 말했다. 갑자기 어머니가 떠올랐다. 언젠가 한번은 내가 어머니한테 서울 사람들은 소리쟁이 이파리만 뜯어서 국을 끓여먹는다고 하였더니, 뜻밖에도 어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사람 입맛에 따라 다른 것여. 뿌리에 쓴맛이 있어서 그 맛을 싫어하는 사람은 이파리만 뜯어다 끓여먹는 것이제. 그래서 아랫녘 사람들도 뿌리를 조금만 넣어서 끓이제 많이 넣지는 않는단다. 솔구쟁이는 괭이나 호미가 아니라 낫이나 칼로 캐는 것여. 살짝 뿌리 윗부분까치 캐내는 것이제. 근디 뿌리까지 캐서 다듬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다. 아이고 말도 마라. 뿌리 끝 이파리가 붙어있는 곳에 까만 때가 붙어있어서, 고것을 손톱으로 긁어내면서 다듬는 일이 아주 힘들어. 이파리가 붙어있는 부분을 조각조각 뜯어내고 까만 때를 벗겨내야만 먹을 수가 있거든. 냉이를 캐서 씻는 것도 성가신 일이지만 솔구쟁이 캐서 씻는 일하고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제. 그만큼 귀찮고 성가신 일이어. 고것으로 한 끼를 해결하려면 한나절은 손품을 팔아야 했어. 보통 공이 들어가는 음식이 아니었어. 남자들은 손 하나도 까딱하지 않고 받아만 먹으니까 몰랐지만, 나는 지금도 솔구쟁이만 보면 으슬으슬 몸이 떨린단다. 추위에 부엌 앞에 쪼그려 앉아서 고것을 다듬던 생각이 나거든. 옛날에는 지금처럼 따뜻한 집안에서 일을 하는 것도 아니었고, 추운 부엌에서 찬물에다 씻어서 다듬었어. 그러니 얼마나 힘들었겠냐? 근디 이파리만 뜯어서 국을 끼리면 다듬을 필요도 없고 훨씬 품이 덜 들어가서 수월하제. 그건 일도 아니어. 그래도 아랫녘 사람들은 뿌리까지 넣어야 맛있다고 하니까 그렇게 하는 것이제.”

 도감이나 인터넷에는 소리쟁이 어린순을 봄에나 가을에 뜯어서 국으로 먹는다고 나와 있지만, 이 들풀이 가장 맛들어있는 시기는 겨울의 끝자락이다. 소리쟁이는 쑥보다 먼저 캐는 나물이다. 쑥은 살아있는 작은 벌레들이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날이 풀려야 새순을 내밀지만, 소리쟁이는 가을에 내민 잎을 땅바닥에다 붙이고 시린 바람을 온몸으로 막아내면서 겨울을 난다. 봄부터 여름까지 웃자란 굵고 긴 줄기가 시들어지면 다시 뿌리 위쪽에서 파릇한 잎이 돋아난다. 그 잎은 추위에 시달리면서 약간 불그스름하게 변해가고, 세찬 바람에 시달리면서 몇 개는 죽기도 하고 몇 개는 이파리가 찢겨진다. 하여 음력 정월대보름을 지나면 살아남은 이파리는 몇 개 남지 않는다. 그러니까 가을이나 햇살이 푸진 봄날 뜯어서 먹는 무르고 푸른 이파리하고는 전혀 다르다. 겨울을 난 이파리라야 뜨거운 국물에 들어가서도 제 모양이 크게 변하지 않으며 씹히는 질감도 좋다.

 보통 2월 중순이 되면 장사치들이 마을로 들이닥쳤다. 그들은 곧장 이장네 집으로 가서 “솔구장이를 사러 왔으니, 당장 들에 나가서 캐오시기 바랍니다.”하는 안내방송을 하였다. 

 소리쟁이는 꽃이 지고 나면 줄기 끝에다 고추씨앗처럼 생긴 열매를 매달아놓는다. 그 열매는 바람이 불면 요란하게 소리를 낸다. 그래서 소리쟁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 말이 지역에 따라서 ‘소루쟁이’, ‘골구장이’,‘소리장이’, ‘소릇’, ‘솔구지’라고 조금씩 변형되어서 불려지게 되었다. 

 아무튼 마을방송이 메아리를 남기면서 되풀이되면 동네 어른들이 아이들을 하나 둘씩 달고 우르르 들로 쏟아져 나왔다. 나는 낫으로 소리쟁이 이파리만 뜯어서 바구니 가득 담아서 왔다. 장사치들은 내 바구니를 보더니 “에개개, 너는 솔구쟁이 잎사귀만 캐왔구나! 이건 돈을 줄 수 없다. 이렇게 뿌리하고 같이 캐야 상품가치가 높단다.”하고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다른 사람들이 가져온 소리쟁이를 보니까 낫으로 적당히 뿌리를 잘라내서 캐낸 것들이었다. 결국 나는 한껏 고생만 하고 단 1원도 받지 못했다.

 “내가 그런 기억이 있어서 확실하게 소리쟁이는 뿌리까지 먹는다는 걸 알아요.”

 내 이야기를 들은 B는 소리쟁이의 뿌리 맛이 기대된다면서 후루룩 국물을 마셨다

 “호오, 약간 쓴듯하면서도 단맛이 느껴지는 맛이라니? 오늘은 이렇게 먹고, 2월에 한 번 캐서 다시 끓여보지요. 뿌리까지 넣어서요.”

 소리쟁이는 봄날 밥상을 대표하는 국거리였지만 재배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소리쟁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가을에 뿌리를 캐서 구덩이에다 묻어두고 겨우내 꺼내다가 국을 끓여 먹었다. 

 소리쟁이는 맛을 아는 사람만이 좋아했다. 소리쟁이 음식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가져다주어도 어떻게 해먹을 줄 모른다. 소리쟁이는 전라도식 토장국에 별미로 들어간다. 쌀뜨물을 받아 넣고, 장독대 항아리 속에서 잘 곰삭은 된장을 풀어 넣고, 소리쟁이 잎과 뿌리를 송송 썰어서 넣고 끓이면 된다. 거기에다 더 맛을 내려면, 쌀뜨물 대신 소뼈를 푹 삶아서 우려낸 물을 넣고 끓이면 더 맛을 낼 수가 있다. 거기에다 모시조개나 마늘까지 곁들이면 더 좋은 맛이 난다. 소리쟁이는 식량이 귀할 때는 구황식물로도 한몫했는데, 미역처럼 길쭉한 잎은 데쳐서 나물로 먹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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