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아랫집에 새로 이사 온 세 가족이 우리 마당으로 들어섰다. 우리 세 가족도 마당에 있는 야외식탁에 앉아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어린 딸을 앞세운 그들은 우리에게 큰 소리로 인사하면서 호박잎에 덮여있는 접시를 내밀었다.
“저희는 이 동네로 이사 온 김덕수, 윤혜나, 김유진입니다. 잘 부탁합니다.”
그렇게 한 사람씩 자기 이름을 크게 말하는 경우도 처음이라 우리는 체면 가리지 않고 웃어댄 다음, 나도 모르게 일어나서 내 이름을 크게 말했다. 차례로 아내와 딸도 일어났고, 마당 가에서 짖어대던 개도 우리가 소개하였다.
“저희집 짓는 동안 많이 불편하셨죠? 불편한 것 너그럽게 참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들 이 동네에 들어와서 열심히 잘 살겠습니다. 그리고 조만간 집으로 한번 모시겠습니다. 이건 저희가 장만한 떡입니다. 이것이 저희들 마음입니다.”
허, 보면 볼수록 경우가 밝은 사람들이었다. 우리 집 근처에 새집이 네 동이나 들어섰지만 새로 들어온 사람들이 이렇게 예의를 갖추어 다가오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집을 짓기 시작할 때만 주인들이 와서 곧 공사를 시작할 테니 편의를 봐달라고 하면서 화장지 한 상자 내밀면 끝이었다. 그때부터는 새벽부터 밤늦도록 온갖 공사차량들이 전쟁터처럼 질주하여도 항의 한 번 할 수 없었고, 공사장 차 때문에 아이가 사나흘에 한 번꼴로 지각을 해대도 누구 하나 사과하는 법이 없었고, 인부들이 우리 집 마당 가에 와서 노상방료를 해대고 담배꽁초나 온갖 쓰레기를 마구 던져도 어찌해볼 도리가 없었다. 새집에 이사 들어온 그들은 다음날부터 온갖 외부손님들을 불러 대서 왁자지껄 잔치를 벌였지만 정작 이웃들에게는 시루떡 하나 돌리지 않았다. 그들이 집을 지을 때 그 엄청난 먼지와 소음을 감당해야만 했던 이웃들에 대한 배려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들은 대포에 맞아도 끄떡없을 것 같은 콘크리트 담장을 쌓아놓고 보안업체 감시카메라를 사방에다 매달아 놓고는 이웃들을 외면했다.
그래서 나는 아래 아랫집에 새집이 들어설 때도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더구나 그들은 지금까지 집을 짓은 사람들 중에서 가장 젊었다. 정확한 나이는 물어보지 않았지만 아무리 넉넉하게 쳐주어도 사십이 넘어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두 내외가 고급 외제승용차를 몰고 다니는 것부터 정서적으로 나하고는 멀었다. 그렇게 포기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뜻밖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들이 가려고 하는 것을 아내가 차 한 잔 하고 가시라고 붙잡았다. 그들은 마당에서 가족이 차 마시는 풍경이 참 아름답다고 하면서, 자신들도 이런 풍경을 꿈꾸고 이사를 왔다고 하였다. 아내는 이렇게 호박잎이 덮인 떡을 받아보는 것도 처음이라면서 다시 고맙다고 하였다. 우리는 당연히 시장에서 사 온 시루떡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도 이 동네로 이사 왔을 때 시장에서 사 온 시루떡을 사다가 이웃들에게 돌렸다. 그건 당연한 일이다. 요즘 누가 집에서 시루떡을 하겠는가. 어어, 그런데 호박잎을 들어내자 눈에 들어온 약간 붉은 빛을 머금은 떡은 딱 보기에도 생김새가 제각각이고 서툴게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었다. 더 이상 묻지 않아도 “우린 시장에서 온 떡이 아닙니다!”하고 떡들이 말하는 것 같았다. 그 떡을 보는 순간 아내랑 내 입에서는 흐뭇한 미소가 새어나왔다.
“이거 집에서 한 떡이군요?”
아내가 물었다. 남자가 대답했다.
“예, 이웃들에게 드리는 첫 음식을 시장에서 사다가 드릴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저희가 만들기로 했습니다. 저희 장모님한테 배운 겁니다. 모양새는 볼품없어도 맛은 괜찮습니다.”
나는 너무 감동적이라서 쉽게 입을 열 수가 없었고, 그들의 얼굴을 슬그머니 다시 한 번 훑어보았다. 그들이 젊은 나이에 이 비싼 곳에다 어떻게 땅을 사고 집을 짓게 되었는지 그런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내가 그들의 겉모습만 보고 선입견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나보다 살아온 세월의 길이가 짧지만 부끄럽게도 나보다 더 따뜻한 가치를 갖고 있는 사람들임일 알 수가 있었다. 감히 누가 이런 생각을 하겠는가? 이웃들에게 드리는 첫 음식을 직접 만들어서 드리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요즘 세상에 어디 있으랴? 새삼 그들이 다시 보였다.
“와아, 이거 진짜 맛있다! 약간 옥수수 냄새도 나고, 이게 무슨 떡이에요? 색깔을 보니 수수로 만든 것 같은데......”
아내가 내 입에도 떡을 넣어주었다. 떡은 소똥구리가 만든 소똥 경단 모양도 있었고, 개떡처럼 동그랗고 납작하게 만들어진 것도 있었고, 적당히 동그랗게 말아진 것도 있었다.
“저희 친정엄마가 떡 만드는 걸 좋아하시죠. 그래서 어떤 떡을 만들었으면 좋겠냐고 했더니 이 떡을 말씀하시더라고요. 옛날에는 떡이라는 것이 모든 음식의 결정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조상님께 제사를 모시거나 특정 신에게 고사를 지낼 때도 떡이 빠지지 않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고기는 빠져도 되지만 떡이 빠져서는 안 된답니다. 산 사람이나 죽은 사람이나 혹은 특정 신이나 다 밥을 먹어야 산답니다. 밥이 곧 떡인 거죠. 밥을 보기 좋게, 더 맛있게, 더 오래 보관할 수 있는 게 만든 게 떡인 셈이지요. 이사 와서 떡을 돌리는 것도, 이런 음식을 서로 나눠 먹으면서 열심히 잘살아보자는 뜻이 담겨있답니다. 이건 우리나라 전통 떡이랍니다. 이름은 가랍떡이라고 하는데, 가랍떡이 되려면 가랑잎 즉 참나무 잎으로 떡을 싸서 쪄야 해요. 그러니까 가랑잎떡이라는 말이 발음하기 쉽게 가랍떡이라고 변했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가랑잎을 딸 수가 없어서 우리 집 아래에 옥수수가 많길래 그걸 밭 주인에게 좀 뜯어가겠다고 했더니, 옥수수도 다 땄으니 맘껏 따가라고 하더라고요. 이 떡은 옥수수잎으로 싸서 찐 거예요. 수수를 물에 불려놨다가 가루를 만든 다음 그걸 익반죽하여 적당한 떡 모양을 만들어요. 손에 달라붙지 않아서 만드는 것도 간단해요. 그걸 옥수수잎으로 싸서 쪄내면 끝이죠. 여기에다 콩가루를 묻히기도 해요. 그러면 콩가루 맛이 수수의 약간 떫은 맛을 흡수하면서 인절미처럼 맛이 있어서 아이들이 좋아하지만, 이번에는 일부러 붉은색이 보이도록 콩가루를 묻히지 않았어요. 붉은 떡은 재액을 막아준다고 하더라고요. 친정엄마가 이사떡이니까 콩가루를 묻히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우리 친정 엄마는 이 떡도 가랍떡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옥수수잎 떡이라고 불러요. 재료가 간단하면서도 볼품도 있고 맛이 좋아요. 가랑잎으로 싸서 찌면 가랑잎 잎맥 무늬가 떡에 그대로 새겨지기도 하고요. 가랑잎의 단맛이 베기도 합니다. 옥수수잎도 단맛이 있어서 괜찮더라고요.”
“와아, 근사하네요? 그러니까 이게 옥수수잎으로 싸서 쪄낸 것이군요? 떡에 옥수수이파리 냄새가 살짝 배 있네요. 수수랑 옥수수잎이 궁합이 잘 맞네요. 시루떡하고 견주어도 전혀 떨어지지 않는 떡인데요. 더구나 이걸 옥수수잎에 싸서 찐다고 하니까, 상상의 여백도 있어서 좋았을 것 같아요.”
“예, 맞아요. 옥수수잎으로 싸서 찌는 그 맛이지요? 재밌어요. 소꿉놀이 같기도 하고요. 이게 막 쪄냈을 때는 보기도 좋고 지금보다 훨씬 맛있어요. 수수는 식으면 금방 굳어버리잖아요? 아무튼 감사합니다. 저희는 이 떡을 준비하면서도 걱정했거든요. 이게 얘들 장난도 아니고, 더구나 나이가 드신 분들도 계시는데, 그분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그런 생각 하시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오히려 저희가 한 수 배웠네요. 잘 먹겠습니다.”
그들은 조만간 새집에서 고사를 지내겠다는 말도 하였다. 고사라고 해서 판을 크게 벌이는 게 아니라 이런 식으로 가족들이 만든 떡이랑 몇 가지 음식을 더 해서 차려놓고, 집짓기 전에 그 땅에서 살았던 들풀이나 곤충들 같은 여러 생명체에게 죄송하다는 뜻을 전하고, 이웃들이랑 한판 즐겁게 놀아보자는 자리라고 웃었다.
‘그래, 때로는 젊은 사람이 나이 든 사람보다 더 지혜롭다더니 저분들을 두고 하는 말이구나!’ 나도 모르게 그렇게 중얼거렸다. 최근에 이 동네로 이사 온 사람들은 다들 나보다 나이가 든 분들이다. 그들은 이웃을 자기네 개보다 못한 존재로 취급하였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떡을 먹는데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래, 나부터 마음의 문을 열자!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 떡을 목구멍으로 삼켰다. 귀한 씨앗 하나를 땅에다 심은 기분이었다.
아내가 그들을 배웅하면서 다시금 고맙다고 말했다. 코스모스꽃 너머로 사라지는 그들의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아내는 다른 것은 부럽지 않지만 저렇게 땅 냄새를 본능적으로 좋아하는 아이를 데리고 이런 곳으로 나온 그들의 용기가 부럽고, 이웃들에게 들꽃처럼 마음을 열고 다가갈 수 있는 그들의 마음만큼은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이 글은 2022년 아르코창작기금 선정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