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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권 Nov 11. 2022

초등학교 친구가 준 위로의 칡떡

출간을 앞둔 책에 들어갈 탱화를 촬영하기 위해 경북 상주에 있는 어느 절에 들렸다가 근처 산 깊은 곳에서 살고 있는 친구를 불러냈다. 초등학교 친구인 그녀를 마지막으로 본 것이 1980년대 초였으니까, 우리는 30년이라는 세월을 건너서 마주하였다. 그녀는 나를 보고는 첫 마디가, “너 많이 사람 되었다!”였다. 그때는 전체적으로 어설픈 촌놈의 영상이었다면 지금은 작가로서 살아온 가락이 있어서 그런지 딱 보면 예술가 같다고 평해주었다. 고마웠다. 나이 들면서 느끼는 맛이란, 가끔씩 오래된 인연들을 마주했을 때 내가 살아온 이력을 이런 식으로 인정해주고 존중해줄 때 묘하게도 나는 단맛을 느꼈다. 나는 그녀를 보고, 우리 고향마을보다 더 촌구석으로 시집갔다는 말을 듣고는 닳고 닳은 똥삽 같은 농부가 되어 있을 줄 알았더니, 울타리가 쫑쫑하게 솟아올라 단아하게 얼굴을 내민 흰 접시꽃 같은 근사한 사람이 되어있다고 농을 쳤다. 그녀는 다소 거친 손만 빼고는 전혀 농촌의 아낙 같지 않았다. 차림새도 제법 세련되었다. 나는 그녀가 우리 어머니처럼 늙어가지 않는 것이 너무 고마웠다.

 “정말 고마워. 어떻게 나를 기억하고 연락했을까? 내가 하도 깊은 산골에 사니까, 어린 시절 친구들하고는 아무하고도 연락이 안 돼. 가끔은 보고 싶기도 한 대......어디 가서 밥 먹을까? 배고프지? 뭐 좋아해?”

 그녀는 절 주차장에다 세워놓은 낡은 SUV 차량 쪽으로 앞서가면서 말했다. 나는 사는 집이 어디쯤 되냐고 물었다. 그녀는 잠깐 멈칫했다가 내 눈을 피하는가 싶더니 이내 밝은 표정으로 돌아왔다.

 “왜? 나 사는 꼬락서니가 궁금해서 그렇지? 촌구석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혹시 소랑 같이 외양간에서 자지 않을까 걱정돼서 그러는 거지? 알았어. 우리 집으로 가자. 너만 불편하지 않다면 괜찮아. 집에 남편밖에 없거든. 애들은 다들 커서 객지로 나갔지. 야아, 우리도 벌써 그렇게 나이 들었다. 한창 살아갈 미래에 대해서 고민하고, 더 큰 도시로 더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서 고민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아니 아니, 밥은 근처 식당에서 먹고 너희 집 가서 차 한 잔 마시면 어떨까, 해서.”

 그녀는 잠깐 어디론가 통화를 하더니 자기 남편이 날 보고 싶어 한다면서 히히히 웃었다. 이렇게 오래된 옛 동무가 찾아왔는데 번거롭다는 이유만으로 맛없는 식당밥을 대접하려고 한 자신이 잘못이라고 하면서. 

 “오늘은 나이 든 것이 오히려 좋다. 너랑 만나는 것도 편안하고, 또 이렇게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나이라는 것도 좋아. 만약 젊어서 만났다면 이럴 수가 있겠니? 아니 30대나 40대에 만났다고 해도, 남편을 의식하고 어디 맘대로 집에 데려 갈 생각하겠어? 그때는 시어머니도 계셨거든. 근데 이젠 내 맘대로 할 수 있을 만큼 나이가 들어버렸어. 그게 때로는 힘들기도 하지만 이렇게 자유롭기도 하구나!”

 나는 궁금한 것들이 많았지만 애써 왼손으로 입술을 꼭 누르고는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들을 들어주었다. 게다가 자꾸만 머리가 아파서 가만히 있는 편이 나았다. 그녀는 나보다 공부를 잘했다. 당연히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었다. 그녀는 집안 사정을 고려하여 자신에게 장학금을 넉넉하게 안겨주는 지방대학을 선택했다. 안타깝게도 그녀는 그런 대학에 가서 적응하지 못했고 휴학을 몇 번이나 되풀이하더니, 내가 군대에서 돌아올 무렵에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몇 년 뒤 시집갔다는 희미한 소문이 나돌았다. 나는 작년에 우연히 고향에 갔다가 그녀의 동생을 만났고 연락처를 알아낼 수 있었다.

 지금이야 도로가 잘 포장되어 있어 오히려 이렇게 한적하면서도 깊은 산골짜기를 달리는 눈맛이 좋겠지만, 길이 거칠고 차가 없을 때를 생각한다면 이런 곳은 해만 떨어지면 인적이 드물어지고 온갖 야생동물들이 판을 치는 그야말로 신화가 바들거리는 땅이었다.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을 따라서 오기는 했지만 이런 골짜기로 접어들 때 꼭 유배 오는 기분이었다고 했다. 남편은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는데 건강 때문에 교직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때부터 그녀는 꿈에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시집살이를 하면서 살았다.

 “친구야, 난 고향에서 살 때도 일은 별로 안 했어. 근데 여기 와서 한 백만 년 살았을 만큼의 일을 다 해버렸어. 나도 내가 그렇게 일 잘하는 농군이 될 줄은 몰랐어. 근데 어째? 남편은 아프고, 애들은 셋이나 퍼질러 놨으니. 게다가 시어머니는 당신 아들이 날 만나서 아프다고 해대니! 3년 전에 그런 시어머니가 95세의 나이로 그 질긴 숨결을 내려놓자 이상하게도 허탈해지면서 우울증이 밀려오더라. 한 세대가 끝났는데 나는 어떻게 살아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지? 그런 생각 하니까 아무런 의욕이 생기질 않아서...... 하하하, 그만 두자! 저기가 우리 집이야. 정미조 노래에 나오는 개여울 옆에 있는 집!”

 그녀의 집은 이 근처에서 가장 맑은 물이 우려져 나오는 개여울 옆에 앉아 있었지만, 제비들도 쉽게 날아들지 않을 정도로 처마가 낮고 늙은 몰골이었다. 그런 집에서 머리를 삭발한 소년 같은 키 작은 남자가 나와서 손을 흔들었다. 그녀는 몇 년 전부터 남편이 완전히 건강을 회복하여 지금은 목공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녀가 마당에 있는 평상으로 차를 가지고 나왔다. 달맞이꽃 차였다. 저녁은 남편이 준비하고 있다고 하였고, 여기까지 왔기 때문에 오늘 밤은 무조건 묵어가야 한다고 통보하였다. 그것이 이 집의 법칙이라고 하였다. 그녀가 따라주는 향기로운 차를 마시고 있는데 소년 같은 남편이 무엇인가를 들고 왔다. 저녁이 나오려면 시간이 필요할 테니 우선 이것으로 요기를 하라고 했다. 콩고물이 묻혀져 있는 것인 인절미 같았는데 먹어보니 칡 맛이 났다.

 “어, 이게 남아있었네? 그래, 칡떡이야. 사흘 전에 우리 결혼기념일이었거든. 그때 남편이 이것으로 케익도 만들고 떡도 만들었어. 우리 집은 요새 남편이 모든 요리를 다 해. 아까도 살짝 언급했지만, 시어머니 돌아가시자마자 뭔가 팽팽했던 끈이 끊어지는 것 같으면서 우울증이 밀려 왔고......부끄럽게도 나 죽으려고 두 번이나......근데 그 목숨이 쉽게 안 끊어지더라. 남편이 그러더라. 죽으려고 하지 말고, 잃어버린 꿈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라고. 내가 세계여행이라고 했더니, 그것 하래. 이제 다 해주겠다고. 그리고 농사에 아등바등하지 말고, 돈에 아등바등하지 말고 살자고. 근데 흙냄새 맡고 살아가는 인간들은 그렇게 아등바등해야 살 수 있어. 논밭에다 심어놓은 온갖 곡식들 때문에 어디 하루도 편안하게 쉴 수가 없어. 그게 농사꾼의 운명이야. 그러자 남편이 논밭을 거의 다 팔아버렸어. 처음엔 돈 때문에 불안했지만 살다보니 돈이 없어도 그럭저럭 살겠더라고. 일단 집이 있고, 먹고 살 걱정은 없으니까. 지금은 읍내로 나가 독서 모임도 하고, 글쓰기 공부도 하고, 영어 공부도 하고 그래. 남편은 우리 집을 짓기 위해서 열심히 준비 중이야. 요즘은 우리 전통음식에 푹 빠져서 날마다 풀을 뜯어서 이것저것 요리를 해. 이 칡떡도 남편이 직접 만든 거야. 이게 경상도 전통음식이래. 칡가루를 쌀가루랑 섞어서 찐 다음 콩고물에 묻힌 거야. 맛이 독특할 거야.”

 나는 그녀의 이야기가 끝난 것을 알면서도 뭐라 한마디 대꾸도 하지 않고 칡떡만 먹었다. 배고프기도 했고 유달리 떡을 좋아하는 내 입맛에 그 떡이 잘 맞기도 했지만, 그걸 먹으면 먹을수록 머릿속이 맑아지면서 마음이 편안해졌다. 떡이 위장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뇌 속으로 녹아드는 것 같았다. 사실 나는 사흘째 집에서 나와 있었다. 요즘 들어서 이상하게도 여유가 없어지고 자꾸만 쫓기는 것 같은 삶이 되풀이되면서 내가 힘들어하자, 아내가 바람 좀 쐬고 오라 하여 겸사겸사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걸 다 먹었네! 이따가 밥은 어떻게 먹으려고?”

 “괜찮아. 요새 소화도 안 되고 입맛도 없는데, 이건 한없이 먹겠다. 남편 솜씨가 대단하네. 아무튼 너 보러 오길 잘했네. 실은 나도 요새 내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힘들거든.”

 그녀가 슬그머니 덩굴처럼 가늘게 야윈 손을 뻗어 와서 내 손을 꼭 잡아주었다.     


<이 글은2022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선정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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