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2시 43분.
이제는 정말 퇴근해야 한다.
몸을 움직이자 오늘도 어김없이
‘뚝’ 하고 소리가 났다.
이게 뼈가 맞춰지는 소리인지
아니면 망가지는 소리인지 모르겠다.
간신히 마무리 정리를 하고
퇴근 준비를 끝냈다.
회사를 나서니 어느덧 새벽 3시.
터벅터벅.
오른발이 먼저 인가
왼발이 먼저 인가
아니면 같이 움직였던가?
유체 이탈하기 일보 직전이다.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섰던 게 마지막이니
한 자세로 5시간이나 앉아 있었던 셈이다.
도저히 못 걷겠다.
이 속도로 걸었다가는
내일 도착할 것 같았다.
[늘 이렇게 정신없지는 않습니다! 퇴근할 때 노래 들으면서 춤추면서 집 갑니다! 껄껄. 프로젝트 진행 중이라 그래요.]
평소처럼 춤추면서 집에 가고 싶었지만
이 몸 상태로는 무리일 것 같았다.
오늘은 바빠서 라면도 못 먹었고
무엇보다….
몸살 기운이 있는지라
새벽 공기가 날카롭게 느껴졌다.
어쩔 수 없다.
오늘만 호강하자.
[눈 감아, 내 지갑.]
택시 앱을 켰다.
택시 배차 버튼을 눌렀으나
잡히지 않았다.
몇 번이나 시도했으나
계속해서 실패했다.
몸은 지쳐가고 기다림은 길어졌다.
그냥 걸어가야 하나 고민하던 중에
택시 배정 알림이 떴다.
[호강도 쉽지 않습니다.]
택시가 도착하자마자
문을 열고 “안녕하세요” 인사를 드렸다.
그러자 운전석에서
“어서 오세요옹~” 소리가 들렸다.
[중년의 택시기사님이셨다.]
택시 기사님의 귀여운 발음에
기분이 좋아져 웃음이 났다.
뒷좌석에 몸을 기댄 채
높은 빌딩들을 바라보았다.
높은 빌딩들 창문 사이로 새어 나오는 불빛들이
누군가의 하루는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주었다.
그때 택시 안에 어디서 들어본 노래가 울려 퍼졌다.
‘이 노래가 뭐더라….’
생각하고 있는 와중에
택시 기사님이
“잉? 이 노래도 아파튼디?”
하시더니 갑자기 ‘로제’의 신곡 ‘아파트’를 부르셨다.
[택시에서 흘러나온 노래의 정체는 80년대 가수 윤수일의 ‘아파트’였다.]
“아파트, 아파트, 엇! 어허! 어허! 그 노래 좋더구먼요~ 갸가 블락핑크! 로쟈인가?”
“네! 블랙핑크의 로제요!” 난 웃으며 대답했다.
“아따, 노래 좋더만요~ 갸 말고도 누구여, 갸 멤바. 쟈니쟈니. 갸 노래도 좋더만요~”
“네! 제니요! 이번 신곡 좋죠.”
[집 갈 때마다 춤추면서 가기 때문에 이 정도 정보는 껌이다.]
“갸들이 미국에서 대박이라 더 만요~”
“인기 엄청 많아요. 대단한 가수죠.”
그 순간, 예전에 보았던 블랙핑크의 인터뷰 장면이 생각났다.
연습생 시절, 매일 새벽 2~3시까지 연습했다고 한다.
꿈을 이룬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자신을 깎는 시간이 있었다.
그 시간을 버티는 모두가 꿈을 이루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 시간이 없는 자는 꿈을 이루지 못한다.
내가 의지를 다지는 동안
택시 기사님은 윤수일의 ‘아파트’ 노래를 반주 삼아
블랙핑크 로제의 ‘아파트’를 완곡하셨다.
새벽 3시라는 게 믿기질 않을 만큼의 대단한 텐션이셨다.
기사님의 넘치는 에너지는 지친 나에게 큰 위로가 되어주었다.
[도곡동 택시 기사님부터 아파트 택시 기사님까지…. 다들 이러시면 매일 택시 타고 싶잖아요.]
'아파트' 노래를 듣는 사이, 택시는 집 앞에 도착했고
난 정중하게 인사한 뒤 택시에서 내렸다.
택시 기사님은 내가 내릴 때까지 흥을 주체하지 못하셨다.
[기사님, 너무 즐거웠습니다. 다음에 꼭 또 만나요.]
아파트, 아파트 엇! 어허! 어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