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관계에서 한 발 물러날 때 보이는 것들
예전엔 관계 속에서 ‘빈자리’가 생기는 게 무서웠다.
내가 빠지면 흐름이 끊길까 봐,
괜히 오해를 살까 봐,
나 없는 사이에 뒤처질까 봐.
그래서 힘들어도 웃었고,
듣기 싫은 말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어른스러운 거라 믿었다.
그러다 어느 날, 너무 지쳐버렸다.
주말이 되면 약속 없는 시간이 간절해졌고,
단체 채팅방 알림이 숨 막히기 시작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나를 놓고, 이 관계들을 붙잡고 있었을까?”
그때부터 조금씩 물러 나기 시작했다.
대답을 미뤘고, 약속을 줄였고,
마음에 없는 말은 하지 않기로 했다.
처음엔 불안했다.
사람들이 나를 잊는 건 아닐까, 멀어지는 건 아닐까.
그런데 의외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놀랍도록 평화로웠다.
잃은 줄 알았던 마음의 여유가 돌아왔고,
무심코 지나쳤던 내 감정이 다시 살아났다.
한 발 물러서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관계 속에서 얼마나 무리하고 있었는지,
내가 진짜로 원하는 연결이 어떤 건지.
가깝다고 다 좋은 건 아니고,
조금 거리가 있어야 더 소중해지는 관계도 있다는 걸.
이젠 억지로 애쓰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흐르는 인연만 남겨두고,
내 마음이 편한 거리를 유지하는 법을 배웠다.
나는 관계 속에서 도망친 게 아니라,
그저 나를 잃지 않기로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