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한다’는 것은 유익한 생활을 위한 것이다. 자신의 부족함에서 배움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자신이 바라는 생활을 할 수 없다는 것이 학습의 동기가 된다. 학생은 책이나 선생님을 통해 배우게 된다. 학습내용을 잘 이해하고 있는가를 굳이 확인하는 게 문제가 된다. 학생의 서열을 정하고 기회를 제한하는 것으로 활용하는 건 심각한 문제다.
공부는 학생 하나 하나의 소질과 만족이 어우러져야 한다. 획일적인 잣대로 정하는 성적은 사회를 획일적으로 만든다.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자신의 꿈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꿈도 함께 지지해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여전히 시험을 보기 위해서 공부를 하고 성적에 의해서 사람의 등급이 나뉘어지고 있다.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학생을 위한 곳에 학생은 없고 사회의 서열을 나누는 제도만 남아 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이 있다. 많은 교육관계자들의 지속된 노력으로 학습과정이 절대평가로 바뀌고 있다. 더불어 체험학습을 다양하게 늘려 가고 있다.
“아는 만큼 볼 수 있고 아는 만큼 행동할 수 있다. 배우는 이유는 실천하기 위한 것이다. 아는 만큼 자신의 꿈과 행복의 크기도 커간다. 그래서 배움의 힘이 삶의 힘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재미있다고 생각하면 재미있는 것이 공부다. 성적을 목표로 성적에 좌우되면서 공부를 하게 되면 학습과정에서 많은 것을 잃게 된다. 알아야 하는 것과 깨닫게 되는 것을 모르고 지나게 된다. 성적보다 중요한 것은 학습의 내용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대부분의 일이 그렇듯 공부도 마찬가지다. 공부를 하고 있는 과정이 진실함을 만든다. 공부를 통해 삶의 의미를 깨닫는다. 공부는 즐거워야 하고 진리를 깨우쳐가는 과정이다.
아들아!
시험 망쳤다고 속상해 마라.
가끔 아빠가 학교에 갔을 때
또래 아이보다 작은
너를 볼 때 마음이 아팠다.
그런데 지난달
갑자기 훌쩍 커버린 네가
엄마 아빠에게
큰 행복을 주었다.
아들아!
오해하지 마라.
너의 일에
성실하길 바랄 뿐이다.
네가 만족할 너의 인생은
너의 힘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란다.
아들아!
아빠보다 더 멋진 인생을 살아 가려 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