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처럼 전통있고 건강한 상품이
왜, 하루살이 스치듯
짧은 삶을 살다 가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명절에만 잠시 나왔다가
오랜 시간을 되돌아올 때까지
어두운 세월의 터널 속에 갇혀 지내야 합니다.
평소에도 나는 존재할 수 있는데
고객의 무의식에서는 자꾸만 밀쳐내고 있습니다.
명절과 함께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나는
나를 알리기에는 시간이 너무나 부족합니다.
상품을 본래의 효용적 가치에 의해 이용하지 않고 관념적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있다. 설날이 되면 떡국을 먹어야 한다거나 추석이 되면 송편을 먹어야 한다는 건 관념적으로 고착된 음식의 이용 방식이다. 떡국이나 송편은 소중한 먹거리였다. 전통적인 의미와 함께 1년에 한 번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니만큼 위세가 대단했다. 식재료와 기술의 개발은 먹거리의 풍요로운 시대를 열었다. 평생 먹어도 다 먹어 보지 못할 만큼 음식의 종류는 많아졌고 계속 새로운 먹거리가 출시되고 있다.
떡국떡은 가래떡을 뽑아 만든다. 길쭉한 모양의 가래떡이 적당히 굳으면 칼로 썬다. 두께가 일정할수록 품질 좋은 떡국이 된다. 가래떡이 너무 굳으면 칼날이 들어가지 않아 애를 먹는다. 적당한 때에 모두 썰어 놓아야 이용하기 좋다. 요즘엔 떡국의 인기가 시들하다. 대신에 가래떡을 좀 더 가늘게 뽑아 만든 떡볶이가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떡국은 1년에 한 번 먹을까 말까 하지만 떡볶이는 수시로 이용할 수 있어 좋다. 시대적 변화에 따라 떡국이 떡볶이의 모습으로 진화한 듯하다. 가래떡은 진화를 통해 살아남았다.
한과는 소비자의 니즈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면이 있다. 간식으로 먹기에는 고급스럽고 대용식으로 이용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명절 선물로 주고받는 귀한 상품이다. 정성스럽고 고급스러운 모습이 존재감을 높인다. 평소에 먹어 보지 못한 독특한 맛이 있다. 가격이 높았던 만큼 대중화에는 어려움을 겪었다. 지금은 굳이 찾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상품이 되었다. 전통한과의 가치는 전통을 이어간다는 의미에서 국산 농산물로 만들어야 의미가 있다. 아쉽게도 이 부분에서 소비자와 괴리가 생긴 듯하다. 한과를 만드는 재료의 상당수가 수입이다. 어떤 품목은 전체가 수입 재료로 만들어진다. 수입된 농산물로 고유의 명절을 기념한다는 것이 설득력을 떨어뜨렸다.
한과뿐이 아니다. 소비자의 기대 욕구에 미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경우는 많다. 특정 품종의 콩을 특산물로 재배하는 지역이 있다. 매년 콩 축제를 개최할 만큼 활성화되었다. 콩을 재료로 한 두부 음식점이 줄지어 늘어섰다. 이 지역은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중년층이 많이 찾았다. 중년층의 부모는 대부분 농부였다. 무의식 속에는 농부를 응원하는 애정이 흐르고 있다. 어디에나 있는 두부 음식점을 두고 굳이 이곳을 찾는 이유다.
어느 날 한순간에 상황은 급변했다. 음식점에서 지역 특산물인 콩을 사용하지 않고 수입 콩을 식재료로 사용한 것이다. 해당 지역의 농산물로 만든 줄 알고 이용했던 소비자는 크게 실망했고 배신감에 분노했다. 음식점에서도 할 말은 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소비자가 해당 지역의 음식점을 이용했던 이유다. 소비자는 지역 농산물을 응원하고 있었다. 조상의 누군가였을지 모를 농부에 대한 보답이다. 판매되는 상품만 떼어 놓고 보면 보이지 않는다. 소비자에게 내재되어 있는 욕구를 이해하고 있었다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국내산 재료로 만들어진 한과는 지나치게 가격이 높다. 공급자의 입장도 있겠지만 상품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이용자의 이해관계가 절대적이다. 품질은 유지하면서 가격을 낮춰가는 전략이 필요했지만 어쩐 일인지 거꾸로 갔다. 물론 불가피하게 판매가격이 높은 상품도 있다. 다식이 들어가 있는 한과세트가 그렇다. 어릴 때 다식을 만들어 본 적이 있다. 곱게 빻은 가루를 다식틀에 넣고 덮개로 눌러 준다. 다식틀을 가만히 떼어 내면 예쁜 꽃무늬가 새겨진 다식이 만들어진다. 어설프게 눌렀다 떼면 다식이 부서지기도 하고 얇아 지기도 한다. 다식의 맛은 독특했다. 곡식의 질감과 향과 단맛과 거친 느낌이 동시에 입안으로 퍼졌다.
상품은 소비 빈도가 뜸해지면 생존에 위험 신호가 된다. 생명이 긴 상품은 소비 빈도가 높다. 소비 빈도를 높이는 것이 상품의 생존력을 담보하는 일이다. 소비 빈도를 높이려면 소비자의 가격 저항을 낮추어야 한다. 누적되는 구매 금액이 부담스러우면 안된다. 한과는 1년에 한 두 번 이용할 정도로 가격이 높다. 명절이 아니어도 이용할 수 있는 보급형 패키지와 가격이 필요하다. 그러한 노력 또한 때가 있다. 적절한 때를 놓치면 생존하기 어렵다. 많은 간식과 다양한 먹거리가 자리를 차지하고 나면 비집고 들어갈 틈새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어떤 상품의 시장이 일단 좁아지고 나면 다시 넓히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제수용이나 차례용으로 변신한 한과도 입지가 좁아지기는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제수용으로 출시가 되다 보니 제사를 지낼 때 외에는 이용하지 않게 된다. 상품의 이미지가 소비자의 소비행동을 통제하는 효과를 낸다. 유과나 약과가 마트에서 명맥을 이어가고 있지만 인기가 많지 않다. 일상적인 간식으로 유도하지 못했다. 상품은 어떻게 컨셉을 잡느냐에 따라 동일한 상품임에도 불구하고 소비를 다르게 만든다. 약과를 제수용으로 디자인하고 패키지를 만들어 출시하면 제사를 지낼 때만 구매하게 된다. 약과를 과자로 디자인하고 패키지를 만들면 과자로 이용하려는 소비자가 구매하게 된다. 소비자는 상품이 표현하는 대로 구매패턴을 보인다.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상품으로 출시할 때 주의할 것이 있다. 품질을 낮추면 다른 상품이 된다. 소비자는 바보가 아니다. 경험으로 기억에 각인된 품질과 맛이 있다.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원하는 상품이 아니라는 걸 바로 알아챈다. 미니 약과로 출시된 상품은 이목을 끌었다. 한입에 먹기 편했다. 기존의 약과는 손에 기름이 묻어서 불편했다. 이용의 편리성만 달라져도 소비자는 반응한다. 공급자 입장에서는 같은 상품이지만 소비자는 다르다고 본다. 작은 차이가 결과를 크게 바꾼다.
서산에 가면 서산 생강 한과가 유명하다. 서산에서 태안으로 가는 지방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한과를 만드는 집들이 곳곳에 있다. 서산 생강 한과는 생강이 유명한 걸까 한과가 유명한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전통의 한과에 서산의 특산물을 입힌 것이 성공의 이유가 됐다. 서산 생강 한과는 품질이 높고 맛있다. 그렇지만 생강 맛은 거의 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생강 한과로 판매되고 있다. 지역명과 농산물과 전통 간식이 잘 어우러진 상품명이다. 소비자가 정서적으로 설득된 듯하다. 상품이 성공하려면 소비자 입장에서 가치를 찾는 작업이 필요하다.
지금의 소비자는 공급 과잉 시대에 살고 있다. 요구하기 이전에 상품이 제공된다. 의식하지 못했던 욕구까지 충족해 준다. 소비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시대적 특성을 타고 니즈가 달라진다. 웬만큼 노력해서는 생존하기 어렵다. 중년이 옛 상품을 이용하면 레트로(retro)라고 하고 신세대가 옛 상품을 이용하면 뉴트로(newtro)라고 한다. 같은 상품인데도 소비자에 따라 다른 상품이 된다. 이용의 경험이 있는 레트로 상품은 옛 모양 옛 맛에 충실할수록 좋은 상품이다. 상품뿐만 아니라 상품에 담겨 있는 추억도 소비 대상이기 때문이다. 뉴트로 상품은 자유롭게 변화한다. 소비 경험이 축적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시대적 요구를 담아 내도 저항이 없다. 옛 상품이지만 신세대에게는 신상품이다. 옛 상품이 시대적 요구에 따라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 뉴트로 상품이다.
튀밥이 있었다. 대포처럼 생겼는데 가운데가 복어 배처럼 둥글게 부풀어 있다. 쌀을 넣고 뭔가의 가루를 넣고 불 위에서 한참을 돌린다. 입구에 망을 걸친다. 튀밥 장수가 뻥이요 하면서 철로 만든 뚜껑을 열면 대포처럼 큰 소리가 뻥하고 터졌다. 소리가 얼마나 큰지 모두들 주변에서 물러났다. 귀를 막아도 소리는 그대로 전달됐다. 그래서 뻥튀기라는 말도 생겼다. 튀밥은 과자였다. 아무런 맛도 없었지만 입에 넣으면 녹아서 없어졌다. 튀밥을 뭉쳐서 둥근 원기둥처럼 만든 것이 유행했었다. 조미되지 않았기에 유아에게도 좋은 간식이 되었다. 쌀뿐만 아니라 옥수수, 떡국떡등도 뻥튀기의 대상이 되었다.
중년에게 뻥튀기는 레트로 상품이다. 뻥튀기 장수를 따라 다니며 뻥이요를 외치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뻥튀기는 당연히 옛 모습으로 존재해야 한다. 입이 느끼는 식감과 기억이 느끼는 식감이 일치해야 만족도가 높아진다. 신세대에게 뻥튀기는 새로운 경험을 하는 새로운 상품이다. 현미나 쌀을 압축하고 천연색소를 넣어 예쁘게 만든 뻥튀기에 반응한다. 맛을 낼 수 있으면 더 좋다. 나초와 같은 상품에 익숙해져 있는 신세대에게 뻥튀기는 새롭지만 맛이 없는 상품이 될 수 있다. 산자처럼 만들되 단맛이 강하게 날 수 있다면 매력적일 수 있다.
한과도 마찬가지다. 소비자의 욕구를 이해해야 한다. 중년에 맞출 것인지 신세대에 맞출 것인지 고민해 봐야 한다. 어정쩡한 상태로 과거에 머물러 있다면 점점 생명력을 잃어 갈 것이다. 고객의 변화하는 니즈에 따라 시대적 문화를 입으며 변화해 가야 한다. 성공하는 상품이 좋은 상품이고 살아 남는 상품이 유익한 상품이다. 소비자에게 유익한 상품만이 생명력을 유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