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편 가치가 가격을 이끌어

상품마음학 특강, 슬러시

by 라이프스타일러

마음을 충동질해 대는 충동성이 없었더라면

어쩜 우린 벌써 파산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성을 마비시키고 본능을 일깨우는 충동성이야말로

우리에게는 생존의 터전과도 같습니다.


겨우 1,000원 안팎이면 될 것을

그럴듯한 포장 용기를 내세워 4,000원을 받고 있습니다.

포장 용기를 본 고객은 슬러시인

나의 가격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습니다.

슬러시인 나보다 내가 담긴 용기에 대한 가치를

이미 계산한 탓일 겁니다.


어떤 포장 용기에 담기던 나만의 가치가 존중되어야 하는데

내가 담기는 용기에 따라 나의 가치가 변해야만 합니다.

포장 용기가 나를 지배할 수 있는 이유는

용기가 고객의 마음을 충동질하기 때문입니다.


가격이 높아지니 대우도 달라졌습니다.

전용 대기실도 마련되었습니다.

가격이 가치를 이끌던 가치가 가격을 이끌던

나는 이미 대우받는 상품이 되어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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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뜨겁게 달궈지면 슬러시가 불티나게 팔린다. 시원한 물과 차가운 얼음 사이의 어디쯤 슬러시가 있다. 물보다 시원하고 얼음보다 부드러우니 안성맞춤이다. 가격도 저렴하다. 달달하게 색깔을 입고 스크류 모양으로 천천히 돌고 있는 슬러시는 입맛을 당기게 한다. 슬러시는 어떤 장소에서 어떻게 생긴 용기에 담아 판매하느냐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아웃렛 매장에서는 훨씬 높은 가격에 판매된다. 그럼에도 상당한 수량이 팔려 나간다. 상품의 가격은 상황과 필요에 따라 변한다. 왜 그럴까? 상품을 이용하는 소비자의 만족이 달라진다. 상품의 효용적 가치가 변하기 때문이다.


오래전 일이다. 휴가철을 맞아 가족과 함께 등산을 간 적이 있다. 산 정상에 다다르니 얼음에 재운 음료를 팔고 있었다. 보기에도 시원해 보였다. 가격 때문에 망설이고 있는데 막내가 목이 마르다며 졸랐다. 막내만 음료를 사줬다. 막내는 아껴 마신다고 작은 가방에 넣고 다녔다. 산을 내려와 마트에 들렀다. 음료 가격이 4배 차이 났다. 깜빡하고 마시지 않았던 음료는 그대로 가방에 있었다. 음료의 가치가 1/4로 떨어졌다. 음료를 정상에서 마셨다면 4배의 가치가 있었을 것이다. 상품의 가격이란 공급자와 구매자가 합의하는 지점에서 형성된다. 산 정상에서는 기꺼이 4배의 가격을 지불했다. 지상에서는 결코 그렇게 비싸게 구매하지 않는다. 음료에서 얻을 수 있는 효용적 가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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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료는 장소가 가격을 변화시켰다. 슬러시는 포장 용기가 가격을 변화시켰다. 가격이 변화되는 이유는 상품 이용의 효용가치가 변하기 때문이다. 효용가치가 변하지 않았다면 변화된 가격에 소비자의 저항이 생긴다. 슬러시는 가격 저항을 피하기 위해 포장 용기를 바꿨다. 소비자가 단순 비교를 통해 가격에 저항할 수 있는 여지를 없앴다. 분식집에서 파는 슬러시와 아웃렛에서 판매하는 슬러시를 다른 상품으로 인식하게 했다. 동의하는 소비자는 구매하고 동의하지 않는 소비자는 구매하지 않는다. 합리적인 협상 방법이다. 소비자는 대체로 동의한다. 상품의 모양이 바뀌면 가격 비교가 곤란해 지기도 한다. 포장 용기의 경우 인테리어 소품으로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 소비자가 어떤 가치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지불되는 가격도 상이해진다. 같은 상품에 다른 가격이 형성되는 것이다. 상품마다 주인이 따로 있을 수 있다.


많은 상품이 주기적으로 포장 패키지에 변화를 준다. 같은 초코파이지만 매년 포장지의 디자인이 변한다. 변화가 있는 듯 없는 듯 미세하게 조금만 바꾼다. 본질은 유지하면서 식상함을 없애는 효과가 있다. 충성심을 유지하기 위한 전략이다. 크게 바꿔야 할 때는 한정판으로 생산한다. 지금이 아니면 구매하지 못하는 상품이라는 메시지를 담는다. 봄꽃을 소재로 에디션 상품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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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의 본질에 변화가 없어도 포장 패키지의 변화를 통해 상품의 변화를 어필할 수 있다. 조금의 개선으로도 신상품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상품을 소비자와 어떻게 매칭시키느냐에 따라 상품의 이용 가치가 달라진다. 상품의 이용 가치가 달라지면 상품의 가격도 달라질 수 있다. 가치가 가격을 이끄는 것이다. 상품의 이용에 대해 새로운 가치를 찾게 되면 가격이 달라져도 소비자는 저항하지 않는다. 상품은 소비자마다의 니즈에 적합하도록 계속해서 세분화되고 있다. 소비자 주도 시장에서 생존하기 위함이다. 상품의 제공이 개인 맞춤형으로 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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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의 레시피를 결정한 후에도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것이 상품의 패키지 개발이다. 기존 상품도 새로운 상품처럼 보이기 위해 패키지를 바꾸는 추세다. 신상품은 말할 필요도 없다. 상품에 어울리는 패키지를 개발하려면 선행되는 작업이 디자인이다. 디자인은 상품의 형상을 결정짓고 상품이 담길 패키지를 결정짓게 된다. 디자인은 상품에 영혼을 불어 넣는 작업이다. 개발자의 손을 떠나 홀로 팔려 나가야 한다. 상품에는 소비자를 설득하는 힘이 있어야 한다. 설득의 힘은 디자인에서 나온다. 소비자의 욕구에 부합하는 디자인과 패키지는 가격보다 중요한 요소이다. 소비자를 설득하는 것은 상품의 디자인에서 표현되는 호소력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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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가 가격을 이끄는 극단적인 예는 명품이다. 명품의 탄생은 품질에 있지 않다. 플렉스에 있다. 부의 과시에서 시작되었다. 가격은 저항을 일으키지 않는다. 높은 가격은 구매 가능성이 있는 소비자의 수를 줄여준다. 높은 가격이 상품의 희소성을 만들어 준다. 품질이 가격만큼 뛰어날 것이라고 기대하면 안 된다. 명품의 목적은 명품을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를 가르기 위한 것이다. 물론 가격이 높은 만큼 좋은 재료와 높은 기술로 만든다. 다만 품질이 가격과 비례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볼보, BMW, 벤츠, 테슬라 등의 수입차를 비싸게 팔아도 잘 팔리는 곳이 한국 시장이다. 사회적 지위의 상징으로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 선택의 기준이 성능보다는 자동차가 주는 사회적 지위와 이미지다.


가치가 가격을 이끌지 못할 때도 있다. 과잉생산의 경우다. 간혹 농작물의 가격이 폭락하거나 애써 재배한 농작물을 갈아엎는 경우가 있다. 이용의 효용적 가치는 변함이 없으나 과잉생산으로 인해 헐값으로 공급된다. 생산비 보전도 어려울 경우 관계 기관의 행정조치에 따라 수확기의 농작물을 갈아엎는다. 상품의 공급량을 줄여 인위적으로 가격을 올리는 조치다. 반대의 경우도 발생한다. 가치는 변함이 없는데 가격이 폭등한다. 생산량이 부족할 때다. 수요보다 공급이 턱없이 부족하니 가격이 상승한다.


사과 한 개에 만 원이 된 적이 있다. 매우 특이한 상황이다. 원인은 공급 과정에 있었다. 소비자는 소비를 포기하던지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구매한다. 상품의 효용적 가치에 변화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가격의 변화가 일어날 때 소비자의 불만족이 증가한다. 가치가 가격을 이끌지 못했다. 가격이 가치에 비례하지 않는다. 소비자에게 유익한 방법으로 가치가 가격을 이끌어야 한다. 상품마음학에서 소비자의 니즈를 연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상품이 유익하게 소비되는 합리적인 방법을 찾는 일이다.


가치를 창출해 가격과 소비자의 만족을 모두 끌어 올린 사례는 블렌딩 커피다. 커피는 세계적으로 각 지역에 따라 적합한 품종을 선택하여 재배한다. 생태학적 환경으로 인해 품종의 다양성에 제약이 따른다. 품종의 제약은 커피 맛의 제약을 의미한다. 제약을 극복하는 방법이 커피의 블렌딩이다. 몇 가지 커피 품종을 혼합하여 새로운 맛을 찾는다. 비율에 따라 커피 맛이 달라진다. 품종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맛의 다양성을 확장했다. 새로운 맛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다. 소비자는 새로운 커피 맛에 기꺼이 지갑을 연다.


상품의 가치만큼 가격이 정해질 것을 기대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공급이 많아지면 과열 경쟁으로 가격이 하락한다. 상품을 독점 공급할 때는 소비자의 선택권이 사라진다. 품질은 떨어지는데 가격이 오르기도 한다. 상품의 가격은 환경이나 다양한 원인에 의해 수시로 조정된다. 마치 가격이 살아서 꿈틀대는 것 같다.


금은 귀하다. 금값은 희소성의 원리가 지배한다. 희소성은 누구나 가질 수 있을 만큼 많지 않음을 의미한다.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해야 비로소 얻을 수 있는 대상이다. 희소한 가치만큼의 가치 있는 것과 교환이 가능하다. 가치 있는 것끼리의 교환이 화폐를 탄생시켰다. 화폐로 교환할 수 있는 대상은 화폐의 양만큼 가치가 있다. 이러한 원리가 신용사회를 만들었고 상품의 거래를 활발하게 확장시켰다.


화폐는 소비자의 지불 의사를 측정할 수 있는 계수화된 수단이다. 상품에 대해 느끼는 소비자의 효용 가치를 화폐로 환산할 수 있다. 소비자의 니즈를 화폐로 나타낼 수 있다. 신상품을 개발하면 가격 책정을 하게 된다. 이때 책정되는 가격의 산출 기준이 화폐로 환산할 수 있는 소비자의 구매 욕구 즉, 구매력이다. 소비자가 만족할 수 있는 가치를 제공하는 한 제공되는 가치는 가격을 이끈다. 가치있는 소비를 통해 상품은 보다 유익하게 활용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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