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마음학특강, 어묵
얼마나 많은 생선의 살이 나로 쓰였는지
얼마나 많은 내가 다른 모습으로 환생 되었는지
그렇게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이
쌓여 왔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사람은 그저 입이 즐겁고 풍성한 먹거리가 좋았겠지만
이면에 있는 나의 몸부림은 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살이 찢기고 뼈가 갈리는 고통 속에서도
나는 새로운 삶을 갈망했고
보다 행복하고 가치 있는 모습이 되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단순히 즐기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좋아할 수 있도록
나는 나의 모든 것을 걸고 있습니다.
어묵은 말 그대로 생선 살로 만든 묵이다. 어묵은 오래전부터 이용해 왔다. 맛에서 속은 것 같아 좋지 않은 기억이 많다. 생선 살보다 밀가루를 더 많이 넣은 듯 맛에서 설득력이 떨어졌다. 어묵이라고 하는데도 어묵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어묵이 아닌 부침개를 먹는 맛이다. 연분홍 색깔의 길쭉한 소시지도 그랬다. 육류를 다져서 만들었다고 하기에는 맛이 밀가루를 닮았다.
좋지 않았던 기억에도 불구하고 좋은 음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힘들었지만 그리운 지난날이 간직되어 있다. 추억의 어묵과는 다르게 지금의 어묵은 정말 고급이다. 매장에서 직접 만드는 수제 어묵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고객의 뜨거운 반응 덕분에 어묵 전문점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열광하는 소비자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지만 그만큼 어묵의 품질이 좋아졌다는 증거다.
어묵의 참맛은 겨울에 느낄 수 있다. 하얗게 눈이 내리고 추위가 매서워지면 어묵으로 끓인 어묵탕이 생각난다. 따뜻한 국물 한 모금이면 얼어붙었던 몸이 녹는다. 전신으로 퍼져 나가는 따스한 꿈틀거림이 기분을 좋게 한다. 짭짤하고 따뜻한 국물은 중독성이 강하다. 종이컵에 국물을 따르고 어묵 꼬치를 든다. 어묵의 탄력 있고 부드러운 감촉은 추위를 포근하게 감싼다. 배를 채우기보다는 따뜻함을 채운다.
한 개 두 개 팔리는 것이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지나는 사람 대부분이 기웃거리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어묵에는 호불호가 없는 모양이다. 어묵의 모양이나 색깔은 다양해졌고 인기를 높아졌다. 어묵의 제맛은 직사각형의 어묵을 길게 접어서 S자로 만든 어묵이다. 익숙한 모습에 익숙한 맛이 좋다. 국물은 무나 멸치 다시마를 넣고 육수를 낸다. 국물 맛이 입안에 여운으로 남는다.
점포에서 근무할 때다. 눈이 내리면 쌓이기 전에 치워야 한다. 일정한 두께로 쌓이고 나면 빗자루나 삽으로 치우기 어렵게 된다. 불도우저 같은 중장비를 동원해야 눈을 치울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눈이 내리고 있는데도 눈을 치우는 경우가 많다. 치우고 돌아서면 내리는 눈이 치운 흔적을 하얗게 덮어 버린다. 표도 나지 않는 일을 다시 한다. 눈과의 싸움은 끝나지 않는다. 눈이 내릴 만큼 내린 후에야 끝이 보인다. 주차장과 보행 통로의 눈을 우선적으로 치운다. 차량이 진입할 수 있어야 하고 주차가 가능해야 한다. 어찌됐든 고객은 필요한 상품을 구매해야 하기 때문이다.
눈이 온다고 해서 일상생활이 멈출 수는 없다. 그것이 음식과 관련된 것이라면 더 그렇다. 눈과의 싸움은 모든 힘을 소진시킨다. 손도 얼고 입도 말라버렸을 때 어묵탕을 마주하게 된다. 몇 시간의 고단함이 한순간에 녹는다. 어묵탕은 그렇게 뇌리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어묵은 음식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어묵 전문점에서 어묵을 샀다. 유명해진 브랜드가 많다. 유통 매장에 입점 존재감을 드러내며 소비자를 유혹하고 있다. 전문점의 어묵은 시중의 어묵과 다르다. 시중 어묵의 주된 용도가 반찬이라면 전문점의 어묵은 요리다. 품질이 그만큼 다르다. 반찬이나 간식 요리로 나뉘는 어묵은 소비자를 만족시켜 가고 있다.
동일한 재료로 소비자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건 가공 기술에 있다. 가공 기술의 향상은 상품의 제조 능력을 획기적으로 발전시켰다. 상품의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복합 가공으로 가야 한다. 이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맛을 제공한다. 농가에서 만드는 상품은 단순 가공이거나 제조가공이라 하더라도 공정이 간단한 경우가 많다. 고도화된 복합 가공으로 가야 한다. 가공에는 난이도에 따라 단계가 있다.
단순 가공이란 공정이 단순한 과정을 거쳐 생산되는 상품을 말한다. 연근을 세척하고 껍질을 벗겨내 진공 포장하는 상품이나 말린 고추를 빻아서 고춧가루를 만드는 것은 단순 가공이다. 농업 분야에서는 수확한 상태 그대로 공급하는 것 외에는 전부 가공으로 인식하고 있다.
풋고추를 150g씩 비닐 포장 작업을 한다거나 양상추를 한 통씩 포장하는 것도 모두 가공으로 본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전에는 포전매매나 표준화된 박스에 담아 그대로 유통을 했다. 수확 후 추가의 작업이 거의 없었다. 수확 후 품질관리도 상품의 품질을 유지하기 위함이지 상품으로 만들기 위한 건 아니다. 박스 단위로 공급하던 상품을 소량 포장하는 것은 작업공정과 포장재와 인력을 필요로 한다. 상품의 형태가 바뀌면 이러한 변화를 보고 가공이라고 여긴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러한 포장 행위는 가공이 아니다. 상품의 취급과 판매의 용이성을 위한 것으로 상품의 성질에는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가공으로 인정받으려면 상품의 형태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 투입된 추가의 비용에 비례하여 부가가치가 창출되어야 한다. 농가의 가공 활동은 식품제조업의 요건을 충족할수록 가공업에 가까워진다. 농가의 창고에서 수행하는 단순한 포장 작업도 공장을 지어서 포장을 하면 가공업으로 등록은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상품이라는 본질적 기준에서 보면 식품제조업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실무적으로 볼 때 식품제조업에서 요구하는 품목별제조보고서가 있어야 가공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걸 법으로 규정할 수 없기 때문에 예외가 있을 수 있다. 상품마음학에서는 제조의 대상인 재료의 성질과 형상에 변화가 없다면 식품 제조가 아니라고 본다.
상품을 단순하게 포장하면 면세로 판매가 된다. 성질의 변화나 재료의 혼합이 없기 때문에 가공으로 판단하지 않는 것이다. 2003년에 시금치, 흙대파, 청량고추, 미나리, 상추, 마늘 등의 상품에 대하여 포장화를 진행했다. 벌크 형태로 판매되던 상품을 각각의 품질과 규격기준을 마련하여 1차 농산물의 규격 표준화를 진행한 것이다. 몇가지 예를 들면 이렇다. 시금치는 1단에 400g이상이고 길이가 손바닥 길이를 넘어서는 안된다. 흙대파는 뿌리 부분의 흙을 제거하고 1단에 800g 이상이어야 한다. 청량고추는 1봉에 100g이상이고 붉은 색깔이 혼입되지 않아야 한다. 포장된 모든 상품에는 판매 코드를 인쇄하여 공산품처럼 입점 즉시 진열할 수 있어야 하고 고객이 자유롭게 구매할 수 있어야 한다.
1차 농산물의 품질 표준화와 상품 규격화는 전체 상품의 50%가 넘어서는데 약 3년이 걸렸다. 기준 없이 판매되는 농산물을 규격 표준화를 한 이유는 전국 일물일가였다. 당시 명예회장님은 몇 곳의 점포를 다녀 보시고 불편해 하셨다. 점포마다 같은 상품임에도 불구하고 가격이 다 다르다는 것이 문제였다. S점포에서 판매하는 배추와 K점포에서 판매하는 배추가 어떻게 가격이 다를 수 있느냐는 것이다. 지방으로 가면 그 격차는 더 심해진다. 알면서도 개선을 못하는 데는 아니 안하는 데는 그 만한 이해관계와 불이익이 숨어있다.
수명업무는 시간에 구애됨이 없이 진행해야 하는 일이다. 10개의 시범 운영 상품을 출발점으로 해서 과업은 수행됐다. 현재는 전국의 거의 모든 유통 소매점에서 규격 표준화된 1차 농산물을 판매하고 있다. 이렇게 편리하고 당연한 일이 많은 고통을 수반한 대가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신뢰받을 수 있는 상품으로 만들고 저렴하게 유입되고 있는 수입농산물에 맞서 국내 농산물의 품질을 획기적으로 높이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러한 상품의 형태를 가공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생강 조청이나 된장, 간장, 두부, 유과 등은 가공이라고 할 수 있다. 가공 상품이기는 하나 제조 과정이 단순하다. 제조 과정이 간단하다고 해서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상품의 효용성을 증대시키고 고객의 욕구에 충실하기 위해 고도화된 제조공정으로 옮겨 가야 한다는 의미다.
단순하게 포장된 곡물보다는 딸기잼이나 발효된 치즈가 고객의 상위 욕구를 충실하게 충족시킬 수 있다. 레토르트 형태의 간편 가정식이나 건강보조식품이라면 훨씬 상위의 만족을 줄 수 있다. 식품 공학적 지식이나 첨단 설비의 운용 등을 통하여 제조할 수 있다면 존재하지 않았던 욕구조차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이다. 식품의 가공은 그러한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는 의미이다.
필요해진 다음에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것을 고객이 누릴 수 있도록 고객의 소비를 리딩해 나갈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의지가 성과를 이끈다. 어묵처럼 살과 뼈를 갉아 만들어도 되고 창의력으로 기술력으로 만들어도 된다. 고객의 즐거움과 행복을 향상시킬 수 있다면 상품이 존재하는 이유는 충분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