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보다 맥주가 싼 나라, 독일의 맥주 축제
독일은 물보다 맥주가 싸다는 말이 있다. '진짜' 맥주*를 만들기 위한 맥주 법도 있고 각 지역을 대표하는 지역 이름의 맥주도 있으며, 어딜 가든 맥주를 직접 만들어 파는 식당을 찾을 수 있다. 독일 하면 떠오르는 옥토버페스트도 10월에 하는 맥주 축제다. 그런 곳을 가면, 공기 입자 속에도 맥주가 차 있는 기분이 든다. 학교 학생식당과 카페테리아에도 맥주를 병째 놓고 판다.
말 그대로 주정뱅이를 위한 나라가 아닐 수가 없다. 내 독일인 친구에 따르면, 그가 전에 인턴으로 일했던 뮌헨의 회사의 식당에는 점심시간에 직원들이 자유롭게 맥주를 마실 수 있도록 맥주가 나오는 수도꼭지가 있었다고 한다. 못 믿을 말이 아니다. 학생들이 공강 때 맥주를 마시고 놀다가 수업을 가는 것을 수도 없이 봤기 때문이다. 기숙사 세탁실에도 병맥주를 파는 자판기가 있다. (병맥이라니!) 식당에 가도 음식을 주문하기 전에 음료-맥주나 식전주-를 시키는 나라가 독일이다.
이렇다 보니 내 가장 가까운 친구가 술이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저녁에 집에 오는 길 집 근처 마트에 들러서 좋아하는 브랜드의 맥주나 지갑 사정이 허락하는 와인을 산다. 집에 와서 한국말이 나오는 유튜브를 틀어 놓고 술을 홀짝 거리며 브렛쩰을 뜯어먹으면, 한국인지 독일인지 다 잊어버릴 수가 있었다. 일본에는 건어물녀가 있듯이, 독일에는 브렛쩰녀가 있는 셈이다.
이 주정뱅이들의 나라 독일의 맥주축제라고 하면, 사람들은 뮌헨의 옥토버페스트를 가장 먼저 떠올릴 것이다. 그런데 뮌헨의 서쪽, 슈투트가르트에도 옥토버페스트 못지않게 큰 맥주축제가 있다. 바로 슈투트가르트 칸슈타트 바젠 Cannstatt Wasen에서 열리는 민속축제, 칸슈타터 폴크페스트 Cannstatter Volkfest 가 그것이다.
바젠에서 열리는 폴크페스트는 보통 9월 말에서 시작해서 10월 중순까지 약 2주에서 3주 정도 계속된다. 사진 속에 보이는 하얀 천막이 모두 맥주 텐트인데, 보통은 예약을 해서 방문하기도 하고 당일에 표를 사서 들어가기도 한다. 들어가면? 난리다. 노래 부르고 춤추고, 취한 사람들이 흑역사라는 생각도 없는지 난장판을 하고 놀고 있다. 민속축제라는 이름에 걸맞도록 독일 남부 지방의 전통옷을 입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너무 시끄러워서 다들 소리를 지르지만, (추측컨데 일종의 맥주 민요 같은) 다 아는 노래가 나오면 다 같이 그 큰 맥주 조끼를 술에 절어버린 나무 탁자에 탁탁 쳐 가며 노래를 부른다. 쌀뤼 쌀뤼 쌀뤼~ 같은 노래는 수능 금지곡이 될 게 분명하다. 물론 난 아직도 그 노래가 뭔지는 잘 모르겠다.
보통은 맥주가 1리터에 10유로 정도 하고, 놀이기구도 하나에 4유로 내외이다. 사격이나 공던지기 같은 게임도 할 수 있고, 캔디드 아몬드라던가, 솜사탕, 캔디 애플이나 초콜릿 딸기 같은 독일식 탕후루, 독일식 딱딱한 과자에 장식을 하고 글씨를 새긴 것 등을 판다. 보통 과자는 하트 모양인데 온갖 말이 쓰여 있지만 sex with me나 my dick is here 같은 말이 쓰여있는 게 인기가 좋다. 농담 아니라 여자 애고 남자애들이고 할 것 없이 하나씩 걸고 있다....
독일인들은 유머도 모르고 진지하고 좀 차갑다고 하는데, 저기 안에 들어가면 정말 온갖 사랑꾼(...)들을 만날 수 있다. 밤이 되면 아무래도 유교걸인 내 입장에선 좀 징그러워져서(...?) 도망치게 된다는 단점이 있다.
2019년도의 바젠 폴크페스트의 규모는 뮌헨의 옥토버페스트보다 방문객과 맥주 소비량이 더 컸다고 한다. 그러나 옥토버페스트와 마찬가지로 폴크페스트도 코로나 때문에 이태 쉬었다. 두 축제 모두 올 해에 재개되었는데, 폴크페스트는 9월 23일부터 10월 9일까지 열었었다. (아마 옥토버페스트도 비슷한 시기에 여는 것으로 안다.) 덕분에 올해도 어김없이 오후 2, 3시부터 지하철 역사 안에는 주정뱅이들이 돌아다니며 알코올 냄새를 풀풀 풍기고 다녔다.
뮌헨의 옥토버페스트는 아우구스티너 캘러의 생맥주를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만약 좀 더 독일식의 축제를 즐겨보고 싶다면, 나는 슈투트가르트 민속축제를 더 추천하고 싶다. 이 축제에 가면, 옛 독일식 전통옷**인 레더호젠 Lederhosen과 디른들 Dirndle을 입은 독일 사람들과 온갖 남부 독일의 음식들, 그리고 슈투트가르트 호프브로이 맥주를 마실 수 있다.
슈투트가르트에서는 민속 축제가 열리는 것과 똑같은 장소에서 4월 말부터 5월 사이에 봄축제 퓨릴링스페스트 Frühlingsfest 가 열린다! 4월에 부활절 휴가가 끝나기 무섭게 또 열리는 맥주 축제라니. 참... 놀 일이 많은 봄이지 말입니다.
보통 슈투트가르트에서는 봄축제든 민속축제든 바젠 Wasen이라고 부른다. 슈투트가르트 중앙역에서 에스반 S-Bahn (지하철) 1, 2, 3 호선 중 아무거나 타고 한 정거장만 오면 칸슈타트 역인데, 축제기간에는 거기에서 내리면 사람들이 독일 전통옷을 입고 알아서 바젠 쪽으로 걸어가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모르겠다면 바젠에 가고 싶다고 말하면 알려줄 것이다.
2. 만약 맥주보다 와인을 좋아해도, 위스키가 좋거나 코냑이 좋아도 독일은 참 좋은 나라다. 독일에서는 3, 4유로 정도면 마트에서 꽤 괜찮은 와인을 살 수 있다. 5유로에서 8유로 사이에서 고르라고 하면 정말 좋은 와인들도 마실 수 있다. (물론 독일인들은 대체로 5유로 이하의 와인을 마시는 것 같다.) 위스키와 코냑, 보드카와 같은 경우에도 한국에 비해 최소 만 오천 원쯤은 싼 가격에 살 수 있다.
3. 슈투트가르트에서는 좋은 진 Gin을 만들고 있다. 이름이 Gin Str인데, 슈투트가르트 STR에서 만든 진이라 는 뜻이다. 부를 때는 진슈타 라고 부르고, 슈투트가르트 지역의 레베에서 35유로 내외로 구매할 수 있다. 2019년도에 저 술이 세계 진Gin 대회에서 대상을 탄 이후 엄청 많이 마셨는데 (친구들이 모이기만 하면 다들 저 술을 들고 왔다) 마실때 마다 진짜 잘 만든 진이라고 생각한다.
4. 독일에서 사귄 친한 친구가 와인메이커였던 덕분에, 나는 우리 동네의 와이너리와 와이너리 축제에 종종 초대되었었다. 그러나 꼭 어떤 특정한 브랜드, 특정한 와이너리의 행사가 아니더라도, 포도밭이 있고 와이너리가 있는 독일 마을엔 꼭 행사가 있으니 관심이 있다면 한 번 검색해서 방문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독일의 와인도 생각보다 괜찮은 것들이 많다. 특히, 슈투트가르트 에슬링엔 Esslingen에는 독일에 최소로 스파클링화이트와인을 만들기 시작한 와이너리가 있다. 이 곳 와인은 선물로 참 좋다.
** 독일의 전통 옷: 레더호젠(가죽바지) Lederhosen과 디른들 Dirndle(실제 발음은 드린들처럼 들린다)
사진은 얌전한 걸로 골랐다. 실제 축제에 가면 온갖 베리에이션을 볼수 있다. 슈투트가르트가 있는 바덴뷔르템베르크에서는 남자들의 셔츠나 여자들의 치마에 체크무늬가 기본이다. 사진은 바이언(바이에른, 뮌헨 지방)쪽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여하튼 실제로 저 옷을 입은 사람들을 보면... 평생 스스로 유교걸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던 나조차도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른다고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