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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이 Nov 18. 2022

독일에서 채식하기

독일의 비건, 베지테리안 식품

 2018년 독일에서 혼자가 된 이후에 나는 내 생존을 위한 모든 일을 나 스스로 책임지게 되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고기에서 멀어졌다.


 일단 고기는 관리하기가 어려웠다. 고기를 먹을 사람은 한 사람인데 독일의 마트에서 파는 고기는 최소 2~3인분이었기 때문이다. 유학 초창기 노부부와 함께 살다 보니, 내가 쓸 수 있는 냉장고 속 공간은 정해져 있었다. 그런데 그 공간에 고기를 상하지 않게 보관할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덕분에 자연스럽게 고기를 사는 일이 줄었다.


 그러다가 모종의 사건을 겪고는 아예 채식주의자가 되기로 하였다. 결과적으로 나는 지금, 나이롱이긴 하지만 대체로 비건을 지향하는 삶을 살고 있다.*



먹을 수 있는 꽃들이나 명이나물 따위를 따고, 마늘과 아보카도를 더해 차리는 밥상


먹을 수 있는 꽃들은 모두 조금씩 다른 맛을 낸다. 의외로 노란빛이 대체로 쓴 맛을 내고, 보랏빛이나 푸른빛이 달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샐러드에는 보랏빛 꽂을, 익히거나 장아찌, 국 등 간을 내는 보조재료(된장이나 간장 등)의 맛이 강한 음식에는 노란 꽃을 넣는 편이 좋았다.
산마늘과 민들레, 양파로 만든 장아찌에는 산마늘 꽃도 넣었는데 아주 맛있었다.



 특히 내가 편식을 거의 하지 않는 편이라는 것도 도움이 되었다. 나는 원래 탄수화물을 좋아하고 오히려 육식을 편식하는 편이었다. 양고기나 말고기 등은 냄새가 나서 먹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나는 요리도 좋아하고 새로운 것을 경험하는 것도 즐기는 편이다. 덕분에 한국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하얀색 아스파라거스라던가, 미라벨 같은 과일을 시도하면서 4년 넘도록 채식의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고기 맛은 이미 알고 있으니, 모르는 맛을 경험하는 셈이다.


 세상은 넓고, 먹을 것은 많다.


 나처럼 독일에서 채식을 해 보고 싶은 사람들이나, 유럽의 채식 재료가 궁금한 사람들을 위하여 내가 즐겨 먹는 채식 재료를 소개해 보려고 한다.





가장 왼쪽의 비건 부어스트는 우리나라의 분홍색 소시지를 닮았다. 맛도 그것과 흡사하다. 한국의 분홍 소시지는 어육이 들어간 소시지(밀가루와 어육을 넣되 고기 맛이 나도록 양념한 것)를 비건으로 맛볼 수 있다. 레베 REWE의 PB 상품으로 슈퍼마켓 REWE에서 살 수 있다.


Vemondo는 슈퍼마켓 알디 ALDI의 비건, 베지테리언 상품 브랜드이다. 가운데 것은 비건 미니 돈가스. 독일어로 돈가스는 슈니첼 Schnitzel이라고 한다. 쌀과 밀가루 단백질로 만들어져 있다고 쓰여 있었다. 다양한 종류의 비건 식품을 접해봤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간편하고 맛있었다. 마지막은 비건 치즈다. 맛과 늘어나는 모양새가 진짜 치즈와 다를 바 없어서 좀 무섭기까지 한 신기한 치즈 대체 식품이다.





 다양한 초콜릿 브랜드에서는 이미 비건 초콜릿을 많이 내놓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유명한 리터 슈포트 Ritter Sport**은 물론 밀카 Milka, 린트 Lindt 등에서도 비건 초콜릿을 판다. 사실 초콜릿은 애초에 베지테리안 식품이긴 하지만 유제품을 안 먹는 비건들은 비건 초콜릿이 반가울 수밖에 없다. 베가네 프랄리넨 Vegane Pralinen이라고 적힌 저 제품은 레베에서 나온 상품인데 한 알씩 입에 넣을 수 있는 상품으로 알코올이 들어있지 않은 제품이다.


 왼쪽의 원통은 반조리 식품(?)으로 나온 비건 크루아상. 아마... 마가린을 넣었겠지요.... ㅎㅎ 그렇지만 맛있다. 저 원통의 껍질을 돌돌 돌려 벗겨내면 역시나 돌돌 말린 생지가 들어있다. 점선을 따라 삼각형으로 잘라서 말아 크루아상 모양을 만들어 구우면 된다. 나는 종종 사다 해 먹는다.






어느 날인가 언니가 햄버거 이야기를 해서 나도 갑자기 먹고 싶어졌다. 그래서 마트에 가서 비건 버거 패티와 비건 버거 번과 비건 치즈를 사다가 거대한 비건 버거를 만들어 먹었다. 시들한 루꼴라와 토마토 추가.


재료: 비건 버거 번, 비건 버거 패티, 비건 치즈, 루꼴라, 토마토
소스: 케첩:간장:설탕 = 2:1:0.5 / 비건 마요네즈:겨자 = 2:1
만드는 법:
1. 모든 재료를 준비해서 늘어놓는다.
2. 소스는 위의 비율로 섞어서 만들어 둔다.
3. 패티를 굽는 동안 버거 번에 소스를 나누어 바르고, 토마토도 슬라이스 해 둔다.
4. 루꼴라, 패티, 치즈, 토마토 순으로 올리면 완성.


하나는 당장에 먹고, 하나는 남겨서 쿠킹 페이퍼에 싸 두었다가 다음날에 먹었다.






비건 너겟은 말 그대로 비건 용가리(...)였다. 궁금한 것은 비건 코르동 블루였는데 된장국을 끓이고 조와 퀴노아를 넣은 밥도 짓고, 간장과 케첩, 겨자, 참깨로 만든 소스를 곁들여 먹었다. 가장 마지막 사진이 비건 꼬르동 블루의 단면이다. 충실하게도 비건 쌀고기와 비건 치즈가 들어있었다. 맛은 역시나 예상 가능한 그 맛이었다. 고기+치즈 맛.


나의 느낌으로 독일의 비건 대체육 들은 어떤 것이든 소위 콩 냄새 같은 건 거의 없다. 단, 조리가 되어있지 않은, 위에서 봤던 것 같은 비건 버거 패티 같은 경우에, 브랜드 별로 양념이 과해서 향과 맛이 강한 경우가 있었다. 나는 특히 리들 Lidl에서 파는 비건 고기들이 좀 그랬다.




그리고 이건, 녹두 전분으로 만든 비건 달걀이다.

나는 완전 채식을 지향하긴 하지만 채식주의자 정도로 타협을 본 상태인지라, 달걀은 진짜 달걀을 사서 먹곤 하는데, 이건 너무 궁금해서 발견하자마자 사 봤다. 그런데.... 음....

저 통에 물을 넣고 흔들어서 달걀물처럼 만들어 쓰면 된다고 해서 시키는 대로 반죽(?)을 만들고(?) 비건 달걀말이를 했다. 그런데 맛이, 감자전 맛이 났다. 질감도 굉장히 끈적거리는 감자전 뭉텅이 같았다. 다시는 안 사 먹을 건데, 혹시 내가 사용 방법을 잘못 이해한 걸까, 싶기도 하다.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로 실패한 비건 식재료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독일에는 정말 많은 비건 제품이 있다. 학교에서 파는 머핀 종류는 전부 비건이기도 하고, 누가 봐도 비건일 식품(브렛쩰이나 젬멜, 타펠 브뢰첸 등)이 아닌 다른 베이커리 중 비건일 때에는 꼭 비건이라고 표시가 되어있다. 말하자면, 자신들이 어떤 재료를 썼는지 공개해서 소비자에게 선택의 폭을 넓혀주는 셈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나는 한국에서 비건으로 사는 게 더 쉽다고 생각한다. 메인 요리만 잘 고르면, 우리 식탁의 반찬들은 비건이 많다. 온갖 나물들, 젓갈을 뺀 김치, 두부, 콩, 채수로 끓인 국, 기타 등등. 우리나라 사람들이 익히거나 절인 야채를 많이 먹는다는 건 사실이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나라 사람들은 모든 음식을 다 많이 잘 먹는다. 통계에 따르면 바다에서 나는 것도 전 세계 사람들 중에 제일 많이 먹는데, 특히 비동물성 바다식품을 많이 먹는 점이 특이하다고 한다. 그게 뭐냐면, 김과 다시마다.) 반면에 독일 사람들의 식습관은 '고기와 감자'이기 때문에 오히려 채식을 하려면 여러 가지 성분표를 잘 살펴야 한다.


지난번에 한국에 가 보니 한국에도 최근에는 비건 제품이 많이, 아주 잘 나와 있었다. 나는 엄마가 나를 위해 특별히 준비해 준 채식 만두를 잔뜩 먹고 왔다. 독일의 비건 제품은 아무래도 유럽인들이 자주 먹는 고기를 대체품으로 만든 경우가 많다. 그런데 나는 두부가 맛있는 나라*** 한국에서 온 사람이라 고기보다 두부가 더 익숙하고 맛있고 좋아서, 여기에서도 아시안마트에서 아시안식으로 만든 두부를 사서 먹는다. 한, 중, 일 것을 다 먹어 본 결과 한국 두부가 제일 맛있다. 일본 두부는 연두부가 맛있는 편이었다.


각설하여 결과적으로는 나는 나일롱 비건이 되었다. 가끔은 강조표시가 나일롱에 들어 있다는 게 좀 슬프다. 밖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할 때에는 생선도 종종 먹고, 몸이 너무 부칠 땐 달걀보다 간편한 도시락 재료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유제품은 최대한 피하려고 하고 있다.


그래서 4년 차 채식주의자의 솔직한 소감은, 비건 지향을 한다는 건 조금 피곤하다는 것이다. 음식을 편식해야 한다는 것도 그렇지만, 그보다는 오이나 익힌 당근, 토마토가 아닌 고기를 편식하는 경우에 들어야 하는 잔소리는 채소를 편식하는 사람들이 듣는 잔소리보다 심하다는 점도 있다. 그래도 독일에서의 나의 채식 라이프는 순항 중이다. 마트의 비건 코너에서 새로 나온 제품을 구경하고 먹어 보는 것도 즐겁다. 신선한 과일과 우리나라 것과는 사뭇 다른 채소를 가지고 비건 김치를 시도하는 것도 재밌다.


두부가 1킬로에 3천 원 정도 하는 한국에서 굳이 고기 대체품을 찾을 일은 없어 보이지만, 만약 고기를 엄청 좋아하지만 채식이 궁금하고, 유럽에서 신기한 걸 먹어보고 싶으시다면 마트에서 비건 대체육을 찾아서 시도해 보시길 바란다. 진짜로 고기와 흡사해서 매번 식품 공학의 힘에 대해 놀라게 될 것이다.







Tip

1. 슈퍼에서 유용한 독일어 두 개

Ohne는 ~이 없는 with out이라는 뜻이다. Ohne Alkohol은 알코올이 없다는 뜻이다.

반면에 mit 은 ~이 들어간 with라는 뜻이다. mit Soja Protienen 은 콩 단백질이 포함되었다는 뜻이다.

이 두 표시가 중요한 이유는 사실 물을 살 때 필요해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마시는 생수는 Ohne 표시를 꼭 확인하자. 탄산이 없다는 것을 Ohne로 표시해 두었다. 참고로, 탄산수의 탄산 정도는 mittel 중간 / stark 강함 표시가 있다.


2. 독일에서는 누구에게든 식습관을 숨길 필요가 없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알리시길.

왜냐하면 여기에서는 사람들이 누군가 채식주의자라고 한다면, 왜? 언제부터? 보다, 무엇까지? 를 더 궁금해하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허용하는 정도를 알아야 약속 장소를 잡기 편해서 같다. 물론 대부분의 레스토랑에는 비건 메뉴가 있다. 햄버거 집에서도 마찬가지다. :)





* 채식주의자가 자신의 식습관을 요리사에게 알려야 할 경우 등을 위해 (마치, '저는 땅콩 알레르기가 있어요'라고 할 때처럼) 간편하게 분류한 기준이 있다. 그러나 그 분류는 단지 분류일 뿐, 비건은 일종의 삶의 태도라서 나는 비건을 지향한다고 말한다. "나는 곧 죽을 것 같지만 먹을 게 고기뿐이어서 고기는 안 먹어!"라고 한다는 것도 개인의 선택이지만, 나는 이런 건 멍청한 일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같은 의미로 나는 자기가 채식한다고 아이들에게도 고기를 안 먹인다거나, 사람이 아픈데 고기를 안 먹는다는 것도 좀 미련하게 느껴진다. 뭐든, 잘 살려고 하는 일이라면 꼭 '잘' 뿐 아니라, '살려고'도 인식하고 있기를 바란다.


** Ritter Sport 리터 슈포트는 정사각형의 모양을 한 초콜릿의 브랜드 명이다. 이 초콜릿 회사가 Stuttgart에 있다. 슈투트가르트에서 차를 몰고 여행할 수 있다면, 이 공장을 견학 가 보는 것도 좋다. 갤러리가 있어서 전시를 관람할 수 있고, 카페도 꽤 멋있고, 무엇보다 공장에서 맛을 테스트 중인 '시험용 초콜릿'을 비롯한 모든 종류의 리터 슈포트 초콜릿을 저렴하게 사 올 수 있다.


*** 두부는 정말이지 아시아 사람들이 만든 두부, 특히 한국 두부가 정말 맛있다. 유럽의 일반 마트에서 파는 두부는 대부분 스펀지 맛이 난다. 이들은 두부를 만들 때 아마 프레스 Press를 하는 것 같다고 느껴진다. 질감도 맛도 그렇다. 우리처럼 제대로 된 간수로 콩 단백질을 굳히지 않는다고 느껴진다. 나는 평소에 먹는 두부는 아시안 마트에서 구매하고, 여름에 가끔 샐러드에 넣을 훈연 두부 Räucher-Tofu(로이혀 토푸)만 독일 마트에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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