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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이 Sep 02. 2022

코로나와 동양인과 독재자

21세기 역병의 시대에 히틀러의 나라에서 산다는 것

 코비드 19는 유학생에게 유난히 지독하다. 현재 진행형으로밖에 말할 수 없는 것이 속상하지만 당분간은 더 이어질 것 같으니 어쩔 수 없다.


 지금이야 좀 익숙해졌으니 괜찮지만, 초창기에 '질병관리국 CDC'이라거나 '전파 Verbreitung' 같은 단어들이 무수하게 쏟아지는 뉴스를 들을 땐 아뜩했다. 나는 COVID19라는 글씨가 크게 박힌 화면을 배경으로 말 그대로 와르르 토해지는 독일인 앵커의 말속에서 '감염 Infektion' 같은 단어 정도를 알아들을 수 있었는데, 한 발이 아니라 거의 열 발은 늦은 독일 방역 체계는 정말이지 엉망진창이었기 때문이다.




뒤늦게라도 시행되었던 독일의 코로나 예방 캠페인 AHA



 그러다 내 주변에서도 코비드로 사망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하자 더럭 겁이 났다. 호흡기 질병이긴 하지만 조금 독한 감기 같은 거라던 독일 질병당국의 설명은 전부 거짓말이었다. 게다가 사태가 심각해지자 자신들의 뒤늦은, 헐거운 방역에 속수무책으로 지배당하는 현실을 어떻게든 포장하느라 야단이었다.


 초창기에는 마스크를 왜 쓰냐고, 그건 병상에 누워있는 사람과 의료인만 쓰면 된다고 하던 독일 정부는* 코로나가 대차게 확산하고 나서야 마스크를 써야 한다더니, 면 마스크는 허용할 수 없다며 덴탈 마스크로 바뀌었다가, 갑자기 EU 안에서 자체 제작한 마스크만 써야 한다고 규칙을 바꿨다. 그리고는 한쪽에 유럽 규칙을 적용하여 만든 것이라는 인장이 찍힌 마스크를 판매하기 시작했는데, 그러면서 오랜 시간 황사와 미세먼지에 시달리면서 개발했던 덕분에(?!) 품질 면에서 뛰어난 한국산 제품은, (이 말을 하는 게 위험하다는 것인 줄 알지만 꼭 하고 싶어서 한다.) 중국산 마스크도 허용했으면서 아주아주 뒤늦게야 인정을 해 주었다. (여러 가지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Abstand (멀리 떨어지기) + Hygiene (위생) + Alltagsmaske (마스크 일상화)라는 구호 아하 AHA를 만들어 선전했지만 당연히 사람들은 말을 듣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사람들은 시도 때도 없이 마스크가 쓰기 싫다며 시위를 했다. 위기 사태라는 말에 곧장 마트에서는 휴지가 동이 났고 밀가루와 이스트도 몽땅 사라져 버렸다. 냉동 야채들이 들어있던 칸은 말 그대로 텅텅 비었다.


 그다음엔 학교와 도서관, 체육시설부터 문을 걸어 잠갔다. 어느 날부터는 저녁 8시, 혹은 10시 이후로 통행을 제한했고, 여기에 모임 인원수 제한까지 생기면서 며칠마다 한 번씩 룰이 바뀌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오피스까지 전부 닫히고 나서는 고립이었다. 나는 1년 정도를 그저 집 안에서만 머물며 모든 일을 해 내야 했다.




사람이 없는 시간에 달리기를 하기 위해 해질녘 찾았던 공원



 그러는 와중에 전 세계에서는 인종차별 문제가 산발적으로 일어났다. 독일에서도 그랬다. 엄마는 나에게 전화를 할 때마다 별일이 없느냐고 물어보셨다. 나는 그저 웃으며, 지구에서 인종차별은 원래 공기 같은 거라고 대답했다. 무색무취의 공기. 그런데 그 공기같이 만연해 있던 인종차별이 물리적인 형태까지 갖추기 시작하는 데에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2018년 여름부터 약 1년 반 동안 슈투트가르트에서 지내는 동안에는 인종차별을 직접 당해본 일이 없었다. 우선적으로 내가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독일에서도 소위 잘 교육받은 hoch geschult 사람들이었기 때문이고, 독일인들이 오랫동안 교육받아온 '인종 차별해서는 안된다는 의식'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코로나가 전파되고 그 발원지로 중국이 지목되면서, 아시안 여성인 나는 혼자 돌아다니기가 좀 무서워졌다.


 일단 길거리에서 칭챙총!** 하고 말하는 사람을 만났다. 무슨 말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적대적인 눈으로 바라보며 뭐라고 소리를 지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통금은 물론 9시 이후 주류 판매 금지 규칙까지 시행되는 와중에도 술 취한 사람들이 거리에서 "Scheiße China!(빌어먹을 중국!)"이라고 외치는 소리가 내 방까지 들렸다.


 독일인 친구들에게 이런 말을 하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모두 사실이니 아무래도 조심해야 할 것 같다고 충고했다. 나는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아무도 마스크를 하지 않았다는 것도 무서웠고 직접적으로 위해를 가할까 봐 걱정도 됐다. 또한 친구들의 '네가 조심해야겠다'는 말에도 완전하게 동의했다. 결과적으로 나를 지킬 수 있는 것은 나뿐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코로나가 퍼지는 중에도 2020년의 봄은 착실하게 돌아왔다가 미련 없이 지나갔다.



 2020년 봄을 지나가면서, 독일의 코로나 확진자 수는 어마어마한 숫자로 늘어있었다. 남서부 독일에서는 흔치 앉은 동북아인의 전형적인 외모를 가진 덕분에, 마트에 가면 흘끔흘끔 나를 보는 시선을 느낀 뒤로는(물론 이건 좀 느낌일 수도 있다.... 느낌만은 아닐 수도 있고.) 일주일에 5일 정도를 집 안에만 있기도 했다.


 친구들도 못 만나고 그저 집안에만 머물던 어느 날, 교환학생으로 독일에 왔던 친한 동생에게서 연락이 왔다. 코로나 검사를 받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다는 연락이었다.


  말을 들어보니, 아이들은 이미 우리 지역의 코로나 방역 센터와 코로나 지정 병원에 전화를 했는데, 전화를 받은 의료진들이 '영어'를 모르겠다면서 10번 정도 전화를 여기저기 돌려대다가 아무 설명 없이 그냥 끊어버렸다는 거였다. 아이들은 어제 확진을 받은 다른 독일인 친구와 그저께 저녁 식사를 같이 했다고 했다. 심지어 코로나 검사를 하고 싶어 하는 아이에게는 발열이 있었다. 나는 솔직히 말해서, 놀랍지도 않았다. 첫째는 영어를 못하는 의료진***이 독일에는 허다했기 때문이었고, 두 번째는 내 느낌으로 코로나를 맞이한 독일의 의료 체계는 붕괴한 것과 다름없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학교도 이미 마비 상태이고, 교환학생들을 담당하는 선생님이 딱히 지정된 상태도 아니었다는 데에 있었다. 아이들은 한 아이가 발열이 있다는 것을 보고 전부 패닉에 빠져있기도 했다. 그래서 일단은, 너희들끼리도 격리 잘하라고 말해 두고 내가 전화해서 물어봐 주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이미 전화를 걸었다는 같은 주립 병원에 전화를 해서, 독일어로 상황을 설명하고 검사를 받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나와 통화한 사무원은 내 이야기를 듣고, "코로나 검사는 발열이 있다고 해서 병원에서 해주지 않는다. 검사소가 따로 있으니 그곳에 가서 받으라"라고 말하며 내게 주소를 불러 주었다. 병원에서는 정말로 아이들이 단지 독일어를 못하는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안내를 해주지 않았던 것이다.




코로나 초창기엔 밖에서 찍은 사진이 전부 새벽이나 저녁이다. 사람이 없을 때에만 달리러 나갔기 때문이다.



 비슷한 경험은 나에게도 일어났다. 나에게 있었던 사건은 독일어의 문제라기보다는, 독일에서의 내 신분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나는 엄밀하게 따지면 독일에 정주하고 있지 않는 상태의 외국인이기 때문이었다.


 온갖 종류의 품절 대란과 무수한 통금의 날들이 지나고, 드디어 독일이 젊은이들에게도 백신이 보급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백신을 맞고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백신을 맞았다는 이야기가 종종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한국에서는 부모님께서 나도 빨리 백신을 맞으라고 하셨다. 나도 백신을 맞고 싶었다. 그런데 백신을 맞을 방법이 없었다.


 고위험군으로 분류된 고령자들에게 백신을 우선적으로 보급한 뒤, 독일은 직장에서 직장인들과 그 가족들에게 백신을 놔주기 시작했다. 직장의 규모가 작아서 직장에서 놔주지 않을 때에는 '주치의 Hausarzt'가 있는 병원에 가서 맞으라고 했다. 그리고 당연히 나에게는 이 '주치의 Hausarzt'라는 게 없었다. (그리고 이 사실은 추후에도 나에게 여러 문제를 발생시켰다.)


 2021년까지도 독일의 코로나 전파 양상은 한국과 조금 달랐다. 한국에 비해서 대체로 아주 높은 감염자 수와 사망률을 보였다. 사망률이 높은 질병에 대해 감염 관리도 못하는 것 같은 데에다가, 사회 구성원들이 별로 규칙을 지키지도 않으니, 내게 백신을 맞는 일은 꽤 중요하게 느껴졌다.


  나는 내 주변 사람들 대부분이 백신을 맞은 뒤에야 독일에서도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수시 신청을 통해 예약하고 맞을 수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독일인 친구가 잔여 백신을 예약할 수 있는 인터넷 사이트 impfterminradar를 알려주었고, 뒤늦게 백신을 예약할 수 있었다.


 우리 동네의 중심지에 있는 공연장으로 쓰이던 건물이 긴급 코로나 백신 접종 센터로 변해 있었다. 백신을 맞으러 갔더니, 동양 사람은 나 한 사람이었다. 백신 맞는 것을 도와주는 사람들은 모두 친절했고 내가 외국인이라서인지 엄청 열심히-느린 말로- 설명해 주었다. 나는 30대 여성이기 때문에 ASZ이 아니라 모더나가 배정된다고 했다. 독일에서 수기로 작성해서 배급하는 노란색의 백신 패스의 존재도 이때야 알았다.


 여권과 백신 패스, 문진표를 들고 주사실에 들어가 주사를 맞았다. 주사 맞는 일은 겨우 30분 만에 전부 다 끝났으니, 주사를 맞고 나오자 예약하는 데에 걸린 시간이 너무 길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1차를 맞으면서 2차 백신이 자동 예약되어있기 때문에 더 이상 그 사이트를 수시로 확인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내가 2차 접종을 마치고 나서도 거의 1달이 다 지난 뒤에야 학교에서 '외국인 학생과 교환학생, 아직 접종을 받지 못한 학생들을 위한 백신 접종 안내'를 시작했다. 정말로 백신이 남고 나서야 주사 맞을 방법이 없었던, 그러나 곧 다른 학생들과 함께 학교를 다녀야 할 청년들을 챙겨 준 것이다.




백신은 3차까지 전부 다 잘 맞았다. 사진은 2차 접종 때의 사진들.



 이런 사건들 외에도 참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이런 혼란한 상황도 거의 3년이 되어가니 좀 무뎌지는 것 같다. 반면에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한 가지 내가 분명하게 느끼는 것은, 독일인들이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는 점이다.


 실제로 코로나가 확산되던 초창기에, 독일에서는 코로나를 아시아에서나 유행하는 질병 정도라고 생각해 마스크를 사재기하는 것을 약간 비웃듯이 보도했었다. 자기들은 '사재기 Hamsterkaufen'를 안 할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정작 유럽에도 코로나가 확산되기 시작하자 독일인들은 미친 듯이 사재기를 시작했다.


 더구나 마스크와 같은 필수 용품은 누가 사재기를 한 것도 아닌데 없어서 보급을 못했다. 마트에서는 우습게도 먹지도 못하는 휴지부터 동이 났다. 유럽에서 휴지를 만드는 펄프를 대부분 아시아에서 수입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펄프를 수입하기가 힘들어질 것이라는 루머가 돌아서였다.


 그다음에는 이스트와 밀가루가 사라졌다. 냉동음식이나 통조림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이스트까지 동이 난 이유는, 독일인이 자주 먹는 빵의 생지를 폴란드에서 많이 수입하는데, 폴란드가 독일보다 코로나 확산이 높아 그 생지들도 오염되었을 확률이 높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나는 아직도 차라리 그때 사람들이 손을 잘 씻고 마스크를 잘 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TV에서는 독일에서 독일의 휴지를 생산하고 있다는 다큐멘터리를 방영하고, 폴란드산 빵 생지는 바이러스에 오염될 확률이 낮다는 뉴스를 보도했다. 사재기하는 사람들을 달래는 방법이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휴지는 정말 오랫동안 찾기가 참 힘들었다. 더구나 영국으로부터는 코로나가 랜선을 타고 전파된다는 루머까지 돌고 야단이었다. (이 루머는 지금 생각해도 좀 웃기다. 저 말을 믿은 사람들은 컴퓨터가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는 말도, 기계가 생물 bio적인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고 믿는 걸까?)


 여기에 한국이 아주 효과적으로 코로나를 통제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한국형 드라이브 스루 검사소 모델이 독일에 들어오면서, 코로나 초창기 국가 원천 봉쇄를 통해 코로나를 방역한 대만과 원천 봉쇄를 하지 않고도 자발적으로 의료진과 감염자를 지원해서 위기를 극복하고 있는 한국을 비교하는 보도가 함께 쏟아졌다.


 이 와중에 나를 가장 황당하게 한 말은, 이처럼 아시안들이 국가가 만들어내는 새 규칙을 잘 따르는 이유가 독재자에게 지배당하고 있거나(동북아의 바로 그 국가들) 지배당한 역사가 있기 때문이라는 말이었다. 처음에 이 말을 들었을 때는 말 그대로 헛웃음이 났다.


 히틀러의 나라에서 이런 말을 하겠다고?


 물론 불행인지 다행인지 내 앞에서 '한국이 그렇게 코로나 관리를 잘하고, 한국인들이 국가의 체계를 잘 따르는 이유는, 한국이 이미 박정희 같은 독재자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피지배자 의식이 있어서 그래'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어쨌든 이런 말이 공영방송에 나왔다는 것은 놀랍지 않은가.




그 외에도 당시 티브이에서는 한국 관련 방송이 자주 나왔다. 보다가 신기해서 찍어 본 다큐멘터리의 일부.****



 그 이후에도 독일의, 유럽의 몸부림은 계속되었다. 마스크도 없이 코로나 시위를 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마스크를 쓰지 않을 자유가 있다고 말했다. 자기들은 자유를 수호하는 사람들이고, 그러니까 감염자 추적 시스템 같은 것은, 설사 그것으로 바이러스 전파를 막을 수 있다고 할지라도, 절대로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감염 사실을 숨길 권리는 프라이버시에 대한 옹호라는 것이었다.


 결국 독일에서는 한국에서처럼 사람들의 동선을 파악하는 일을 하지 않았다.***** (인터넷이나 장비도 한국처럼 발달되어있지 않고, 사람들도 거부하니 못 한 것이지만, 감염이 발생했다고 해도 방역 소독을 철저히 하지도 않았으니 그냥 포기한 것 같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개인에게 타인을 감염시키지 않을 의무가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내 친구들은 진지하게 한숨을 쉬면서, 독일인들에게는 한국 사람이 으레 가지고 있는 공동체 의식이 전혀 없는 것 같다며 자기비판적인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2022년 늦여름. 이제는 코로나에 대한 걱정이 한풀 꺾인 것 같다. 대중교통을 제외한 대부분의 장소에서는 마스크 의무 착용도 해제되었다. 원래도 야외에서는 마스크를 잘 안 쓰던 독일이었으니, 마트는 물론 학교 엘리베이터와 같이 밀폐된 공간에서도 마스크 쓴 사람을 보기가 어렵다. 원숭이 두창이라던가 다른 여러 종류의 질병들이 돌고 있고, 코로나에 대해서도 아직은 완전히 위험성이 사라졌다고 할 수 없어서 가을이 되면 규칙이 또 어떻게 변할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코로나 한창때와 비교하면 꽤나 안정됐다고 할 수 있다. 진심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드디어 좀 평화로운 요즈음...



 이상의 내용은 내가 만 2년이 넘어가도록 유럽에서 코로나 상황을 겪으며 있었던 몇 가지 사건들이다. 전부 우리 지역에서 있었던 내 개인적인 경험이고, 그래서 독일의 보편적인 상황이 아니다. 하지만 유학이라던가 이민을 생각하시는 분들께는 꽤나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경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글로 남겨본다.


 요즘의 유럽은 바이러스보다 인류가 더 문제다. 21세기에 영토 전쟁이 일어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구별도 인류에게 그만 좀 하라고 화를 내는 것 같다. 이런 시기에 이곳에서 이런 순간들을 보내고 있다는 것은 쉽게 해 볼 수 없는 경험이고 다시 겪기도 어려운 일인 듯하다.


 오랜만에 비도 오지 않고 더위도 한풀 꺾인 2022년 9월 초, 옛 동구라파 독일의 오후. 좋아하는 시구를 마지막으로 읊어 보며 글을 접는다.




언제나 인생은 설명할 수 없는 일들 투성이
언젠가 운명이 흰 수염고래처럼 흘러오겠지
_ 심보선, 《좋은 일들》





 


Tip


1. 독일의 주치의 시스템

 독일의 의료 시스템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있지 못해서 전부를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내가 아는 한도에서 가장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독일인들은 자신의 의료 보험(대체로 공보험)이 보장하는 의료 행위에 한해, 긴급하고 일반적인 의료보건 행위를 전담하는 주치의를 갖고 통상적인 진료를 받고 있다.

 그런데 내가 가지고 있는 건강보험은 사보험으로서 5년짜리의 소위 '여행자 보험' 같은 '외국인 학생을 위한 일시적인 의료 보험'이고, 이런 사보험은 주치의 배정이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내가 병원에 가고 싶어서 예약 문의 전화를 하면, '우리 병원에서는 너를 받아줄 수가 없으니 네 직장에서 소개해주는 의사나 네가 원래 다니던 의사에게 가라'는 말을 한다. 코로나 이전에는 그래도 의사들이 종종 새로운 환자를 받아준 모양인데, 코로나가 시작되고서는 의료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빈도가 늘어서인지 동네 대부분의 의사들이 새로운 환자를 받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2. 독일에서는 뭐든지 확인하고 또 확인해야 한다.

 백신 2차를 맞을 때에도 시스템적인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1차는 동네의 리더할레에 임시로 열었었던 백신 접종 센터에서 놔줬으면서, 2차는 아무런 말이나 안내 없이 백신 접종 장소를 바꾸어 버렸다. 바뀐 장소는 도시의 공항과 우리 동네에서도 존 zone 하나를 넘어가는 옆 동네의 무슨 체육시설 두 곳 중 하나에 가야 한다고 했다. (이것도 일단 리더할레에 가서 아무것도 다 없어진 탓에 구글로 검색해서 알아냈다.) 우여곡절 끝에 체육관에 가서 주사를 잘 맞긴 했지만... 아무런 통보 없이 자기들끼리 그냥 바꿔 버리고, 알아서 잘 찾아오라고 하는 독일의 서비스 정신은 한국인으로서 참 잘 지내보기 어렵다. 


3. 독일어의 중요성

 독일은 영어를 쓰는 국가가 아니니 당연히 독일어를 할 줄 알아야 살기 편하다. 독일어에 능숙하지 않다면, 적어도 주변에 한 사람 정도는 독일어가 모국어인 친구를 사귀어 두어야 한다. 솔직하게 내 상황을 설명하고 예의 바르게 부탁하면, 문제 상황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친구를 분명히 찾을 수 있다.


4. 문제 상황이 발생하면 구글을 잘 활용하자.

 알고 보니 불러준 주소는 우리나라에서 드라이브 쓰루로 실행했던 자동차 코로나 검사소와 일반 검사소가 함께 있는, 그 주소의 공원 안에 만들어진 검사소였다. 아무리 주소를 검색해도 허허벌판처럼 나와서 당황했는데, 아이들이 그곳에 가 보니 한쪽으로는 차들이 오가며 검사받고 한쪽에는 사람들이 쭉 서서 기침하며 기다리고 있었다고 했다. 나중에 구글 지도가 아니라 구글 검색창에 주소를 기입해 보자, 신속검사 shcnell Test를 받을 수 있는 장소라고 안내되어 있었다.

 참고로 검사를 받은 아이들은 전부 음성이 나왔지만, 발열이 있는 아이는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 해 검사를 받은 다음날 바로 귀국했다. 그 아이는 귀국 직후 양성 판정을 받았고, 한국에서 잘 치료받았다. 다른 아이들은 다행히 음성이었던 게 맞았는지 무탈했다.





* 독일 정부의 첫 번째 코로나 대응 수준은 정말로 엉망이었다. 무슨 정부 산하 공무원이 라디오에 나와서 마스크를 사느니 마스크 주식을 사라는 말을 농담으로 한 적도 있었으니, 코로나를, 아니, 세계화를 얼마나 우습게 여겼는지 모른다.


** '칭챙총'은 서양인들의 귀에 들리는 중국어의 소리라고 한다. 당연히 비하하는 말이다. 칭챙총칭챙총 빨리 하면 엄청 날카롭고 듣기 싫어지는 소리가 되기 때문이다. 참고로 나는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늘, 영어는 블라블라, 프랑스어는 샹숭샹숭, 독일어는 드쉬드쉬로 들린다고 대꾸한다.


*** 의료진 중 보조 의사(뭐라고 표현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특히 물리치료나 치과의사 등 의료 지식보다 의료 기술이 더 필요한 사람들의 경우에는 대학을 나오는 게 아니라 아우스빌둥으로 의료행위를 할 수 있는 것 같다. (정확하진 않다.) 내가 이렇게 추측하는 이유는, 일단 대학을 (전문대학 Fachhochshule이 아닌 종합대학 Universität을) 나온 이상 영어를 못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대학생들은 3개 국어 정도 한다. 독일어, 영어, 프랑스어나 라틴어.)


**** 저 다큐는 한국전쟁에 관한 다큐였다. 갑자기 저 다큐가 방영된 이유는 잘 모르겠다. 한국전쟁부터 지금까지 남북한의 상황과 대립에 대한 내용이었다. 다큐 자체는 지구 유일의 분단국가 한국의 전쟁과 대립의 역사를 보여주는 내용으로, 독일어 제목은 <Der ewige Korea-Krieg>였고, 해석하자면 '끝나지 않은 한국 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다큐멘터리는 미국 중심의 서방 자유주의 진영이 북한을 대하는 태도를 언급하며 시작해서, 한국전쟁의 역사를 보여준 뒤, 현재 북한에는 공산사회주의 정권이 아직 있고, 한국은 군부 독재를 거쳐 민주화가 이루어졌다-고 끝나는 사실 복기형 다큐였다.


***** 개인적으로 나는 아직도 QR 코드를 이용한 전 국민 위치추적에 대해서 생각이 많다. 사생활 보호와 사회 공동체의 안전이라는 두 가지 큰 가치 사이에서 무엇이 더 중요한지 결정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상황마다 다른 가치를 우선 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할 때에, 상황의 긴급성과 그 우선순위를 판단하는 것은 결정자의 능력에 기댈 수밖에 없으므로, 다시 한번 결정자를 뽑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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