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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이 Aug 26. 2022

주독한국대사관과 한국식 민원처리

초스피드 여권 재발급_독일이지만, 1주일이면 끝납니다

 외국에서 산다는 것은, 거주할 수 있는 허가를 받는 데에서 모든 것이 시작한다. 일단 해외에 왔으면, 내가 아무리 정상적인 사람이라도, 정상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보증받은 후에야 제대로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학교에 입학한 뒤에 첫 비자를 받을 때에는, 아무래도 학장님의 연구 허가서가 없어서인지 1년짜리 비자를 받았다. 그리고 그다음 해에 다시 비자를 받으려고 할 때 한 가지 깨달았다. 바로, 내 여권의 만료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이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아 버린 데에 있었다. 외국인청에서 비자를 연장하러 오라는 편지를 받았을 때 비자 만료 기한이 딱 열흘 남아있었다. 새 비자를 기존 여권에 받는다면, 여권 만료 기한까지인 2개월 정도밖에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그럼 그동안 새 여권을 발급받고 다시 비자를 받아야 한다. 시간과 노력도 두 배에 비자 발급 비용도 두 배로 드는 것이었다.


 순간적으로 당황해서 뭔가를 검색해 볼 생각도 못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독일에 입국할 때 휴대폰으로 왔던 메시지를 기억했다. 뭔가 문제가 생기면 전화하라던 대사관 문자. 겁도 없이 곧장 대사관에 전화를 했고, 직원이 받으셔서 세상에서 제일 친절한 목소리로 (실제로는 사무적이셨지만 내 느낌상 그렇게 느껴졌다.) 독일에 있는 대한민국 총영사관에서 긴급 여권*을 발급해 준다고 했다. 내가 사는 지역이 슈투트가르트이기 때문에, 프랑크푸르트 영사관에서 신청하고 받을 수 있다는 안내까지 받았다.



홈페이지에는 중앙역에서부터 영사관에 찾아가는 길도 잘 안내되어있다.



 나는 한시가 급하니까 당장 그 다음날 아침에 프랑크푸르트에 가는 기차를 예매하려고 했다. 그런데 내일의 기차표를 사려니 표값이 만만치 않게 비쌌다. 왕복하면 100유로가 넘었다. 여권 발급도 급행으로 받아야 하니 일반 여권 발급보다 값이 더 드는데 혹시 다른 방법은 없을까?


 당연히 있다. 독일에서는 장거리 여행을 돕는 다양한 종류의 버스들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평소에 뮌헨을 놀러 갈 때 종종 이용하던 플릭스부스 Flixbus**에서 검색해 보았다. 프랑크푸르트까지 버스를 이용할 생각이었는데, 신기하게도 슈투트가르트에서 프랑크푸르트까지의 구간에는 기차로 운행하는 아주 저렴한 플릭스부스 열차Flixtrain가 있었다. 당시 진행되고 있던 프로모션까지 더해져 왕복 14유로의 표를 결제했다.


 여권을 재발급하기로 하고, 대사관 방문 계획을 세우고 기차표를 예매하기 까지, 반나절이 꼬박 걸렸다. 드디어 한 고비를 넘겼다는 생각에 마음이 놓였다. 기차가 일찍 출발하는 기차였기 때문에 대충 가방까지 싸 놓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것도 나름 여행이라고 살짝 설레기도 했다.




이른 아침, 슈투트가르트 중앙역에서 눈에 확 들어오던 플릭스트레인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플릭스부스 열차는 정말로 낡았다. 오래된 열차를 사용하는 거라더니 속도도 느려서, 보통 ICE***를 타고 1시간 15분이면 가던 프랑크푸르트까지 3시간 정도가 걸렸다. 그래도 아침 6시 30분에 출발하는 열차를 탄 덕분인지, 프랑크푸르트의 영사관에 도착하자 시간은 겨우 10시 30분밖에 되지 않았다. 영사관 안에는 사람들이 꽤 많아서 약 1시간 반 정도를 기다려서 여권 재발급을 신청할 수 있었다.


 창구에서는 재외국민 신청도 받고 있었다. 내가 유학생인데도 신청이 가능하냐고 물었더니 당연히 된다고 했다. 나는 재외국민도 신청하기로 했다. 여권 재발급을 신청하고 나자, 직원이 나에게 집으로 여권을 보내줄 수도 있다고 했다. 우편 요금을 추가로 지불하면 여권을 집으로 보내준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한시가 급했기 때문에, 배송 날짜를 믿을 수 없는 독일의 우체국 Duetsch Post****에 내 여권을 맡길 수 없어서, 또 수고를 해야겠지만 찾으러 오겠다고 말했다.


 기차 여정 3시간, 기다림의 1시간 30분, 그리고 서류 제출과 설명 듣기 10여 분 만에 나는 새로운 여권 발급 신청을 완료했고 대사관에서 나올 수 있었다.



대사관에서 본 바깥 풍경. 햇살 쨍한 여름이었다.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으로 돌아와 맥도널드에서 애플파이와 감자튀김으로 간단한 식사를 하고 다시 플릭스트레인을 타고 슈투트가르트로 돌아왔다. 그리고 5일 뒤, 나는 내 여권이 대사관에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중간에 주말이 껴 있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겨우 3일 걸린 셈이었다!



옛날 여권에는 구멍을 뽕뽕 뚫어서 돌려주신다.



 여권 발급을 신청하러 갈 때와 마찬가지로 플릭스부스로 기차를 예매하고 프랑크푸르트에 다녀왔다. 새 여권은 빳빳하고 속지가 텅 비어 있었다. 옛 여권까지 잘 챙겨 슈투트가르트로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느림의 미학은 분명히 있다. 그러나, "빠름의 미학도 분명히 있다."







Tip


1. 여권 발급 신청에 필요한 것들

여권 발급 신청서 (영사관에 비치되어 있다. 자가 출력의 경우 배율 없음으로 출력해야 한다고)

여권용 컬러 사진 1 매 (영사관 민원실에서 무료로 찍어주기도 함)

기존 여권 (내 것처럼 천공해서 돌려줌)

여권 발급 수수료


2. 이 모든 일은, 2022년 인터넷으로도 가능하다고 한다.

‘영사민원24’ (http://consul.mofa.go.kr) 홈페이지 및 모바일앱 참조


3. 단, 나는 개인적으로 적어도 여권을 받으러 가는 것은 영사관으로 직접 가는 것을 추천한다. 이유는 영사관 홈페이지에도 나와 있는 것처럼, 우편 수령을 신청할 경우에 일어나는 모든 일 (대표적으로 분실)에 대해 전부 본인 책임이기 때문이다. 우편 수령 비용은 5유로 내외로 비싸지는 않다.






* 긴급 여권 : 일반적인 여권 발급과 다르게 돈을 좀 더 내고 빨리 발급받는 여권이다. 나도 시간이 더 많았다면 일반 여권 재발급으로 신청했을 것 같다.


** 플릭스부스 Flixbus : 독일은 철도망이 잘 되어 있어서 고속버스나 시외버스 라인이 상대적으로 약하다. 플릭스부스는 사기업인데, 독일의 도시와 도시 사이를 연결하는 형태로 운영되는 버스 서비스이다. 기차나 공공 교통기관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하기 때문에 학생들이 자주 이용한다. 물론, 버스의 상태 같은 것은 그렇게 좋진 않다. 플릭스열차는 flixtrain이라고 운영되고 있으며 더 이상 일반적인 운행이 불가능해진 오래된 열차를 플릭스부스 측에서 구매해서 개조하여 열차 노선으로 이용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장거리를 가야 할 때는 그냥 비행기를 타는 게 낫다고 본다. (가령, 뮌헨-베를린 구간) 기차와 비행기의 금액 차이는 크지 않은데, 걸리는 시간은 훨씬 적기 때문이다.

바로 어제 (2022년 8월 25일) 우연찮게 찍은 플릭스트레인. 아직도 잘 운행중이다. :)


*** ICE : 독일어로는 "이체에"라고 읽는다. 한국인들은 그냥 이체라고 하던데, IC(이체) 열차가 실제로도 있어서 독일인들은 확실히 구분해서 쓴다. 여하튼 마치 프랑스의 테제베TGV처럼 초고속 열차다.


**** 믿을 수 없는 독일 우체국 : Deutsch Post. 독일에 오면 어디에나 볼 수 있는데 노란 간판의 독일 우체국은.... 한국의 완벽한 우체국 서비스를 이용해 왔던 한국인들에게 당혹스럽기 그지없는 서비스 품질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얼마 전엔 독일인들 조차도 불만이 너무 많아서 크게 이슈가 되었을 정도다.(물건을 훼손하고 훔치고 아무데나 놓고 간다고 한다. 내가 지정한 배송일이 자기들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냥 배송을 안 하고 다시 돌려보내는 일도 허다하다.) 독일 우체국과 독일 기차 등, 독일에 대한 편견을 완전히 깰 수 있는(^^)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한 번 풀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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