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구했던 집이 비자를 받기 위해 어떻게든 애를 쓸 때 구해진 집인 만큼, 나는 그 집에 대한 애착이 컸다. 앞 뒤로 마당을 두고 도로를 따라 쭉 늘어선 전형적인 한가족 집 Einfamilienhaus이라, 독일인 부모가 없는 한 경험하기 힘든 양식의 주거 형태인 것도 좋았다. 위치도 나쁘지 않아서 버스 타고 12분이면 학교도 갈 수 있었다. 함께 살았던 노부부도 자식이 셋 있는 전직 교육자들이셔서, 아주 교양 있고 친절한 분들이셨기에 (처음엔) 졸업할 때까지 함께 살 생각이었다. 그러다 코로나 시대가 오면서 여러모로 곤란해지기 시작했다. 타인과 한 공간에 오랫동안 머물러야 하는 것이 문제를 일으킨 것이다.
내 방은 2층*에 있는데 화장실은 1층, 부엌은 0층에 있다 보니 아무래도 쉼 없이 오르내리며 지쳤다. 더구나 내가 공부방으로 쓰는 큰방의 뒤쪽에서 아저씨께서 담배를 태우셨다. 그 담배 냄새가 방과 방 사이를 가로막은 나무문 사이로 스며들어왔다. 또한 아무래도 어른들과 같이 사는 집이다 보니 친구들을 초대하기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었다.
결국 나는 이사를 결심했다. 그리고 당장 부인께 내가 이사를 갈 것이라고 말씀드렸다. 내 독일인 친구들은 전부 집을 구한 것도 아닌데 일단 나간다고 말부터 했느냐며 깜짝 놀랐다. 내가 집을 구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하자 다들 너무 긍정적인 것 아니냐고, 어쨌든 잘 찾아보라고 응원했다. 결과적으로는 다행이었다. 독일에서는 적어도 3달 전에 이사를 간다고 이야기를 해야 하고*, 나도 집을 찾긴 찾았으니까.
이런 비밀의 화원 같은 뒷마당이 있는 집을 떠나는 게 가장 아쉬웠다.
어쨌든 다시 한번, 처음 내가 집을 찾던 때와 다를 바 없는 '집 구하기 전쟁'이 시작되었다. 전보다 조금 늘어난 독일어 실력 하나만 믿고, 나는 다시 한번 노트북에 매달렸다.
처음 집을 찾던 때와 방법은 비슷했다. 일단 나를 간단하게 소개하는 소개문을 작성한다. 그 이후에는 immoscout24 라던가 google에 내가 원하는 지역을 넣고 집을 검색해 본다. 금액에 맞는 집을 찾으면 주인에게 소개문을 이메일로 보내고 집주인의 연락을 기다린다.
그런데 일이 전개되는 방식이 전과 좀 달랐다. 코로나 때문이었다. 집주인은 세입자를 까다롭게 고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좀 더 자세하게 이야기하고 싶은지 한 사람 한 사람씩 약속을 잡았다. 또한 슈파 Schufa**라고 하는 '신용등급 증명서'를 요구했다.
또한 혼자서 살려고 하다 보니까 집 자체를 구할 때에도 고려할 사항이 많았다. 집 안에 화장실과 부엌이 만들어져 있는지*** 같은 생활 밀접한 부분부터, 집의 위치, 가격 등등 모든 것들이 다 돈이며 시간이었던 것이다. 어쨌든 나는 내가 매달 감당할 수 있는 돈이 정해져 있었다. 그 돈으로 월세 Warmmitte****를 전부 감당해야 했으니 생각보다 남는 집이 몇 개 없었다. 조금씩 예산을 올려가다 마지노선이라고 생각한 값에서 몇 개의 집을 구경했다.
어쨌든 거의 3, 40개의 메일을 쓴 것 같다. 그중에 20개 정도에서 답변이 왔고, 거기에서 내가 살 수 있을 만한 곳에 방문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거의 대부분 나에게는 세입자가 못 되었다는 답변이 왔다. 이미 지금 살고 있는 집에는 이사를 간다고 말한 상황. 그 데드라인이 다가와 살짝 불안해지던 어느 날, 아주 우연찮게 발견한 집에서 계약을 할 수 있었다.
길 어디를 가든 포도밭이 넓게 펼쳐진 동네였다.
새벽 1시가 넘어 메일을 보내 놓고 잠들었다 일어났는데, 집주인이 당장 그 주 주말에 집을 보러 오라는 것이었다. 필요한 서류는 이미 들고 다니던 세트가 있는 상태였다. 나는 만반의 준비를 하고 집을 보러 갔다. 이미 나에게 집을 보러 오라고 하는 수화기 속의 목소리에서 '어쩌면 내가 이 집을 얻게 될지도 모르겠는데?'라는 막연한 예감을 하고 찾아갔으니 어쩌면 더 밝게 잘 웃었던 것도 같다. 절실했으니까…. 보러 간 집은 기차 S-Bahn로 학교에서 12분 떨어진 동네로, 사방에 포도밭을 두른 곳이었다.
그리고 정말로 다행스럽게도 그날, 내가 집을 보고 돌아와 다시 내 방에 도착하기도 전에 연락이 왔다. 내가 다음 세입자가 되어주었으면 좋겠다는 말이었다. 만세!
왼쪽부터 차례로 침실과 침실 책장, 그리고 욕실.
가드로베에서 거실을 본 모습, 책상겸 식탁, 부엌. 모두 이사 와서 정리가 된 후에 찍었던 모습이다.
룸 컨디션은 무척이나 좋았다. 일단 방이 두 개였다. 부엌이 딸린 거실과 침실. 당연히 욕조가 있는 욕실도 있었다. 집주인은 노부부로 매우 사이가 좋으셨다. 북부 독일에 살고 계셨으나 메일과 전화로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으니 걱정 말라고 하셨다. 그분들은 내가 학업 중인 연구자라는 것에 만족하셨고, 나는 집주인이 노부부인 것에 만족했다.
새 집이 구해지고 이사 갈 날짜가 정해진 날, 나는 독일에서의 첫 집의 주인 부부께 이사 나갈 날짜를 말씀드렸다. 부인께서는 너무나 아쉬워하셨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약간 눈물마저 보이시는 어른에 나도 눈물이 핑 돌았다. 그래도 서로 집을 잘 구해서 다행이라고, 잘 되었다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감사한 일은 하나 더 있었다. 부인께서 우리 집 주변 몇몇 동네 사람들을 초청하여 소위 송별회를 열어주신 것이었다. 다 같이 간식을 먹고 수다를 떨고, 노인 분들이 다정하게 손 잡아 주시면서 네 성공을 바란다고 하시기도 했다. 아무래도 말이 잘 통하지 않아 내도록 이방인으로 살던 내게 꽤나 감동적인 경험인지라 지금도 생각하면 찡해진다.
부인께서 준비해 주셨던 식전주와 브렛쩰. 우리 집을 중심으로 서너 집의 이웃을 초대하신 것은 부인이셨다.
이사를 가는 당일에는 독일인 친구가, 자신의 미니밴 뒷좌석을 전부 떼어낸 채 가지고 왔다. 내가 옮겨둔 짐들을 전부 그 작은 차에 싣고서, 나는 무사히 '아름다운 언덕길'을 떠나 '포도밭 가운데 집'으로 향했다.
"Alles okay bei dir?" 다 괜찮아?
"Ja, Natürlich." 응, 당연하지.
"Super." 좋아.
친구가 씩 웃고는 내게 손바닥을 내밀었다. 그의 손바닥에 내 손을 마주치고 나도 시원섭섭한 기분을 떨쳐냈다.
Tip
1. 좋은 집의 조건
유학생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교통시설과 마트의 여부다. 교통시설이 잘 되어있고 마트가 가까운 것이 최고다. 유학생이 자가용 승용차를 모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자전거 이용자라면 자전거 주차장의 위치도 미리 확인해 두는 것이 좋다.
2. 집을 보러 다닐 때 들고 다니면 좋은 서류
놀랍게도 간단한 자기소개서와 이력서가 필요하다. 유학생에게는 입학 허가증이나 지도교수님의 연구 허가서를 요구하기도 한다. 이 외에도 체류 허가증(비자)과 여권, Schufa(신용등급 증명서), 지난 3개월 간의 통장 입출금 내역서도 요구한다. 어디에서 뭘 썼는지 세세하게 알리기 싫다면, 은행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달마다의 총 입출금 내역 부분만 출력하면 된다.
3. 독일에서의 이사 풍습
송별회를 하는 일이 심심찮은 모양이다. 송별회에서는 카드와 선물을 주고받는다. 나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독일어로 마르치판Marzipan, 영어로는 마지팬이라고도 하는 과자라던가, 그 지역의 특산품을 자주 준다고 한다. 나도 여러 가지 과일 모양으로 만들어진 마지팬이 들어있던 상자와 지역 특산품 (와인과 초콜릿 등), 그리고 돈(!!)도 받았다. 어른들이 돈을 주시는 것은 그걸 바탕으로 성공하라는 의미다.
새로 도착한 집에서는 집주인이 손바닥보다 크고 얇은 디스크 모양의 와플 과자와 커다란 웨하스 같은 단과자를 주셨다. 빵과 소금을 주기도 하는데 모두 새로 온 사람이 집에서 돈도 많이 벌고 건강하고 행복하라는 의미라고. 생각해 보니까, 내가 첫 집에 들어가 계약을 할 때에도 집주인이셨던 부인께서 내게 초콜릿을 왕창 주셨던 기억이 난다.
4. 혼자 이사하기
독일에도 이사 업체가 있다는데 나는 옵션으로도 생각하지 않았다. 비싸기도 비싸지만, 우리나라처럼 포장하고 풀어주고 하는 것도 아니라고 한다. 여하튼 가장 좋은 것은 차가 있는 친구에게 부탁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스스로 렌터카를 빌려서 이사하는 방법이 있다. 나는 다행히도 친구들이 엄청 많이 도와줬다.
5. 보증금은, 모든 이사 과정이 완료된 후 전 집의 집주인이 내가 사용한 방을 확인 한 뒤에 나에게 돌려준다. 나도 전액 돌려받았다.
* 이사하기 전 집주인에게 말하는 기간, 3개월 : 독일에서는 집주인에게 다음 세입자를 구할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주어야 한다. 그래서 적어도 3개월 전에 이야기해야 한다고. 사실, 독일에서는 이런 일이 가능해 보이는 것이 내가 이사 갈 집을 구하고, 그 집을 내가 살기에 알맞도록 꾸미는 동안 원래 살던 집에 머물러야 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 슈파 Schufa : 나는 이미 독일에서 만 2년을 살았던 상태라서 이사를 갈 때에 이 신용등급서가 필요했다. 민간 업체에서 조사하는 신용등급서라고 하는데, 여하튼 일 년에 한 번은 무료로 슈파를 발급받을 수 있고, 이것은 역시나 독일 답게 우편배달까지 몇 주가 소요되기 때문에 급하게 증명서가 필요할 때에는 약 30유로를 지불하고 곧장 다운로드할 수도 있다.
*** 부엌과 화장실, 독일 집의 '옵션' : 놀랍게도 화장실과 부엌은 독일의 집에서 옵션이다. 이미 부엌이나 욕실을 갖추고 있는 집이 있다면 당연히 월세가 높다. 이사 오는 사람들은 자기가 쓰던 부엌(싱크, 부엌장)을 들고 와서 설치해서 쓴다. 화장실도 다 새로 만들어야 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홈페이지 등에서는 이런 모든 시설이 미리 갖추어졌는지를 미리 체크해서 집을 고를 수 있다. 혹은, 이전 세입자가 자기가 쓰던 부엌과 화장실을 일정 금액을 받고 두고 가기도 한다. 이런 경우는 당장에 내가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내가 떠날 때에 다음 세입자가 자기 부엌을 들고 오겠다고 하면 내 부엌을 처리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다.
**** 월세 Warmmitte : 독일의 월세는 집을 빌리는 비용인 칼트미테 Kaltmitte에 집 관리비인 네벤코스텐 Nebenkosten이 합쳐져서 최종 가격 밤미테 Warmmitte가 된다. 관리비를 매달 내고 있다고 하더라도, 일 년에 한 번 더 사용한 금액을 가산해서 지불해야 하기도 하고, 덜 사용한 것은 돌려받기도 한다. 약간 복잡하고 짜증 나지만, 이것도 금방 익숙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