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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이 Aug 12. 2022

사람 없인 사람으로 못 살아요

독일의 요가원과 친구를 사귀게 해 준 인 Yin요가

 5월 말 베니스에서 오랜 동료들(맙소사 내가 이분들을 동료라고 부르다니... 하지만 다른 표현 방법이 없다.)과 헤어진 뒤부터 6월 마지막 주에 오랫동안 머물 집을 찾기까지, 나는 줄곧 독일어와 영어를 쓰며 살았다. 그렇게 열심히 말을 하고 돌아다녔는데, 정작 곁에 오래 머물 사람들은 하나도 없었다. 친구들을 하나도 못 만들었느냐 하면 그것은 아니다.


 4월에 한 달 지냈던 숙소는 속아서 들어간 도미토리 에어비앤비였는데, 거기서 사귄 친구 둘이 7월 말에 다시 슈투트가르트에 돌아올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그러니까 결국 7월도 나는 혼자라는 뜻이었다. 6월에는 말을 한마디도 안 하는 날이 며칠이나 있곤 했다. 일부러 할로 hallo라도 하려고 마트에 간 적도 있었다. 나는 원래 쾌활한 성격이고 활동량이 많은 편이었다. 사람을 그렇게 못 보게 되자, 정정. 나와 교류를 하는 사람을 못 만나게 되자 점점 정신이 피폐해지는 것을 느꼈다.


 요가원을 찾은 것은 엄마의 조언 때문이었다. 내가 사람을 너무 못 만나는 것 같다고 하자 엄마는 겁내지 말고 나가서 뭐라도 하고 누구라도 만나라고 했다. 나에게 뭐라도 할 것이라고는 요가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요가원 가는 길의 하늘 풍경




 내가 처음 요가를 시작한 것은 딱 10년 전이었다. 그때 우리 동네는 엄청난 발전(!!)을 하고 있었는데, 그때 동네에 처음 요가원이 생겼다. 요가를 하고 싶다고 생각한 건 왜였는지 모르지만, 여하튼 아주 충동적으로 요가원에 찾아가 등록을 했다.


 원래도 좀 유연한 편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 정적인 분위기가 좋아서 나는 요가에 금방 빠졌다. 요가가 명상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더 좋았다. 중간에 교환학생도 다녀오고, 졸업작품 때문에 좀비 시절도 보내고, 석사 논문 쓴다고 반 송장이 되기도 했지만 나는 요가를 만난 이후 늘 요가에 대한 열망이 있었기 때문에 틈틈이 요가를 하러 다녔다.


 밖에 나가서 뭐라도 하자-라고 생각 한 뒤에 google map에 yoga를 입력해 봤다. 그러자 놀랍게도 집에서 걸어서 15분쯤 거리에 요가원이 있었다. 당장에 요가원에 찾아가 프로베코스 Probekurs*를 신청했다. 수업을 듣고 나서는 완전히 반했다. 나는 일주일에 세 번이나 수업을 듣는 코스를 결제했다. 유학생 신분에 제법 큰돈이었지만 아깝지 않았다. 독일에서 한국인은 희한하게 시간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사실 6월에도 나는 틈틈이 요가를 하고 있었다. 정정. 요가를 이용한 명상을 하고 있었다. 불안감 때문이었다. 불안해지면 걱정이 따라 나오고, 그러면 불면증이 생긴다. 자리에 누운 채로 몇 시간을 계속 걱정만 하면서 뒤척거리게 되는 것이다. 그걸 없애기 위해서 명상을 하는데, 대체로 유튜브에서 요가 선생님들이 제공하는 잠들기 전 명상 가이드 같은 것을 틀어 놓고 명상 겸 요가를 하고 자려고 노력하곤 했다. 그런 가이드를 하나 따라 하다 보면 자야겠다는 쪽으로 마음이 바뀌기 때문에 분명 도움이 되긴 했다. 어떤 날은 전혀 소용이 없기도 했지만, 한 80프로 정도는 금방 잘 수 있게 된다.


 독일의 요가원은 한국의 요가원과 조금 다르다. 우선 선생님이 아주 몸집 좋은 아주머니이다. 딱 달라붙는 옷으로 몸매를 다 드러내던 젊고 아리따운(!) 요가 선생님들만 보던 나는 조금 놀랐다. 더구나 선생님은 아사나**를 정확하게 시연하지 못했다. 당신의 몸이 그 정도로 유연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정확한 동작을 하도록 도와주셨다. 나는 종종 앞자리에 앉아서 선생님을 대신해서 유연한 몸으로 아사나를 시연(!)했다.


 수업의 속도도 조금 달랐다. 빈야사 수업도 아루사나 수업도 아사나와 아사나를 연결하기까지 꽤 오랫동안 한 자세로 버티곤 했다. 나는 그렇게 천천히 진행되는 수업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다. 그 요가원 유일한 아시안인 나에게 쏟아지는 관심이 조금 부담스럽긴 했지만, 얼굴에 털이 부숭부숭하고 덩치 큰 할아버지가 옆 자리에 매트를 펴고 앉아 내 유연함에 놀랄 때마다 조금 귀엽다는 생각도 들었다.


 가장 감동받은 수업은 인 요가 수업이었다. 나는 그동안 인 요가라는 것은 들은 적도, 배운 적도 없었다. 인 요가는 빈야사나 아쉬탕가, 아루사나 요가와 다르게 몸을 릴랙스 시키는 요가다. 처음에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선생님이 나한테, 인 요가는 굉장히 passive 하다고 했는데 진짜였다. 전혀 힘들지 않은 동작 8개 정도를 1시간 15분 동안 쪼개서 했다. 가령, 높이가 있는 기구를 등에 받치고 누워서 10분, 커다랗고 단단한 배게 같은 걸 껴안고 엎드려서 10분, 뭐 이런 식이었다.


 그런데 정말이지 너무나 좋았다. 인 요가 수업을 듣기 전 날, 분명히 어깨가 너무너무 아파서 아껴 붙이고 있는 동전 파스를 붙였었다. 그러고도 안 풀려서 오늘도 다시 붙이고 자야지~ 하고 있었는데 그렇게 뭉쳤던 어깨가 싹 풀려버린 것이다.


 물론 다른 것도 감동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나오는 길에 같이 수업을 듣는 아저씨가, 자기가 준비한 선물이라면서 꽃을 주셨다. 모두에게!



아저씨네 집에서 직접 따 오셨다고 했다. 독일에서 처음으로 선물 받은 꽃이었다.



 수국의 꽃 색깔은 토양의 산도에 따른다고 한다. 염기성 토양에서는 푸른색, 산성 토양에서는 붉은색의 꽃이 핀다. 독일에서는 일부러 정원의 흙 산도를 조절하여 꽃 색을 만들기도 한단다. 아마 아저씨도 그렇게 예쁘게 자기 집을 꾸몄을 것이다. 수국은 집에 돌아와 요가 가기 전에 먹었던 유리 요구르트 통에 꽂았다.


 그날 나는 아주 행복한 마음으로 잠들 수 있었다. 오랜만에 명상 유튜브도 듣지 않았다. 붓다의 말에서 나온 요가 잠언이 떠오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마음이 현재에 있어야 행복하다.
마음이 과거에 있으면 후회하고 미래에 있으면 불안해진다.
마음은 늘 현재에 두어야 한다.***





Tip


1. 유학 와서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을 때 한인 친구를 사귀려고 하는 것은 최후의 보루라고 생각하자. 그렇게 하면 결국 한국인들 사이에서 내가 사는 곳이 독일인지 한국인지 모르게 살게 될 것이다. 대신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한국인이 아닌 친구를 사귀도록 노력해 보는 게 좋다.

tmi를 해 보자면 내 첫 친구는 스리랑카인으로 스위스에서 석사를 마치고 독일에 일을 찾으러 온 친구였다. 두 번째 친구는 벨기에 인으로 엄마는 불어를 쓰는 벨기에인, 아빠는 독일인이었다. 그래서 3개 국어를 우습게 하는 애였다. 이 친구가 와인메이커(소믈리에가 아니다!) 아우스빌둥을 하기 위해 슈투트가르트에 와 있었기 때문에 우리 셋은 엄청 몰려다니면서 와인을 마시며 친해졌고 유학을 막 시작하던 때에 큰 의지가 되었다. 다 같이 표류하던 중이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셋 다 같은 동네에서 첫 커리어를 시작할 수 있었다는 것도 행운이었다.


2. 나처럼 요가원을 가도 좋지만 다른 상상 가능한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다. 짐도 많고 수영장도 있고 아이스링크도 있다. 나는 이곳이 발레로 유명한 동네기 때문에 발레도 2년 정도 배웠다. 대부분의 경우 프로베코스로 먼저 체험 한 뒤에 정식 등록을 할 수 있다.


3. 이도 저도 관심이 없다면 학교에 혹시 친구를 사귀는 프로그램이 있는지 찾아보도록 하자. 내가 다니는 대학에는 멘토링 시스템이라고 해서 외국인 학생의 적응을 도와주는 멘토를 메칭해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멘토를 만나고 international student를 위한 각종 프로그램에 참가하며 좋은 친구들을 많이 찾았다.





* 프로베코스 Probekurs : 프로베코스라고 적었지만 사실 독일어로는 프로베쿠어스라고 읽는다. 체험 코스라고 직역할 수 있다.


** 아사나 : 요가에서 쓰는 단어로 산스크리트어다. 동작, 혹은 자세라는 뜻.


*** 붓다의 말은 다음과 같다. : 과거를 되새기지 말고 미래를 바라지 마라. 과거는 제거되었고 미래는 닥치지 않았다. 현재에 일어나는 법을 바로 여기서 통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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