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국가의 불교
독일은 종교의 자유가 있는 나라*지만, 독일 사람들은 자기들이 기독교 국가의 국민이라고 여긴다. 16세기 초, 마르틴 루터가 비텐베르크 대학 교회의 정문에 로마 가톨릭 교회가 팔고 있던 면죄부를 비판하는 95가지의 논제를 게시하면서 종교개혁이 일어나 개신교가 부흥된 역사가 있고, 그보다 훨씬 전부터 전통적인(?) 로마 가톨릭이 뿌리내린 나라이기 때문이다. (가령, 쾰른 대성당을 생각해 보시라.)
그러나 독일은 종교의 자유를 허락하는 나라이니, 당연히 독일에도 절(!!)이 있다. 붓다 상이 있는, 바로 그 절, 템플 말이다. 슈투트가르트에는 심지어 절이 슈타트 미테 Stadtmitte라고 불리는 시내 중심가 한복판에 있다.
처음에는 절로 올라가는 입구를 찾지 못해서 조금 헤맸다. 이 글의 제목의 배경 사진에서처럼, 건물의 입구를 찾아 들어가 계단을 올라가야 했다. 게다가 내가 간 절은 한국에서처럼 아무 때나 불쑥 들어갈 수 없었다. 교회나 성당처럼 어떤 종교적 건물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면 아무 때나 들어가 초도 켜고 기도도 하고 나올 수 있겠지만, (코로나 때문에 변한 규칙이라고 하는데) 절이 문을 여는 시간은 정해져 있고, 그 시간에만 방문이 가능하다.
그렇게 절이 문을 여는 시간에는 어떤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불교를 전파하는 데에 중점을 두는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불교 교리를 배우는 시간, 명상하는 시간, 베를린의 불교 교구(?)와 라이브로 동시에 진행되는 불교 입문 강의를 듣는 시간이 그것이다. 모든 강의는 무료지만 아주 드물게 먼 데에서 스님이 오시면 기부금 명목의 참가비를 받는다고 했다. (일 년에 두어 번 정도란다.) 나는 명상 시간에 일단 참가해 보았다.
처음 만난 스님은 독일인 남자분이었다. 파란 눈의 백인 스님이라니. 굉장히 신선했다. 스님도 나를 신선해하셨다. 말씀이 너무 빨라서 전부를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젊은 아시안 여성이 찾아온 것이 처음이라고 하시면서 반갑다고 자주 보자고 하셨다.
명상은 스님의 주도 하에 간단한 찬팅으로 시작해서 약 1시간 정도 진행되었다. 스님은 시작 전에 불단을 향해 절을 하셨지만, 참가한 사람들은 딱히 절을 하거나 뭔가 향을 피우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나는 이미 명상실이라고 부르는 법당(?)으로 들어서며 절을 했기 때문에 스님이 절하시는 동안 명상실 가득한 책상 앞 신기하게 생긴 앉은뱅이 의자 쿠션(?)에 앉아 있었다.
명상을 시작하면서 짧게 드린 예불은 티베트 어거나 산스크리트어 같았다. 불경이 늘 그렇듯 시송이었을 테니 음률이 있었고, 한국의 예불 시송과 비슷하게 같은 어구나 어미가 반복되어 노래처럼 불렀다. 스님이 찬팅 전에 어느 말로 하고 싶느냐 물어보셨는데, 사람들이 모두 독일어가 아니라 티베트(... 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그럴 것 같다)어로 하고 싶다고 해서 티베트어로 했다. 나도 최선을 다해서 따라 해 봤다. 낯설면서도 재밌었다.
그리고는 스님이 독일어로 명상에 들게 도와주셨다. 스님의 잔잔한 목소리를 들으며 명상을 하고 천천히 깨어난 뒤에는 짧게 스님 말씀도 들었다. 한여름인지라 날이 매우 뜨거웠지만, 저녁에 시작된 명상이 다 끝났을 때에는 더위가 한풀 꺾여 있었다.
명상 시간이 끝나고 나서 사람들이 모두 나가고 난 뒤에, 나는 다시 혼자 조용히 절을 하고서 법당 밖으로 나갔다. 법당 밖의 응접실 닮은 공간에 모여 계시던 스님과 사람들이 나를 불러 앉히셨고, 따뜻하고 달콤한 차를 나눠 주셔서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눴다. 나와 꽤 오래 이야기를 나눈 아저씨는 폴란드 출신이었는데, 올 4월에 미얀마에서 수계하고 불자가 되었다고 자랑하셨다. 뭐랄까.... 나는 모태 종교가 불교인 셈인지라 유럽 지역에서 불교가 전파되는 과정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나에게도 물어보셔서 가족들이 모두 불교를 믿고 있고 나는 그냥 불교를 믿으면서 자랐다고 했더니 역시나 신기해하셨다.
스님은 실제로 티베트나 미얀마에서 승계를 받으신 것 같았다. 스님들이 전부 독일인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이름이 다 그쪽 언어로 된 새 이름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출가하면 이름이 바뀌니 아마 이 스님들도 출가하시면서 이름을 새로 받은 것이리라.
프로그램을 전부 알아들을 정도로 독일어를 잘하면 좋으련만. 나는 겨우 명상 시간에만 몇 번 참석하다가, 썸머타임이 끝나고 날이 너무 빨리 어두워지면서 명상에도 참석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다시 썸머타임이 시작되고 절이 가고 싶으면 명상 시간에 찾아갈 생각이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에 비해, 절을 다니는 사람들은 크게 종교 활동을 하지 않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독일에서도 한인 교회는 제법 규모도 크고 행사도 자주 하지만, 한인 불교회는 그보다 규모도 훨씬 작고 애초에 독일에서 절을 찾아가려는 생각조차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만일 독일에서 외롭고 누군가 만나고 싶고 이왕이면 절도 한 번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구글에 한 번 찾아보시라. 웬만한 도시에는 로컬들이 다니는 절이 있고, 명상센터의 경우엔 훨씬 많이 찾을 수 있다.
3. 사실 이 전에 한 번 스리랑카인 친구를 따라 스리랑카 행사에 가서 스리랑카 스님을 뵌 적 있었다. 그런데 그곳은 절이라기보다는 그날의 행사를 위해 꾸며진 공간이었던 모양이다. 시내가 아니라 시내를 좀 벗어난 곳이었는데, 그곳은 구글 맵에 검색해도 나오지 않았다. (어쩌면 언어의 문제로 내가 검색을 못 하는 것일 수도 있다.)
* 독일의 종교: 개신교인 루터교와 로마 가톨릭이 기본이긴 하지만, 현재 독일에는 터키를 비롯한 이슬람 국가의 이민자들이 많아 무슬림의 숫자도 어마어마하다. 참고로, 독일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이민자가 많은 나라다.
** 독일에도 큰 도시를 중심으로 한인 불교회나 한국식 절이 있다. 내가 아는 선배는 베를린에 거주 당시 베를린 정토회의 회원으로 활동도 하고 행사에 참여하기도 했다. 베를린, 프랑크푸르트, 뮌헨 등 독일의 큰 도시에는 정토회가 아니라도 한국인 불자들을 만날 수 있는 불교회가 있다고 한다. 이런 대도시의 한인 불교회는 제법 커서 조직도 꽤 잘 되어있는데, 가령 베를린 정토회에서는 법륜 스님을 모시고 행사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