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등명 법등명
보통 불교 공부를 시작하면 가장 먼저 석가모니의 탄생을 이야기하게 된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말이 후에 부처님이 되는 왕자 고타마 싯다르타의 탄생 설화에서 이야기하는 그의 첫 말씀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잠깐 뒤로 미루고, 여기에서는 오히려 붓다의 죽음, 즉 입멸에서 시작해 보고자 한다.
아난다여, 이제 나는 늙어서 노후하고 긴 세월을 보냈고 노쇠하여 내 나이가 여든이 되었다.
마치 낡은 수레가 가죽 끈에 묶여서 겨우 움직이는 것처럼 나의 몸도 가죽 끈에 묶여서 겨우 살아간다고 여겨진다.
그만하여라, 아난다여. 슬퍼하지 말라. 탄식하지 말라, 아난다여.
사랑스럽고 마음에 드는 모든 것과는 헤어지기 마련이고 없어지기 마련이고 달라지기 마련이라고, 그처럼 말하지 않았던가.
아난다여.
태어났고 존재했고 형성된 것은 모두 부서지기 마련인 법이거늘,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 것을 두고 '절대로 부서지지 마라'라고 한다면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난다여, 그런데 아마 그대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이제 스승은 계시지 않는다. 스승의 가르침은 이제 끝나버렸다.'
아난다여, 내가 가고 난 후에는 내가 그대들에게 가르치고 천명한 법과 율이 그대들의 스승이 될 것이다.
아난다여, 그대들은 자신을 섬으로 삼고 자신을 의지하여 머물고 남을 의지하여 머물지 말라.
진리를 섬으로 삼고 진리에 의지하여 머물고 다른 것에 의지하여 머물지 말라.
내가 설명한 것은 무엇인가.
이것은 괴로움이다.
이것은 괴로움의 원인이다.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이다.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방법이다.
참으로 이제 그대들에게 당부하노니 형성된 것들은 소멸하기 마련인 법이다.
게으르지 말고 해야 할 바를 모두 성취하여라.
이것이 여래의 마지막 유훈이다.
위의 유훈은 붓다의 곁에서 붓다의 가르침을 가장 열성적으로 따랐다는 제자 아난다가 붓다의 입멸 직전에 가장 마지막으로 들은 가르침이다. 붓다는 마지막 유훈에서도 끝까지 당신이 중생들에게 알려주고자 했던 요체를 반복했다. 이 가르침은 '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 법문'이라고도 불리는데, '스스로 등불 삼고 법을 등불 삼아라'라는 가장 중요한 부분을 요약한다.
그런데 나를 등불 삼기란 참 쉽지가 않다. 내가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괴로움(고)과 그 괴로움은 욕망과 번뇌에 의해 발생하며(집), 번뇌를 없애면 해탈하게 되고(멸), 해탈은 8정도의 실천으로 이룰 수 있다(도)는, 나보다 명확하고 객관적인(?) '법'을 등불 삼는 것이 더 쉬울 지경이다. 나를 등불 삼기에 방해 요소가 너무너무 많기 때문이다.
불교에서 이런 방해요소는 악마로 비유된다. 악마는 무시무시한 모습으로 나타나 내 곧은 마음과 불성을 위협하고 수행을 방해한다. 하지만 실제로 이 악마들은 어떤 실체를 가진 것이 아니다. 붓다의 마음속 갈등과 유혹을 형상화한 것이다. 애정에 대한 갈구(갈애), 무언가에 대한 혐오, 집착과 탐욕, 권태, 공포, 의혹, 위선, 고집 등 이 악마의 모습은 무궁무진하다. 그리고 사실, 그 악마의 본질은 붓다, 그리고 나의 한 부분이기도 하다.
붓다도 이런 악마에게 시달리는데 내가 악마에게 시달리지 않을 방도는 없다. 심지어 붓다의 말년에 이 악마들이 붓다에게 끝없이 열반을 재촉하는 형태로 나타나는 걸 보면, 정말이지 이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말 그대로 죽음뿐인가, 싶은 생각마저 든다.
이 생각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 악마로 표현되는 '모든 번뇌가 완전하게 소멸된 상태'가 바로 '열반'이기 때문이다. 붓다(Buddha)라는 이름도 '깨달은 자'라는 의미로, '모든 번뇌의 소멸과 그 번뇌 소멸에 대한 명확한 자각이 있는 자'를 의미한다. 또한 이 자각을 다른 말로 '해탈'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오히려 다른 질문이 따라오는 것 같다.
첫째는, 번뇌에서 벗어날 가장 쉬운 방법을 두고 왜 살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다.
이어서, 더구나 그 삶을 왜 붓다가 말하는 법(불법)을 지켜가며 엄청 어렵고 열심히 살아야 하냐는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이유와 상관없이, 도대체 어떻게 이 모든 고통과 번뇌 속에서 살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첫 번째와 두 번째에 대한 질문은 좀 더 복잡하게 설명해야 한다. 하지만 마지막 '어떻게'에 대한 답은 유훈에서 살짝 힌트를 얻을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사랑하는 모든 것, 존재하는 모든 것은 변하기 마련이고, 사라지기 마련이다는 것을 알아차리면 된다.
다음 글은 이 '어떻게'에 대한 것으로 이어가 보려고 한다.
'열반'은 빨리어로 닙바나(nibbana)의 음사어이다. 어원적으로는 '불이 꺼진 상태'를 의미한다. 한자어로는 적멸이라고도 하는데, 여기에서 꺼진 불은 단순한 생명이 아니라 번뇌라고 할 수 있다. 붓다의 입멸이 특별하게 반열반(parinibbana)이라고 불러지는 이유는, 붓다가 이미 생전에 열반하였고, 마침내 육체의 번뇌로부터도 벗어나며 완전한 열반에 이르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