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광시
“뭘 그렇게 찍는겨?”
광시시장을 어슬렁거리다가 아무 생각 없이 장옥 한 채를 휴대폰에 담고 있을 때였다. 누가 봐도 피사체가 되기는 어려운 폐옥을 찍고 있었으니 요상한 놈이라고 생각했을까. 시장터를 평생 지켜왔던 전직 오토바이 가게 할머니가 뭐하는 놈이냐는 듯 질문을 던졌다. 질문의 요지는 이런 것이다. ‘사진을 찍으려면 황새공원으로 가던지, 한우테마공원으로 갈 일이지, 볼 거 없는 이런 곳에서 뭔 셔터질인겨 도대체?’
관광객들로 덮여버리는 벽화마을의 주민들은 외지인이 왜 사진을 찍는지 안다. 마을이 누군가의 계획에 의해 남의 것이 되어버렸으니까. 아니, 어쩌면 여전히 그 이유를 모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묻고 싶을지도. 도대체 왜 내밀한 것들을 찍어대는지 말이다. 하지만 결국 묻지 못할 것이다. 이미 그들이 사는 곳은 찍히는 것이 허락되었기 때문이다. 관광활성화의 큰 파도에 휩쓸려버린 벽화마을의 주민들은 그렇게 질문할 기회를 잃고 말았다.
할머니는 뭘 찍느냐고 물었다. 당신의 집을 찍는 게 아닌데도 불편한 반응이었다. 질문을 받았으니 답변을 해야 한다. 근데 아무 생각 없이 사진을 찍고 있었으니 답변이 요원했다. 그냥 요새 여행 트렌드가 낙후된 지역을 소소하게 느껴보는 것이라고 설명을 할 필요는 없었다. 그건 할머니가 원하는 답변이 아니었으니까. 답의 요는 너는 어디에서 온 놈이고, 뭐하는 놈이며, 왜 우리가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들을 찍어대느냐에 대한 것들이었다. 나는 홍성에서 왔고, 낙후된 농어촌을 좋게 만드는 일을 하며, 그렇기 때문에 폐옥이 눈에 들어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더불어 향후 두어 시간 동안 광시의 낙후된 것들만 찍어댈 것이라고 대답했다. 답을 하고 보니 납득되지 않는 외지인의 태도에 질문을 할 권리가 있음을 충분히 알고 있고, 실제로 질문을 함으로써 당당하게 주민임을 피력하는 할머니가 광시와 겹쳐 보였다. 그렇게 광시는 광시에 사는 주민이 지키는 것이다.
외지인에 대한 불편함을 해소한 할머니는 자신의 집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오토바이 가게를 운영했고, 지금은 꽃에 물을 주러 나왔으며, 오수가 집 앞으로 흘러 속 터져 죽겠고, 집을 증축했는 데 2,000만 원이나 들었다. 바가지를 쓴 거 같다 등등. 중구난방의 이야기는 열린 귀와 추임새면 충분했다. 나의 태도가 괜찮았는지 할머니는 당신의 집을 둘러싸고 있는 폐옥들을 하나하나 설명해 주었다. 뒷집은 이미 폐옥이 된 지 오랜데 도시에 사는 주인의 자식들은 깜깜무소식이며, 뒷집의 뒷집은 최근에 팔려 대전사람이 들어와 살고 있고, 그 옆집은 대를 이어 그릇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 데 그릇가게 사장님이 다가와 이야기의 판이 커졌다.
그릇가게 사장님은 방문간호사로 어르신들의 재활 및 치매 간호를 전문적으로 하는 분이었다. 그릇 전문가여야 하는데 그릇에는 크게 관심이 없어 보였다. 사장님은 원대한 꿈을 꾸는 분으로, 광시는 예산읍과의 거리가 멀기 때문에 광시에 노인복지시설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그리고 이것을 본인이 주도적으로 추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좋은 의견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사장님 같은 분이 계셔 충분히 추진할 수 있는 사업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사장님은 노인복지시설을 어느 부지에다 해야 하는지도 생각하고 있었다. 그 부지는 묘하게도 그릇가게였다. 사장님은 본인의 땅에다가 노인복지시설을 하고 싶은 것이었다.
“땅을 팔아야 하는 데 공시지가 기준으로 파실 수 있으세요?”
사장님은 본인 땅에다가 건물을 올리는 건 안 되는 거냐고 물었다. 장기 임대 등의 방법은 있지만 원칙적으로 땅의 소유권은 공공으로 이전하는 것이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또한 공공사업을 주도적으로 추진하려는 사장님 본인의 땅을 공공에 판다는 것은 아무래도 특혜 시비가 있을 수 있고, 광시 주민들의 의심에서 벗어날 수 없을 거라고 당부드렸다. 그릇가게 사장님은 잠시 생각에 잠기는 것 같더니 그릇가게로 발길을 내딛기 시작했다. 이제 그릇 전문가로 재탄생할 결심을 한 걸까.
사실 돌아가기 전에 꼭 들르고 싶은 카페가 있었다. 광시의 3군데 카페 중 가장 광시스러운 카페 일지 모른다는 생각이었을까. 오픈 시각이 언제인지 몰라 광시 중심가를 어슬렁거리면서 시간을 보냈다. 요새 제비들이 참 많다는 것을 느낀다. 상인들도 제비집을 철거하는 일은 거의 없으니 상가와 제비는 공생한다. 날씨가 흐린 영향인지 제비들이 낮게 날아 한우거리의 풍경은 활력이 넘쳤다.
문을 열고 내부 환기를 마친 다방 사장님은 다방의 핵심 자산인 오토바이를 열심히 닦고 있었다. 문 닫힌 카페를 포기하고 다방에서 커피나 한 잔 할까 하는 의지가 불타올랐다. 모기장에 가려져 희미하게 보이는 푹신해 보이는 소파에 의지의 방아쇠를 만지작거렸다. 하지만 결국 그 길을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다방 사장님하고 단 둘이 같은 공간에서 숨을 쉬고 있을 생각을 하니 어색함이 공기를 짓누를 것 같았다. 유성용 작가의 ‘다방기행문’에서 그려지는 다방의 내밀한 문화에 대한 경험, 그리고 다방 레지를 대하는 프로페셔널한 작가의 태도... 엄두가 나지 않는 도전이었다.
어느 소읍이나 내가 이 지역의 터주대감요 하는 슈퍼가 있다. 이 터줏대감들은 보통 버스 정류소 역할을 하는 데 슈퍼의 안마당은 곧 사랑방이다. 버스 시간을 놓칠세라 30분이고 1시간이고 먼저 나와 버스를 기다리는 어르신들이 안마당을 차지한다. 그런데 광시의 정류장 슈퍼는 어르신들에게 안마당이 아닌 가게 안을 내어준 모양이다. 어르신들은 좀 더 쾌적한 공간에서 버스를 기다린다. 기다림의 시간 동안 어르신들은 서로의 안부를 묻고 주말드라마의 주인공을 연민한다. 때로는 버르장머리 없는 젊은 귀촌인을 욕하기도 한다. 젊은 귀촌인은 그렇게 지역의 유명인사가 되어 가는 것이다.
대형 관광버스가 단체 손님들을 토해내는 광경에 점심시간이 임박했음을 알게 됐다. 여전히 광시스러울지도 모른다고 믿고 싶은, 하지만 이제는 과대 포장된 카페라고 비틀어버리고 싶은 카페의 주인은 여전히 문을 열지 않았다. 결국 맞은편 카페에서 뜨거운 커피 한 잔을 주문했다. 사장님께 맞은편 사장님은 어디에 가셨냐고 묻고 싶었지만 시장 경쟁체제의 동종업계 종사자에게 할 수 있는 질문은 아닌 듯하여 포기했다.
광시스러울지도 모르는 카페와는 그렇게 인연이 닿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