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대술
‘면이나 군 지역들은 지방소멸이 거의 완성 단계예요. 지역을 떠날 수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다 떠나버려서 남아있는 고령 인구만 자연적인 인구 변화, 즉 ’ 사망‘만 존재하는 거죠’
2021년 한국고용정보원 이상호 연구위원이 KBS와의 인터뷰 내용에서 언급한 말이다. 당시 이상호 위원은 전국 지자체의 약 35%(79개)가 소멸위험지역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2022년 3월, 이 수치는 약 50%(113개)로 치솟았다. 수도권과 광역시 및 광역 거점도시 내 지자체를 제외한다면 이 수치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많은 지자체들은 귀농귀촌에 열을 올리고 있다. 매년 50만 명에 육박하는 인구가 수도권을 떠나 지역에 자리 잡고 있으며, 이 중 2만 명 정도가 농사 초년생이 된다. 귀농귀촌은 하나의 큰 흐름처럼 보인다. 100세 시대에 새로운 인생을 설계할만한 곳이 농어촌인 것인가?
귀농귀촌이 꾸준하다고 하지만 지역엔 여전히 사람이 없다. 대술은 한 때 다방만 여덟 곳이 있었을 정도로 붐비던 곳이었다. 아산으로 진출하는 관문이었고, 뜰이 넓어 농사짓기 좋았다. 花(꽃 화) 자가 마을명(화천리, 화산리) 일 정도로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지척에 둔 살기 좋은 소읍이었다. 하지만 교통 여건이 좋아지고 자차 이동이 일상화되면서 예산읍으로의 접근성이 좋아졌고, 대술의 서비스 기능은 쇠퇴하기 시작했다. 소읍에서 주민 간 교류를 촉진하는 대표적인 서비스업은 미용업이다. 쇠퇴도가 높지 않은 소읍은 미용업이 유지되는 데 비해 대술에서는 미용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부흥이용원 사장님이 그나마 마지막 끈을 부여잡고 있지만, 언제 영업을 종료할지 알 수 없다. 대술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서비스 대부분은 예산읍에 있다. 대읍은 이미 소읍을 흡수한 것이다. 그렇다면 대술은 정말 소멸되는 것인가?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지방소멸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있다. 어느 곳이나 지역을 지켜나가는 주민들이 있다는 것이다. 대술슈퍼와 현대마트 사장님은 24시간 운영하는 대기업 편의점에 맞서 우직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버스를 기다리는 지역 주민들에게 평상을 내어놓고, 땀을 훔치는 주민들을 염려하여 물이라도 한 잔 내어 놓는 사장이자 지역 주민인 야누스의 주인장들은 그렇게 주민들을 보듬고 또 보듬는다. 넓은 평상에 멀찌감치 떨어져 앉은, 남녀 칠 세 부동석의 미덕을 평상 위에서 실천하고 있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사이에서 활력을 불어넣는 일도 그들의 몫이다. 이런 건 1+1이 할 수 있는 그런 일이 아니다.
최근 대술에는 소읍의 얼굴 역할을 하는 카페가 하나 생겼다. 원래 분식과 커피가 오묘한 조화를 이루었던 빵카페라는 곳이었는데 올해 그 오묘함을 버려버리고 진정한 카페로 거듭난 곳이었다. 대술이 고향인 젊은 사장은 외지 생활을 청산하고 다시 대술로 돌아왔다. 그리고 카페를 개업했다. 3,000원짜리 커피도 비싸다고 아우성치는 척박한 소읍의 시장에서 말이다. 대술에 도착했을 때부터 마지막은 여기라고 생각했다. 웬만한 카페들은 10시 내지 11시에 오픈을 하는 데 이 집은 9시에 이미 오픈 상태였다. 그리고 젊은 사장은 쉴 새 없이 움직이며 장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참 부지런하다고 생각했고, 마땅히 어르신들의 이른 생활 패턴에 맞춘 영업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아침 7시부터 준비해요. 8시에는 오픈을 하거든요.”
어르신들이 주 소비자층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했다. 그러나 소비자층이 노년층이냐 젊은 층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지역 주민들의 삶의 패턴을 젊은 사장이 따르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진안 백운에서 3달 정도 머물렀던 적이 있었다. 직장이 읍내에 있었기 때문에 8시 반쯤 집을 항상 나섰다. 그 시간대는 농사일이 한 창일 때였다. 나는 직장인이었고, 주민들은 대부분 농업인이었다. 나는 주민들이 한 창 일할 때 출근하고 주민들이 잘 준비를 할 때 퇴근했다. 당연히 라이프 사이클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잘못한 게 없었다. 직장인이니 직장인에 맞게 생활했을 뿐이다. 하지만 주민들은 내가 꼴 보기 싫었을 거다. 누군지도 모르는 이상한 젊은 놈이 한 창 바쁜 시간에 비몽사몽인 채로 배기음을 쏟아 내고, 어둠이 내린 마을에 헤드라이트 질을 해댔으니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 부지런히 인사도 다니고 주민들의 삶의 패턴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했다고 생각한다. 결국 나는 3개월을 채우지 못하고 진안을 떠났다.
이 카페는 영업시간이 8시부터 8시까지다. 영업시간이 좀 더 농촌 주민들의 삶의 패턴에 맞춰져 있다. 카페 사장이 사장이자 주민이기 때문에 가능한 태도다. 지역 주민들에 대한 주인장의 배려심이 느껴진다. 아니면, 주인장이 아침잠이 없을지도.
카페 창밖으로 신양농협 대술 지점이 보였다. 농협의 안마당은 카페 방문객이 주로 이용하는 주차장이다. 카페는 실제로 차량 주차를 이곳으로 안내하고 있다. 지역이 이 카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주인장은 카페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농촌이라도 도로변에 차를 오랫동안 댈 수는 없으며 대술은 생각보다 차량 통행량이 많은 곳이다. 농협에서 시선을 돌리니 농협창고가 보였다. 창고 안은 뭐로 채워져 있을까 생각하다가 문득 여기저기 생겨나고 있는 창고형 카페가 머릿속에 스쳤다. 그리고 농협창고가 창고형 카페로 오버랩되었다.
'대술에 창고형 카페가 생긴다면 이 카페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과거 다방과 미용실은 소읍의 사랑방이었다. 주민들은 여기서 이야기를 나눴고, 정보를 공유했다. 주민 간 교류는 공동체를 떠받혔고, 소읍의 경제는 공동체를 중심으로 굴러갔다. 그러나 소읍이 쇠퇴하면서 생활 밀착 서비스업이 사라졌고 주민들의 커뮤니티가 깨지기 시작했다. 이는 공동체가 해체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대술엔 사랑방이 필요하다. 지금 대술에서 사랑방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공간은 이 카페다. 청년이 카페를 오픈함으로써 주민들은 담소를 나눌 수 있는 휴게실을 얻었고, 손님을 대접할 수 있는 응접실을 얻었다. 지방소멸의 파고를 헤쳐나갈 수 있는 작은 무기를 쥐게 된 것이다. 카페 사장이 대술에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하는 일은 이제 지역 주민들의 몫이 되었다. 대술에서 나고 자란 그 청년이 대술에서 꿈을 펼칠 수 있도록, 마을이 아이를 키운다는 옛말이 이 청년에게 대입될 수 있도록, 그래서 혹시나 모를 창고형 카페와의 경쟁에서 버틸 수 있도록 잘 보듬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화천1리를 지키는 느티나무에 기대어 앉았다. 멀리 대술초등학교가 눈에 들어왔다. 느티나무는 마을을 지켜왔고, 주민들을 지켜왔다. 또한 학교를 지켜왔고, 아이들을 지켜왔다. 거의 300년의 시간 동안. 자리에서 일어나 표지석을 바라보는 중에 한 어르신이 의자에 앉았다. 동네 주민인 듯 여유가 있는 모습으로 담배를 뻐끔뻐끔 피웠다.
“실제로는 500년은 족히 됐지 아마...”
새소리를 비집고 그렇게 갑자기 육성이 들려왔다. 느티나무가 과소평가되었다는 것이다. 과소평가되었다면 앞으로 계속 평가받으면 될 일이지 싶었다. 지방소멸의 쓰나미 속에서 대술이 살아남고 카페가 살아남는다면, 나무는 그동안의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