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 고북
생동하다.
생기 있게 살아 움직인다는 뜻이다. 장마기간 동안 개구리가 쉴 새 없이 울어대더니 장마가 끝나자마자 매미가 울어대기 시작했다. 아내와 저녁 산책을 하면서 매미가 곧 울 때가 되었다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게 바로 어제였다. 기가 막히게 맞춘 것이다. 배에 힘을 주고 정확한 발음으로 예언을 했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매미는 그렇게 온 산천을 울음소리로 채우기로 결심한 모양이었다.
도시와는 다르게 농촌은 농촌답게 생동한다. 일당을 나가기 위해 편의점 처마 밑에서 진을 치고 있는 어머님들, 초등학교 펜스 주위에 무성하게 자란 풀을 깎고 있는 나이 든 삼촌들, 옆집 현관 백열등을 갈아주고 있는 동네 어르신들, 그리고 고북면 순환생동센터에서 쿵쾅쿵쾅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고 있는 어르신 건강체조 회원들.
“뭐하는 분이신가?”
장애인복지관 주차제도 요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어르신의 목소리가 댄스 음악과 섞여 그렇게 들려왔다. 참 어려운 질문이다. 뭐하는 사람이냐는 질문은. 그냥 해미로 여행 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잠깐 들렀다고 말씀드렸다. 어르신은 면사무소와 순환생동센터 주차장에서 선진적인 주차 문화를 정착시키는 데 일조하는 중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아직도 장애인, 여성 구역에 아무렇게나 주차를 하는 몰상식한 인간들이 있으며 이를 도저히 묵과해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맞는 말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공공시설은 마땅히 선진적으로 주차제도로 운영되어야 했다.
대화는 음악소리와 계속 섞였다. 음악소리 때문에 대화에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음악소리가 귀청을 떨어지게 할 정도로 크거나, 내가 좋아하는 곡이 흘러나와서는 아니었다. 그냥 고요한 농촌마을에 음악소리가 들리고 음악소리에 맞춰 땀을 흘리고 있을 어르신들이 그려졌다. 도시에서나 느낄 수 있는 어떤 소란스러움이 ‘생동’이라는 단어와 연결되며 센터 이름을 참 잘 지었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스멀스멀 자리 잡았다. 이 생각은 바로 옆에 위치한 국화황토공원과 면사무소로 확장됐다. 국화황토공원은 면사무소와 센터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었다. 주민들은 면사무소와 센터를 위험한 도로가 아닌 공원을 통해 이동할 수 있었다. 더위를 피할 수 있는 공원이 고북의 핵심 시설을 양쪽으로 안고 있었다. 공원과 면사무소, 센터는 한 공간과 다름없었다. 이보다 더 좋은 센터 위치가 또 있을까 하는 생각에 다다랐다. 열심히 민원을 처리하고 있는 공무원들, 가을맞이 준비를 하고 있는 파란 국화들, 그리고 센터에서 춤을 추고 있는 고북 주민들이 하나의 개념으로 합쳐졌다. 바로 ‘생동’이었다. 눈에 띄지 않지만 고북의 공간들은 그렇게 살아서 움직이고 있었다.
“어르신, 버스 정류장이 두 군데던데 주민들은 버스를 어디에서 타고 나가시나요?”
음악소리가 잦아들었고, 우렁찬 강사 선생님의 목소리가 커졌으며, 이윽고 적막이 찾아왔다. 정류소를 주제로 삼고 싶었다. 고북에는 해미 방향으로 나가는 정류장이 면사무소 앞에 하나, 그리고 150m 떨어진 옛 차부에 하나 있었다. 문제는 신 정류장은 여기가 행정복지센터임을, 구 정류장은 여기가 면사무소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행정복지센터와 면사무소는 동의어다. 따라서 같은 장소의 정류장이 둘로 나뉘어 있다는 뜻이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신 정류장(행정복지센터)은 직행이고, 구 정류장(차부)은 완행이여. 주민들도 많이 헷갈려 하긴 허지.”
서산공용버스터미널도 고속버스, 시외버스, 시내버스 노선을 같이 사용한다. 대도시처럼 통행량이 많지 않기 때문에 통합적으로 운영하는 것이다. 하물며 인구 7,000명 남짓의 고북이 버스 정류장을 굳이 직행과 완행으로 나누어 운영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구 정류장이 차부였지만 현재 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으므로 버스 정차가 용이한 면사무소 앞으로 통합하는 게 필요할 것으로 보였다. 배차 시간을 대도시처럼 늘려서 주민들의 이동권을 보장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제시간에 약속된 장소에서 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그래서 길에서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 운영 시스템이 필요하지 않을까.
29번 도로가 개통되면서 고북 상권은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서산과 홍성의 관문으로서 정기시장이 설 정도로 북적거렸던 고북 상권은 이제 눈앞에 보이는 신작로를 바라보며 과거를 회상할 뿐이다. 정기시장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정기시장 장옥의 기능은 상가에서 주택으로 대체되었으며, 몇몇은 주택으로서의 기능조차 유지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번에 여기 이사온다는 사람이요?”
현관 백열등 교체를 마친 어르신이 빈집 앞에 서 있는 내게 말을 건넸다. 무척 반가운 표정이었다. 거의 확신하고 있는 듯했다. 생각해보면 이사온다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장옥을 유심히 살펴보는 사람이 있겠는가. 하지만 나는 예비 이웃사촌이 아니었다. 우리들의 대화는 여기서 끊어졌다. 누군가가 빈 장옥에 이사를 오는 모양이었다. 쇠락하는 중심지에 누가 들어와서 살까 생각할 수 있지만 이 와중에도 지역에 자리를 잡는 사람들이 있다. 인구가 줄고 있는 고북에서 장사를 하기 위해 들어오는 사람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해미에서 장사를 막 시작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고북은 해미의 배후 거주지역으로는 거리상 나쁘지 않다. 고북 사람들은 해미에서 식사를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관광지인만큼 먹을 곳이 많기 때문이다. 지방소멸이 가속화되면 해미와 고북이 합쳐질지도 모를 일이다. 고북이 더 이상 생동하지 않게 되면 말이다.
고북의 한가운데에 마녀를 의미하는 카페가 자리 잡고 있다. 찾아보니 프랜차이즈 카페 브랜드였다. 여성 둘이 운영을 하는 데 모녀지간인 듯 보였다. 어머니가 운영하는 건지 딸이 운영하는 건지 알 수는 없지만 딸이 운영한다면 어깨가 좀 무거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최근 고북에는 마녀의 경쟁자가 나타났다. 빵을 주 무기로 하는 카페인데 최근 트렌드에 걸맞은 공간 구성과 고객 서비스로 무장하고 영업을 시작했다. 젊은 청년은 어떻게 신무기를 앞세운 경쟁자를 상대할 것인가.. 문득 마녀가 고북의 지역성을 드러낼 수 있는 고유 브랜드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격 경쟁력이 있는 만큼 지역 주민과 함께 호흡하는 동네 브랜드로 문을 열었더라면 고북의 커뮤니티를 장악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젊은 청년의 걱정이 조금은 가벼워졌을지도...
마녀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글감을 정리 중이었다. 바로 옆 테이블에는 50대 정도 돼 보이는 아저씨가 홀로 앉아 있었다. 전화통을 계속 붙잡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거래처와 통화를 하는 것 같았다. 더운 날씨에 카페 공간을 잘 활용하는 아저씨라고 생각했다. 그의 지인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비슷한 간격을 두고 한 명씩 한 명씩. 어느새 작은 테이블은 포저씨로 채워졌다. 포저씨는 서로의 안부를 물어댔고 농사 분야로 이야기를 확장시켜나가기 시작했다. 에어컨을 가동하고 있는 카페임에도 불구하고 조금 덥게 느껴졌다. 포저씨는 넓고 넓은 카페 공간에 놀고 있는 테이블이 널려있건만 왜 굳이 내가 앉아 있는 테이블 옆에서 농사에 대한 자기 철학을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는 걸까. 내가 먼저 자리를 잡았는데 말이다. 목소리에 포위되어 간다는 생각에 젊은 주인 청년을 찾았고, 내가 곧 탈출할 것임을 눈으로 알렸다. 그녀는 죄송하다는 듯이 눈을 흘겼고, 현관문을 향해 서둘러 걷는 내 뒤통수에 안녕히 라는 의례적인 인사말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