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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축복빛나 Oct 21. 2019

Ep 13. 산후우울증은 남편에게 보내는 조난신호

출산 후 85%에 달하는 여성들이 일시적으로 우울감을 경험하게 된다. 그 중에서 약 10~20% 정도가 치료가 필요할 정도의 우울증이나 정신병을 경험하기도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대부분이 경험하는 우울감에서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우울증으로 악화되기도 하고, 나아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엄마의 우울증은 아이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우울증은 숨길 것이 아니라 나의 상태에 대해서 고백하고 애정과 도움 그리고 나아가 치료까지도 받아야 한다. 이는 옆에서 지켜보는 남편의 중요한 역할이기도 하다. 

첫째는, 아내의 우울감을 포착할 수 있어야 한다. 군에는 자살예방을 위해 Gate-Keeper라는 자살예방대책을 시행하고 있다. 주변의 누군가가 자살징후를 포착해서 조기에 예방하는 것이다. 아내는 계속 신호를 보낼 것이다. 마치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배에서 보내는 조난신호처럼 말이다. 남편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해독법도 없는 신호를 해독해야만 한다. 

아내의 우울감을 포착해서 공감해주는 것만으로도 대부분의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 

둘째는, 아내의 우울감을 해소시켜줄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처음에는 대화를 통해서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아야 한다. 혼자만의 자유시간을 준다든지, 좋아하는 쇼핑을 보낸다든지 그 다음에는 강제로 어떤 커뮤니티에 소속되어 소속감을 가지고 소통할 수 있는 다양한 채널을 확보하려는 시도를 해보자. 대개 육아를 하면서 밖에 나가지 못해서 답답함에 의해 우울감이 시작되곤 한다. 마지막으로는 전문가 조언을 받을 수 있도록 해보자. 이 때는 서로 간에 충분한 신뢰관계가 형성된 상태여야 한다. 무작정 치료를 권유할 시에 오히려 더 악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며칠 전 라디오를 듣는데 남편이 육아에 대처하는 아주 대표적으로 실수하는 상황이 사연으로 소개되었다. ‘모처럼 쉬는 주말에 아이들과 놀아주려니 더 피곤해서 일부로 회사일 있다고 하고 나왔다가 찜질방에 와서 쉬는데... 실수로 카드결재를 했네요. 아내한테 문자가 갈텐데 들어가기 두렵네요’ 사연이 소개되고 진행자와 패널들은 다들 빵 터졌고, 나도 처음에는 웃었다. 그러나 내가 지금 홀로육아를 하는 상황에서 주말에 아이들과 집에서 혼자 있을 그 분의 아내를 생각하니 오히려 내가 화가 났다. 

대표적인 현실도피형 육아모습이다. 아마 아빠라면 한 번쯤은 시도해보았거나, 계획한 적이 있을 것이다. 육아가 얼마나 힘든지 그 상황에 놓여진 아내의 입장을 안다면 육아전쟁터에 전우를 혼자 남겨두고 떠나지 않을 것이다. 

당장 1998년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 영화를 보라. 전선에 남겨진 남은 아들 라이언 일병이 지금 옆에 있는 아내의 모습이다.   


사람들은 대체로 나쁜 일은 나에게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렇게 믿고 싶어한다. 나도 처음에 평소 내 아내의 평소 모습을 보았을 때 산후우울증과는 관계가 없을 것이라고 단정 짓고서 생각해보지도 않았었다. 

더군다나 아이가 6개월이 되기까지 수차례 조난신호를 보냈지만 나는 그런 전조증상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다. 특히, 여건상 떨어져서 지냈기 때문에 더 무디었던 것 같다. 

어느 날 통화를 통해서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아내는 이미 혼자 고민을 통해서 해결방안까지 생각해 둔 상태였다. 아이와 분리되어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어했다. 우리는 6개월 된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기로 했다.  

6개월이면 제대로 앉아있지도 뒤집지도 못하는데 주변에 물어봐도 6개월부터 어린이집에 보낸다고 하니 다들 놀라워했다. 그래도 내가 해결해줄 수 없는 상황이었고, 나에겐 아내가 혼자 고생하는데 아내의 정서적 안정감도 중요했다. 이후 아내는 주어진 시간동안 배움을 통해서 성장하는 기쁨을 느끼고, 그 기쁨을 온전히 아이와의 시간에 쏟을 수 있었다. 


아이를 키우는 환경과 배경은 모두 다르기 때문에 적절한 해답을 찾기는 어렵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남편과 아내가 함께 고민하고 노력하는 것이다. 


어느 날 아내가 읽고 있는 책이 궁금해서 물어봤는데 조금 당황하면서 육아서적이라고 하길래 느낌이 이상해서 나중에 몰래 책 제목을 보고 섬뜩했던 적이 있다. 

『아기를 낳은 후에 남편을 미워하지 않는 법』이라는 책이었는데, 펼쳐볼 용기는 나지 않아 읽어보지 않았지만 제목만 봤을 뿐인데 그 이후로 며칠을 가위눌리듯이 지냈던 것 같다.

아마 가정에 하나 정도는 부적처럼 꽂혀있지 않을까? 남편이 볼 때마다 섬뜩하라고...


∫ 참는 것도 한계가 있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모습은 왠만해서는 화를 내지 않고, 참는 성격이다. 대부분의 화는 시간이 조금 지나면서 논리적으로 생각하게 되고, 자연히 사라지더라. 그러나, 나도 사람인지라 감정적으로 나가는 순간도 있다. 내가 생각했던 계획대로 되지 않았을 때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당연히 이 시간에 밥을 먹어야 하는데 이 반찬이면 잘 먹어야 하는데... 먹지않는다. 어린이집에서 하원해서 이제 집에 들어가야 하는데 놀이터에서 놀고싶다고 때를 쓴다. 

밥 먹다말고 반찬을 집어던질 때, 놀다말고 화분을 쓰러뜨릴 때, 구급함과 공구함을 뒤집어 놓거나, 수건정리함을 엎어놓을 때.... 계획되지 않았던 정리소요가 발생하면 바로 정리해야 직성이 풀린다. 그러다 보면 화가 조금씩 쌓이게 되고,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여유가 없어진다. 


참지 못하고 화를 낼 때면 돌아서서 후회한다. 

화를 낸다고 달라질 게 없기 때문이다. 아이는 그런 상황이 무섭고 낯설어서 울고, 아빠는 미안해서 급 태세를 전환한다. 다시 원점이다. 

그렇다고 아이의 정서를 위해서 화를 참는다? 그것도 옳지 않다. 그러다 보면 자칫 쌓여있는 화로 인해서 내 생활 전반에 부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일 좋은 방법은 아내에게 털어놓는 것이다. 또는 그 상황에서 잠시 벗어나고 아내에게 SOS를 보내는 것이다. 나와 아내는 각각 6개월씩 독박육아를 했다. 서로 같이 있어주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상황에 대처하는게 몹시 힘들었다. 나는 살면서 직장에서의 그 어떤 스트레스보다 홀로육아를 하면서 받는 스트레스가 더 컸다고 확신한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으로서 직장에서 갖은 스트레스를 받고 퇴근하는 아빠는 동료들과 술잔을 기울이기보다 집에서 육아전쟁을 치르고 있을 아내를 위해 함께 있어주고, 도와주면서 서로 간에 격려와 위로를 해준다면 아주 큰 힘이 될 것이다. 

     

∫ 우리에게도 데이트가 필요하다


파멜라 드러커맨의《프랑스 아이처럼》에서 말하길 부부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처방으로 ‘밤데이트’가 유행하고 있다고 하며, 캐나다에서는 부부가 같은 취미활동을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결론은 부부가 육아에서 공간적으로 정신적으로 분리되어 서로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우리는 그 시간을 아이가 잠든 뒤를 온전한 우리의 시간으로 만들기로 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아무 생각이 없었고, 아내가 내린 결정에 그저 따르기만 했을 뿐이다. 

‘밤 데이트’를 위해 우리는 아이가 자는 공간을 분리시키기로 했고, 그리고 수면의식을 일찍해야 했고, 자다가 깨더라도 다시 스스로 잠들 수 있는 수면습관을 들여야 했다. 

먼저 우리 아이는 잠에 관해서는 예민할 정도로 잘 깨고, 잘 자지 못한다는 사실을 전제로 알아야한다. 

먼저, 우리 아이는 생후 6개월부터 각방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걱정반, 기대반이었다. 

아이가 적응하기까지 정말 쉽지 않았다. 내면의 갈등도 많았다.  

당시 이런 얘기를 주변사람들에게 하면 다들 깜짝 놀란다. 그렇게 일찍 각방을 쓰냐고... 아마 내 주변사람들은 대부분이 육아를 경험해보지 못한 남자들이 대부분이었기에 잘 몰라서 놀랐던 것도 있는 것 같았다. 그래도 그럴 때면 은근 스스로 뿌듯해져서 우리는 밤에 안 깨고 잘 잔다고 수면부족에서 해방되었음을 의기양양하게 말하곤 했었다. 

당시 아이는 뒤집기도 못했기 때문에 방을 분리하는 것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두 번째는 저녁 7시를 전후로 수면의식을 진행했다. 불을 끄고, 백색소음을 틀고, 자장가를 불러주고, 기도를 하는 등의 규칙적인 패턴을 만들었다. 이것도 시간이 지나면서 적응이 되었던 것  같다. 


마지막이 아마 최고 힘든 단계였던 것 같다. 아이가 자다가 깨어도 스스로 잘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아이는 자면서도 수시로 깨기도 하고, 자세를 이리저리 바꾸는 게 일반적이라고 한다. 처음에 몰랐을 때는 아이가 수시로 자세를 바꾸고 이리저리 움직이길래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혼자서 걱정하기도 했었다.

중간에 깨서 울면 정말 1초가 1분 같다. 여기서 기다림이 중요한대 책에서 권장하는 그 적정 시간들을 버티기가 정말이지 곤욕스럽다. 

그럴 때마다 내가 편하자고 이러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과 죄책감도 들었다. 그래도 난 아무 의견도 낼 수 없었다. 앞서 얘기했듯이 나는 그저 따르기만 했다고... 나는 논리도 없었고, 내가 한 말에 책임을 질 자신이 없었다. 

규칙을 어기고 불쑥 아이 방에 들어가 버리면 그대로 잠을 포기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내에게 받을 갖은 원망과 눈총에 버틸 자신이 없었다. 


어느덧 아이는 혼자서 잠들 수 있어지면서 우리 부부는 밤 9시부터 다음날 아침 7시까지는 온전한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 

집 앞에 산책도 잠깐 나갔다오고, 같이 야식도 시켜먹고, 얘기도 하고, 평소 보고 싶었던 영화도 같이 보고, 각자 읽고 싶던 책도 읽으면서 그렇게 우리의 시간을 찾아갔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그 때 ‘밤 데이트’가 없었더라면...

아마 아이로 인한 스트레스에 부부 간의 스트레스까지 더해져서 더 힘든 상황들이 많았을 것 같다. 그 때 아내가 잠에 대해서 외서까지 섭렵해가며 적극적으로 추진해준 덕분에 육아에 지친 하루를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이 되지 않았을까.

그 이후로도 가끔 잠을 잘 자지 못하는 날이 있기도 했다. 하지만, 그래도 ‘밤 데이트’는 절대 포기할 수 없었다. 건강한 환경 속에서 성장해 나갈 아이를 위해서도, 그리고 우리 부부를 위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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