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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축복빛나 Oct 21. 2019

Ep 15. 아이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은 시간이다

핀란드에서는 장난감을 많이 사주지 않는다. 내가 가진 장난감의 소중함과 관리하는 습관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다양하고도 무궁무진한 장난감들이 넘쳐난다. 가끔은 부모들이 더 신나할 때도 있다. 그 정도로 상상초월 할 장난감들이 널려있다.


어린이날을 맞아 근처 제일 큰 장난감가게를 갔더니 동네 아이들은 다 여기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발 디딜 틈 없을 정도로 붐볐다. 그 동안 아이에게 소홀했던 것에 대한 보상심리로 이참에 좋은 장난감 하나 사주면서 부모로서 역할을 해보려고 하는 것이다. 아니 내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장난감을 사는 것에 대해서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다. 일단 아이는 대부분의 장난감은 처음 보는 것이기 때문에 신기하다는 이유로 관심을 가진다. 이런 장난감을 들이면 대부분은 1주일을 넘기지 못하고 장난감 상자를 채우는 용도로만 쓰일 뿐이다. 

평소 아이가 노는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다보면 아이가 특별히 반응하는 단어나 물건이 있을 것이다. 우리 아이는 버스에 유독 집착적으로 반응을 했는데, 그래서 부담이 되지 않는 선에서 작은 버스를 사주고, 그 외 각종 놀이용 장난감은 장난감 대여소를 활용해서 주기적으로 교체해주었다. 


지역별로 장난감대여소와 각종 장난감들이 즐비한 키즈카페가 있어서 아이들은 더 쉽게 다양한 장난감들을 서로 공유하면서 접할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 

하지만, 아이에게 장난감만 주면 된다는 착각을 할 수 있어서 조심해야한다. 

나도 처음에는 장난감을 통해서 시선을 돌리고, 그 덕분에 여유를 찾으려고 했었다. 어떤 날은 혼자서도 잘 가지고 논다. 그런데 어떤 날은 장난감이 있는데도 떼를 쓴다. 왜 그러냐고 물어보면 아직 말을 하지 못하지만 눈짓과 손짓으로 땅을 손바닥으로 툭툭 치면서 옆에 앉아 있기를 원한다. 

그 다음 단계는 옆에 앉아서 처음에는 같이 놀아주는 시늉을 하다가 곧 휴대폰을 본다든지... 그냥 가만히 앉아서 노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었다. 

그 때는 정말 지쳐서 그랬던 것 같다. 아이와 열심히 놀아주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놀아주는 것도 상당한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다. 이미 지칠 대로 지친 몸과 마음은 뜻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렇게 아빠와 노는 시간에 아이의 짜증은 늘어나기만 했고, 장난감을 가지고 다양하게 놀지를 못하고 금방 질려했다. 


어느 날 근처에서 일을 하시는 장모님이 저녁에 오셔서 아이와 놀아줄 때 정말 진심을 다해서 친구처럼 놀아주려고 하시는데 아이가 푹 빠져서는 집중해서 재미있게 노는 것이다. 마치 놀이를 통해서 서로 교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육아휴직을 선택하면서 온전히 아이에게 집중하기 위해서였는데, 지금까지 난 그러지 못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일하면서 아이를 보는 다른 아빠들과는 그래도 달라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부터 나는 아이와 놀아주거나 함께하는 시간을 온전히 아이에게만 선물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아빠가 옆에서 버스가 되어서 상황극 놀이도 하고, 새로운 놀이를 찾아서 시도해보려고 했더니 아이는 흥미있어 하면서 그 상황에 집중해서 노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아이는 아빠의 시간을 선물 받을 때 가장 흥미를 가지고 재미있어했다.


아이와 단 둘이 부산으로 여행을 갔을 때의 일이다. 짐은 양손 가득에 아이는 낯선 환경에 긴 여행 탓에 걸어서는 이동하려고 하지 않았다. 도저히 대중교통은 엄두가 나지 않아서 택시를 타고 이동하게 되었는데 그 때 택시기사님이 했던 얘기가 인상적이었다. 

‘아빠가 아이와 둘이 다니시다니 대단하시네요.’ 

‘네, 쉽지 않은 것 같네요.’

‘힘들죠? 쉽지 않죠. 저는 손녀 보러 갔는데 하루 종일 안고 있었는데 팔이 하나도 안 아프던데 나중에 아내가 물어보더라구요. 당신 팔 괜찮냐고 그래서 괜찮다고 했더니 생전 자기 아들 둘은 한 번도 안아준 적이 없으면서 손녀는 그렇게 안고 있었냐고... 그 때 정말 반성 많이 했죠. 그래도 손님은 그런 얘기 안 듣겠네요.’

‘저는 아들이 둘 있는데, 어릴 적에 매주 여행을 다녔어요. 저는 다른 아빠들과는 달리 집에 있는 것을 별로 안 좋아했거든요. 그럴 때마다 사진을 찍어서 뒷면에 언제 어디를 갔었는지 기록을 다 했죠. 나중에 아들이 결혼하고 아빠가 되었을 때쯤 묻더라구요. 아빠는 어릴 때 많이 놀러 안 데리고 다니지 않았느냐고. 그 때 정말 황당했죠. 아마 어릴 적 기억은 잘 못하는 거였을텐데... 저는 말없이 그간 모아두었던 사진첩을 증거물로 보여주었죠.’


택시기사의 얘기를 들으면서 처음에는 전형적인 아버지의 모습인 가정 일에는 무뚝뚝한 분이시구나 하는 생각을 하다가 나중에 아이들과 여행 다니면서 다 기록한 얘기는 참 인상적이었다. 지금도 결혼한 아들, 며느리, 손주들과 자주 모여서 놀러도 가고, 며느리와 당구장도 같이 가고 터울 없이 맥주 한 잔 기울일 사이가 과연 얼마나 있을까? 어쩌면 아이는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그 때 아버지로부터 느꼈던 감정이나 느낌은 아이가 성장하는데 좋은 밑거름이 되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흔히 자식을 농사에 빗대기도 하는데, 자식농사를 잘 일구고 수확하는 농부의 모습마냥 행복해 보였다.


아이들은 아빠가 무엇을 사주었는지는 기억하지 않는다. 그건 아빠가 기억하고 싶은 생색내기용 일뿐이다. 아이는 그 순간들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잠재의식 속에는 아빠와의 추억과 그 때의 느낌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그런 것들은 당장 눈에 보이지 않지만 아이의 성장에 있어서 종합비타민과도 같은 좋은 영향을 줄 것이다. 그리고 아빠에게도 마찬가지로 훗날 지난날을 회상할 때면 장난감을 사준 기억보다 아이와 함께 교감했던 순간들만이 남아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때 더 많이 교감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가질 것이다. 


우리는 선물을 아무거나 대충 하지 않는다. 상대방의 취향과 필요성 그리고 상대방이 내 선물을 받고 기뻐할 모습을 상상하며 고르고 골라서 예쁜 포장지에 담아서 정성스런 글귀와 함께 보낸다.


아이는 아빠에게 ‘시간’을 그런 선물로 받고 싶어 한다. 

그 시간은 단지 함께 같은 공간 안에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와 함께 교감하는 시간을 말한다.

오늘 나는 아이와 얼마나 많이 교감했을까? 

오늘 중 아이가 아빠를 보며 세상 행복해하는 미소를 지어준 순간이 언제였을까?

지금 당장 같이 교감할 수 있는 온전한 시간을 선물해 보는 것이 어떨까? 

그러면 아이도 아빠에게 잊지 못할 추억과 감동을 선물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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