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15개월이 되었을 때 아내는 복직을 했고, 사정상 주말부부로 떨어져 지내게 되었다. 아내 없이 주 양육자로서 아이와 함께하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다행히 장모님이 인근 학교에서 출퇴근을 하고 계셔서 퇴근시간 이후에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내가 육아를 하면서 가장 낯설었던 것은 어린이집 하원시간에 아이와 놀이터를 가면 안 그래도 좁은 놀이터에 아빠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그나마 주말에 어린이도서관이라도 가보면 간간이 1~2명 아빠가 보이지만 거의 대부분은 엄마가 옆에 있다.
어린이집에서 실시하는 부모동반 봄소풍과 학부모상담을 가봐도 왠지 어색하고 대화에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어쩌면 나뿐만 아니라 그곳에 계신 다른 학부모님들도 어색했을 수도 있다. 남들이 다 출근하고 난 뒤에 아이의 어린이집 가방을 메고 등원시키는 모습. 이른 오후에 어린이집 가방을 메고 하원시키는 아빠의 모습을 아직까지는 낯설어 하는게 현실이다. 그나마 잘 반겨주시고 응원해주시는 분들은 동네 어르신 분들이다. 버스정류장에서 처음 뵌 할머니도 아이를 살갑게 대해 주시고, 스스럼없이 말을 걸어주시는게 어떨 때는 정말 가슴 따뜻해지고는 했다.
그나마 몇 번 놀이터에서 마주친 분들은 인사치레로 먼저 물어보실 때도 있다.
“휴가신가봐요?”, “아니요. 육아휴직중입니다.” 에 조금은 놀란 반응을 보인다. 그 반응의 반은 신기하다는 생각에서 그리고 나머지 반은 부럽다는 생각에서 나온다. 아직까지는 육아휴직한 아빠의 모습에 색안경을 끼고 보는 시선들이 있는 것 같다.
핀란드의 놀이터는 아빠와 함께하는 아이가 절반은 된다고 한다. 스웨덴에서 유래된 ‘라떼파파’의 말처럼 커피를 손에 들고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모습이 북유럽에서는 전혀 낯설지 않다.
각종 최신 육아트렌드에 등장하는 프랑스식 육아, 스웨덴식 육아, 핀란드식 육아 등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딱 2가지였다. 정말 육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천국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과 그런 제도나 문화가 형성되어 있지 않은 곳에서는 아무리 혼자서 프랑스식으로 스웨덴식으로 육아를 하고 싶어도 절대 실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서서히 많은 사람들이 공감대를 형성하고, 정책적으로 반영되면서 우리 사회에 문화로 자리 잡을 때쯤이면 육아하는 아빠가 낯설지 않은 사회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 육아초년생의 하루
아이와 함께하면서 낯선 점은 나의 일과시간과 환경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출근해 있을 시간에 나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데려오고, 놀이터에서 놀고, 카페에서 독서를 하는 것이 어쩌면 편해 보일 수 있었겠지만, 그 속에서 난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했다.
저 멀리 보이는 엄마들 틈에서 혹시 아빠는 없을까? 두리번거렸고, 삼삼오오 모여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감히 끼어들만한 용기도 주제도 없었다. 난 그저 여기서는 육아 초년생이었다.
혹시라도 엿듣다가 남편얘기라도 나오면 좋은 얘기는 없었기에 괜히 스스로 뜨끔해서 더 가까이 가지 않으려고 했었던 것 같다.
가끔은 주변에 엄마들과 함께 하는 아이들을 지그시 바라만보는 아들의 모습에서 용기를 내어 친해져볼까 싶으면서도 그마저도 별로 달갑지 않았다. 그럴 때면 같이 어울려주지 못하는 아빠로서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주지 못해서 미안하고 안쓰러웠다. 나는 평소 카페에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일단 혼자 있으면 외롭고 주변의 얘기소리가 이상하게도 잘 들린다. 책을 읽다가도 잠시 집중을 잃으면 어느새 주변 수다소리로 생각의 흐름이 이동한다.
어느 날은 집에서만 책을 읽다보니 집중도가 떨어져서 오후에 아이를 어린이집에서 하원 시키기 전에 카페에서 들러 잠시 책을 읽었다. 이 시간대에 카페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정말 대부분이 아주머니들이었다. 점심시간도 아닌 느즈 막한 오후시간에 카페에 한가히 앉아 있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그 속에서 어느 아주머니 얘기를 듣다가 뜨끔할 때가 여럿 있었다. 거의 대부분의 주제가 남편얘기, 아이얘기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한 사람이 '남편이 화나서 아무 얘기도 안할 때가 정말 답답하다'로 시작해서 다들 격하게 공감하며 대화가 시작되더니...마무리는 '우리 남편은 싸패다.'
'싸패가 뭐에요?' '싸이코패스'
마치 내가 남편들 스파이라도 된 것 같았다. 듣는 내가 괜히 민망해져서 금세 나와버렸다. 육아초년생이 발붙일 곳은 없다.
일단 평일 낮 카페에서는 남편들 얘기가 주요 화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