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리(權利)는 사전적 정의로 특별한 이익을 누릴 수 있는 법률상의 힘을 말한다.
근래 들어 출산율 저하와 육아에 대한 각종 지원에 힘입어 ‘육아휴직’은 권리로 각종 법규와 사내 규정, 국가정책 등에 명시되어 있고, 이를 이행하지 않거나 이런 권리를 누리는 데 있어서 다른 불이익을 줄 시에는 SNS, 언론의 힘이 무서운 요즘 큰 사회적 이슈가 됨으로써 회사나 기관에 큰 타격이 될 수 있다.
그나마 이런 것들도 국가기관이나 공기업, 대기업 등에서만 장려되고 광고에도 나올 정도로 공감대가 잘 형성되어가고 있지,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에 관련해서는 아직도 육아휴직은 먼 나라 얘기로 치부되고 있다.
당시 직업군인으로서 나는 결혼을 하고, 아빠가 되면서 당면한 일과 가정 사이의 불균형 속에서 심한 갈등과 고민을 겪고 있었다.
우리는 살아가는 모든 순간이 예측하고, 선택하고, 준비하는 과정의 연속이다. 예측할 때 우리는 아무렇게나 마음가는대로 하지 않는다. 실패를 줄이기 위해 먼저 살아오신 분들의 삶의 지혜와 나의 짧은 경험, 그리고 책이라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예측을 하고 더 나은 선택을 하기 위해 노력한다.
∫ 먼저 길을 걸어가신 분의 삶의 지혜
언제였는지 군 생활을 30년 이상 하신 장군님께 교육을 듣는 자리가 있었다. 주제는 조금 무겁고 분위기는 조금 엄숙한 자리였다. 그래도 내용은 Case by case 형식으로 서로 자유로운 대화, 토론도 오고갔던 뜻 깊은 자리였다.
당시 교육이 끝나고 질의응답 시간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 때 누군가 교육내용과는 관계없는 조금은 엉뚱한 질문을 해서 그 내용이 지금도 잊혀 지지 않는다.
“장군님! 교육내용과 관계없는 개인적인 질문입니다. 요즘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 의 준말로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뜻)이 떠오르고 있습니다. 장군님은 워라밸을 어떻게 실천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너무나도 뜬금없는 질문에 좌중에서는 다들 피식 웃으며 질문자를 잠깐 보았다가, 과연 어떤 답변이 나올지 궁금해 하며 시선은 다시 장군님을 향했다.
“나는 일과 가정이 양립하지 못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가족과 자식들에게 미안하다. 후회막급이다. 지금은 제도가 좋아졌다. 여러분들은 그것을 권리로 누려라”
뼈 있는 말이었다. 당시 워라밸의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국방부에서도 일과 가정 양립에 관한 각종 정책들이 개선되어 가고 있을 시기였다. 그래도 항상 떠나지 않던 고민은 일과 가정을 양립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특히, 군인이라는 직업 특성상 더 힘들었다. 당시 그 한마디는 먼저 이 길을 걸어가신 분의 삶의 지혜에서 나오는 말이었다. 나의 갈등에 한 줄기 빛이 되어준 좋은 시간이었다.
∫ 지극히 주관적인 경제적 논리
일과 가정을 둘 다 균형 있게 유지한다면 최선이겠지만, 그런 방법은 아무리 내 짧은 지식으로 고민해 봐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어쩌면 정답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 때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경제적인 관점으로 현재 30세인 내가 100세 인생을 앞두고 주어진 70년(613,200시간)이라는 시간을 투자한다고 생각할 때, 30년이라는 일에 투자할 것인가? 70년이라는 가정에 투자할 것인가?
정년퇴직이 아직 사회적인 제도로 자리 잡은 우리나라에서는 나의 직업적인 경력은 길어야 30년이다. 물론 그 간의 경험을 토대로 이후 관련분야로 진출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남편이자 아빠로서의 경력은 시작과 동시에 내 인생의 끝까지 이어진다.
어쩌면 누군가는 내가 지금 휴직을 하거나 직장에서 조금 소홀해진다면 앞으로의 승진과 연봉이 문제가 될 수 있으니 직업적인 경력에 투자할 때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반대로 우리 아이가 처음 뒤집고, 우리 아이가 처음 걷고, 우리 아이가 처음 옹알이 하고, 우리 아이와 함께 성장하는 순간은 나중이 없다. 아이의 성장하는 모습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 100세 인생에서 찾은 인생 재설계
요즘은 100세 인생이 당연시 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보험만 보더라도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보장기간이 80세가 대부분이었는데, 요즘은 기본이 100세 또는 종신보장이라고 한다.
일본의 저널리스트 오노 가즈모토가 세계 석학들의 인터뷰 내용을 묶은 《초예측》이라는 책에서 《100세 인생》의 저자 린다 그래튼의 인터뷰 내용에 정년퇴직 제도에 대해 얘기한 부분이 있다. 그녀는 100세 시대에 맞지 않는 정책 중의 하나로 정년퇴직을 꼽았다. 영국이나 미국 등에서는 80세의 교수도 있지만, 일본이나 한국에서는 교수도 정년이 되면 퇴직해야 한다. 영국에서는 직원을 구할 때 연령제한을 두면 위법이다. 출생률 저하, 100세 인생에 맞물려 60대 이상의 사람들에게도 생산적인 활동을 장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인터뷰 내용을 보고 내가 지금 고민하고 있는 부분에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그녀가 쓴 《100세 인생》을 읽어보았다. 그 책은 100세 인생에서는 하나의 직업으로는 평생 살아가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속적인 학습과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는 점이었다.
여기서 그녀는 행복한 삶을 ‘가정을 꾸리고 좋은 친구를 얻고 기술과 지식을 배우고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 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이 무형자산에서 비롯된다는 점이었다.
우리는 흔히 행복한 삶을 유형자산인 현금, 주택이나 직업적인 성공을 이뤘을 시에 누릴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성공을 향해 가고, 내 통장에 숫자가 올라갈수록 행복을 누려야 하는데, 왠지 점점 가까워지는 것 같지가 않다. 우리는 더 행복에 대해 갈증을 느낀다.
내 삶에도 재설계하고 재충전할 시간이 필요했다.
앞서 얘기한 이런저런 얘기들이 바로 내가 육아휴직을 선택하게 된 이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