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DON THEATRE, 21세기 Shakespear 원형극장
아가씨와 건달을 영화도 뮤지컬도 본 적이 없다. 딱 제목에서 나랑 맞지 않을 것 같다. 스토리도 뻔해 보인다.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커플이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아름다운 사랑으로 결말을 맺는 내가 딱 싫어하는 서사.
런던 출장 중 일정에도 계획에도 없던 뮤지컬 Guys and Dolls를 Bridge Theatre에서 볼 수 있는 기회가 우연하게 생겼다. 내 의지는 아니었다. 내가 의도했다면 나는 분명 다른 것을 봤을 것이다. 몇년 전 출장에서 빅토리아역 인근에서 본 빌리 엘리엇 (Billy Eliot)과 피카디리 광장 인근에서 본 레미제라블 (Les Miserables)은 내 인생에서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다. 이 두 작품을 보고 로또가 되면 가족들과 함께 런던에서 뮤지컬을 마음껏 보는 미래를 상상하고는 했다. 로또는 매주 불발이었지만 2018년 가족들과 유럽여행에서 마틸다 (Matilda)를 보며 마음껏은 아니지만 소소하게 상상한 미래를 실현해 봤다.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런던에서 뮤지컬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니 딱히 거부할 이유는 없다. 혹시 모를 시차로 인한 졸음과 씨름하지 않기 위해 오전 일정을 모두 끝내고 호텔로 돌아와 약 1시간 정도 숙면을 취하고 우버를 타고 Kings Cross에서 출발 그 유명한 런던 브릿지로 향한다. Bridge Theatre는 London 시청과 런던 브릿지 인근에 위치하고 있다. 극장 뿐만 아니라 주변이 관광지이고 항상 사람이 붐비는 곳이다. 생각보다 관광지에 가면 실망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런던 브릿지는 갈 때 마다 참 좋다. 사진에서 영상에서 수없이 봐서 뻔할 것 같은데 실제 가서 보면 정말 오기 잘했다 생각이 든다. 정말 난 런던에 있구나 이 느낌을 강하게 느낄 수 있다. 출장자가 진짜 관광객으로 변신하는 순간이다.
런던 브릿지가 보이는 식당에서 화이트 와인 한병과 여러 음식을 시켜 먹다 공연시간이 임박하고 식당에서 보이는 극장 출입을 위한 줄이 길게 보이자 허겁지겁 먹고 와인도 음미따위 하지 않고 꿀꺽 삼키고 대기줄에 합류하여 입장을 기다린다.
공연은 오후 7시 30분, 메일로 받은 PDF 파일의 티켓을 준비한다.
seated ticket이다. standing ticket도 있다고 해서 놀랐다. 아니 3시간을 서서 본다고 이게 말이 되나? 어떻게 서서 본다는 거지? 극장을 들어가지 않고 눈으로 직접 확인하지 않고서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입석 같은건가 아님 공연장의 스탠딩석 같이 있고 뮤지컬이 마치 콘서트처럼 진행되는건가? 계속해서 머리에서 standing석의 의문이 풀리지 않는다.
극장에 입장하고 나서 입이 쩍 벌어졌다. 이런 무대는 처음이다. 놀라서 말이 안나온다. 이 극장은 마치 Shakespear의 글로브 원형 극장을 실내로 그대로 옮겨온 것 같다. 이런 생각이 어떻게 가능했던 것일까. 공연장은 standing석 사람들로 붐볐고 오케스트라는 2층에 있고 벌써 연기자들이 인파에 섞여 있다. 혼란스럽다. 어떻게 공연을 한다는거지?
공연이 시작되기 전 매우 숙련된 가이드들이 standing석 사람들을 요리 조리 정리하더니 바닥에서 무대가 올라온다. 이런.. 생각지도 못한 일이. 배우와 무대 가이드들이 완벽한 동선에서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공연이 시작되고 한동안 넋을 잃고 보게 된다.
찍으면 안되는데 무심결에 맨 첫 도입부에 핸드폰을 꺼내들어 한 컷. 이런식이다. 객석은 4군데 그중 한군데 가운데는 오케스트라 그리고 kinetic 형태의 무대에 장면에 맞게 완벽하게 오르고 내리고를 반복한다. 배우들은 어떤 당황도 하지 않고 standing석 가이드와 유기적으로 동선을 확보하고 때로는 관객들과도 협업한다. 관객들은 어떤 저항도 불편함도 없이 바로 눈 앞에서 배우들의 연기와 노래, 춤을 보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1막이 끝나고 2막이 시작되면서 스탠딩석 관객들이 앉아 음료를 마시는 곳이 무대로 올라오면 또 다른 배우와 관객이 협력하는 공간이 된다. 무대의 연출력에 감탄하며 1부의 막이 내렸다. 1막은 좀 지루하다. 뮤지컬은 대부분 대사로 이끌어진다. 이 작품이 사랑이야기를 코믹하게 그려냈다고 하지만 배우들의 이야기를 서양인들의 관점에서 이해하지 못한다면 코믹한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다. 다들 웃는 장면에서 거의 웃지를 못했다. 좀 지루했던 1막에서 졸음을 이기지 못한 동료 2명이 kings cross 숙소로 이탈한다. 그들이 숙소로 이탈했던 순간부터가 이 뮤지컬은 정말 재미있어진다. 그들은 실수한 것이다.
1부와 2부를 연결하는 인터미션도 즐겁다. 관객에서 노래를 불러주고 춤을 추며 곧 있을 2막의 기대감을 고조시킨다. 수준급의 노래와 춤을 즐기다 보면 관객이 그대로 앉아 있는 공간이 무대의 일부가 되며 화려한 쇼가 펼쳐진다. 이야기의 중심은 도박꾼 스카이 매스터스와 얌전한 구세군 새러 브라운의 사랑 이야기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뮤지컬의 즐거움을 이끌어 준건 내이선과 이들레이드의 애인관계가 결혼하게 되기까지 사연이었다. 2부의 화려한 시작도 아들레이드의 쇼로 시작된다. 2부는 1부의 이야기가 폭발적인 연출로 연결되는 것 같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더 무대를 즐기기 시작한다.
이야기는 다 아는 것처럼 해피앤딩으로 끝나고,
이제 배우과 standing석의 관객들의 본격적인 파티가 시작된다. 무대는 내려오고 관객과 뒤섞인 배우들이 신나는 음악과 함께 밤새워 놀 분위기이다. 한참을 봤는데 끝나지 않는다. 음악을 들으며 나오기는 했는데 언제 이 파티가 끝났는지는 모르겠다.
시차가 완벽하게 적응되고 체력이 있다면 스탠딩석도 또 다른 차별화된 경험일 것 같이 도전해 보고 싶다. 물론 객석도 공연을 즐기기에 충분하다. 그렇게 잘 설계가 되어있다 (내 자리는 매우 좋은 위치였다). 그간 대부분의 뮤지컬이 무대만 바라보며 배우들의 열정을 느끼는 공간이었다면 이곳은 그 열정이 온전히 피부에 와 닫고 배우들의 작은 디테일 그리고 무대에 따라 움직이는 동선과 배우들의 몰입감 있는 연기는 꼭 런던에서 봐야할 작품으로 손색이 없어 보인다.
마지막으로 이 뮤지컬을 소개한 아주 좋은 문구가 있어 이 문구를 소개하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The Bridge's new immersive production of the Broadway sensation.
#Guysandolls #bridgetheat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