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작가의 이름만으로도 책을 구매한다.
일종의 특정 이름이라는 브랜드에 충성화된 고객이다.
유시민 작가, 장하준 교수.
꿀벌의 예언도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이름 값만으로 책을 집어 들었다.
작가는 천재적 이야기꾼으로 소문나 있는 그냥 타고난 글쟁이다. 책을 읽으면 그렇게 인정하게 된다.
본인의 나라인 프랑스에서보다 한국에서 더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니 한국에 대한 작가의 마음은 양재동 코스트코를 보며 진심어린 애정을 표하는 미국 본사 사장의 속내와 다를바 없을 것 같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과학적 상상력과 역사적 사유가 만나 시작되는 기상천외하고도 매혹적인 이야기의 큰 홍보 문구를 읽었다. 꿀벌과 인류의 미래를 기술했다니, 흥미롭다.
책을 읽어보면 과학적 상상력은 오래전 우연한 기회에 잘 보존된 벌을 유전공학을 통해 현세에서 살려 미래 인류의 멸종 위기를 바꿔낸다는 것 뿐이다. 현대 유전공학 기술의 수준을 고려하면 이 정도는 상상력으로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과학의 상상력보다는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역사의 사유와 주인공의 모험이 주된 상상력으로 봐야할 것 같다. 그렇다고 작가의 상상력을 폄훼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이런 주제로 작가처럼 상상력의 나래를 펼칠 수 없기에 그저 대단하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이렇게 생각하고 글을 쓰는 건 몇일 전 끝낸 유발 하라리 교수의 사피엔스 마지막 챕터의 영향력이 크다. 인간의 진화를 인지혁명 - 농업혁명 - 과학혁명으로 이야기하고 마지막으로 신에 도전하는 인간의 유전공학으로 끝냈기 때문이다.
꿀벌을 소재로 한다니, 몇달 전 읽은 최재천 교수의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의 꿀벌편을 다시 꺼내 읽어본다. 꿀벌 넌 누구니?
꿀벌은 개미와 더불어 조직적으로 협동하고 질서를 유지하고 맡은 바 책임을 다한다고 한다. 꿀을 발견한 정찰벌이 군집으로 돌아와 춤을 추며 꿀의 위치를 알리는 언어가 있고 번식과 생존을 위해 자신을 과감하게 희생할 줄 안다. 생태계에서 꿀벌은 인간의 생존과 아주 밀접한 관계에 있다. 꽃가루받이가 필요한 농작물의 7~80%를 꿀벌이 담당하고 있는데, 꽃가루를 옮겨주지 않으면 농작물이 열매를 맺지 않게 되고 그렇게 되면 작물 생산은 물론이고, 인간의 생존 자체를 위협받게 된다고 한다. 무엇보다 인간의 꿀벌을 인간에 편의에 의해 온순한 존재로 변이시키고 이 과정에서 생존의 경쟁력(뭐.. 전투력이라고 하죠)을 상실한 채 인간세계에서 사라지는 현상과 모든 가축들이 그렇듯 인간에게 필요하면 변이시키고 필요없으면 멸종시키는 이런 현상 정도만 자각하고 책을 읽어도 좋겠다.
그래서 책은 꿀벌이 사라지면 4년 안에 인류가 멸종한다. 아인슈타인의 글로 시작한다.
2047년 꿀벌이 사라진 것 같다.
그래서 식물이 열매를 맺지 못하고 인간은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린다. 식량난으로 제3차 세계대전과 인류의 멸종 위기가 찾아온다. 디스토피아. 옥티비아 버틀러가 1993년 집필한 "씨앗을 찾는 사람들의 우화"의 디스토피아가 압축되어 있는 것 같다.
이런 미래를 바꾸기 위해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은 시공간을 넘나들며 고군분투한다. <꿀벌의 예언> 이 예언서를 찾기 위해 전생 무려 1천 년 전 예루살렘으로 거대한 모험의 여정을 시작한다.
주인공 르네는 어떻게 과거와 미래를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었을까? 작가는 최면을 통한다. 이 또한 작가의 상상력의 산물이다. 물리학자의 도움이나 타임머신을 생각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면 너무 미국적인 느낌일 것 같다. 최면은 현실적이지는 않지만 작가가 타협할 수 있는 좋은 여행수단이었을 것 같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다시 프랑스 소르본 대학으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누구는 너무 역사책 같다고 하지만 오히려 고대, 중세까지 역사의 과정을 십자군전쟁에 참가한 성기사단의 여정을 너무나 잘 기술하여 책을 읽는 동안 주인공들이 실제 그 시대에 살았던 시대의 모습이 머리속에서 상상되었습니다. 전 이점이 가장 좋았습니다.
그리고 하나 알게 된 사실. 소설에서 갈등의 구조에 또 다른 축이었던 독일 성기사단이 2차 대전 나치의 상징물 같은 표식이었다는 것.
대략 이런 느낌일까요?
2차 대전을 떠올리며 프랑스인 작가가 독일에 대한 감정이 소설에 녹아있는건 아닌지? 결말에도 이 나쁜 사람들은 또 등장하기도 합니다. 계속 주인공을 위험에 빠지게 하기도 하고.
지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이의 전쟁이 장기화되고 더해 이스라엘과 하마스간 중동 화약고 터지고 말았죠. 전쟁이 한참인데 전쟁보다 세계경제는 미국 금리에 더 민감하다고 하니 우리는 이제 전쟁에 둔감해 진 것 같습니다. 이 책에서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갈등구조를 다루고 있습니다. 책의 스펙트럼이 참 넓습니다.
스토리를 요약하는건 어짜피 하지 않으려 했고 해피앤딩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해핑앤딩의 실마리만 남겨두고 이야기는 끝납니다.
주인공 르네가 돌처럼 단단하게 굳은 오렌지색 밀랍 조각을 지켜냈고, 곧 유전공학의 도움을 받아 밀랍에 쌓인 백설공주 여왕 꿀벌을 살려내겠죠. 이후의 이야기는 따로 다루지 않습니다.
미래가 궁금하기는 하죠. 그런데 미래를 꼭 알아야 할까요? 좋은걸까요?
지금 이렇게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이며 파괴자이기도 한 인류가 지금처럼 살면 디스토피아가 올까요?
많은 사람들이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 걱정합니다.
그런데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하라리는 인류는 무지의 인식 이것이 인류의 동력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 무지의 인식이 유럽과 다른 세계를 구분 지은 결정적 요인으로 이야기했고.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많은 학자들이 경고하고 있고,
인류는 어떤 희생을 치를지 모르겠지만 무지의 인식을 통해 또 다른 방향으로 발전할 것으로
조심히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