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추억이 건네는 위로

추억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다

by 김성자예쁜

우리가 추억을 불러오는 이유는 아마도 아주 작은 기억 하나가 건네는 위로와 정화의 힘 때문일 것이다. 신영복 작가의 〈청구회 추억〉에는 “공유하고 싶은 이야기는 거창한 것이 아니라 작은 추억의 따뜻함에 관한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그 문장을 읽으며 나는 추억이란, 뜻밖의 밤길에서 만나 잠시 나란히 걸어주는 다정한 길동무와도 같다는 말에

밑줄을 그었다.


그러나 추억은 단순히 과거로 돌아가는 여행이 아니다. 같은 기억이라도 우리는 매번 다르게 만나며 살아간다. 우리의 삶은 수많은 추억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 모든 장면을 다시 꺼낼 수는 없다. 과거를 만나는 자리는 언제나 현재의 길목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마음과 시선이 과거의 의미를 다시 빚어내고, 그 힘만큼만 추억은 모습을 드러낸다.



더구나 추억은 종종 전혀 다른 얼굴로 돌아온다. 오랜만에 만난 옛 친구가 낯설게 느껴지듯, 우리는 그것이 추억의 귀환이라는 사실을 한참 뒤에야 깨닫기도 한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하루 역시 언젠가는 모두 명멸하는 기억의 미로 속으로 스며들 것이다.


그래서 나는 추억에 지나치게 매달리지 않으려 한다. 추억은 화석처럼 굳어 있는 과거가 아니라, 부단히 자라나는 살아 있는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언제나 새로운 모습으로, 새로운 만남으로 우리 앞에 다가온다.


문득 중학교 1학년 시절이 떠오른다. 볼펜 대신 철펜에 잉크를 찍어 글을 쓰던 때였다. 펜촉을 갈아 끼워 사용했고, 종이 위를 긁는 듯 사각사각 울리던 소리가 유난히 좋아 밤늦도록 글을 쓰기도 했다. 펜 끝이 고르지 않으면 종이를 긁어버리기도 했고, 잉크병 속 솜이 함께 딸려 나오던 작은 해프닝도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불편했을 법한 그 시간들이, 이상하게도 따뜻한 온기로 남아 있다.


얼마 전 책에서 잉크 이야기를 읽다가, 그 시절 내가 적어 내려가던 글들과 함께 그 풍경이 다시 떠올랐다. 그래서 오랜만에 만년필로 글을 써볼까 했지만, 편리함 속으로 사라져 버린 잉크와 펜촉은 이제 쉽게 구할 수 없었다. 결국 그것들은 다시 추억 속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나는 안다. 그 기억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통해 또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책을 읽으며 나는 다시 한번 깨닫는다. 읽은 모든 문장을 기억 속에 남길 수는 없다는 사실을. 그래서 오늘 마음에 남은 문장 하나를 적어두고, 그 문장을 통해 떠오른 나의 느낌을 기록하는 일. 그것이 오늘의 작은 할 일이라면, 그 일은 단순한 하루의 기록으로 끝나지 않는다.

훗날 그 노트를 다시 펼쳐볼 때, 그것은 이미 ‘기록’이 아니라 ‘추억’이 되어 있을 것이다.


시루에서 물은 빠져나가도 콩나물이 자라듯, 책의 문장들은 모두 머릿속에 남지 않더라도 삶 어딘가에서 조용히 자라고 있는 것 같다. 그렇기에 책을 읽고 그대로 덮어두는 것과, 한 줄이라도 기록으로 남기는 일의 차이는 한 발로 걷는 것과 두 발로 걷는 것만큼이나 크다.


그저 스쳐 보내는 독서보다, 짧은 기록 하나를 더하는 독서가 결국 나만의 시간을 만든다. 그렇게 쌓인 문장과 생각들이 언젠가 다시 나를 찾아와 다정한 길동무가 되어줄 것이라 믿는다. 오늘 내가 남긴 이 작은 흔적 역시, 언젠가 또 다른 나에게 조용한 위로가 되어 돌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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