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입장을 바꿔보라'라는 말을 하며 살아갈까
우리는 사물이나 역사를 객관적으로 본다고 믿는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어쩌면 우리는 언제나 ‘관계의 렌즈’를 통해 세상을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관계, 즉 구경하는 관계는 사실상 ‘관계없음’과 다르지 않다. 참된 인식은 언제나 관계 맺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오늘 아침, 한 문장 앞에서 한참 눈을 떼지 못했다.
“머리가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고,
마음 좋은 것이 손 좋은 것만 못하며,
손 좋은 것이 발 좋은 것만 못하다.
관찰보다 애정이 중요하고,
애정보다 실천적 연대가 중요하며,
실천적 연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입장의 동일함이다.
그것은 관계의 최고 형태이다.”
입장의 동일함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종종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라”는 말을 한다.
그 말은 단순히 이해하라는 뜻이 아니다.
상대의 자리에 서 보라는 요청이며, 진짜 관계 안으로 들어오라는 초대다.
사람은 관계없는 대상에게 자신을 정직하게 보여주지 않는다. 누군가를 잘 안다는 것은 정보를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서로 관계를 맺고 있다는 뜻이다.
김국환의 노래 가사처럼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앎은 언제나 관계 위에서만 가능하다.
좋은 관계는 나를 소모시키지 않는다
나는 ‘관계의 최고 형태는 입장의 동일함’이라는 문장을 다시 생각해 본다.
그리고 이런 질문이 따라온다.
과연 최고의 관계는 무엇일까.
결혼을 앞둔 한 여성이 친구에게 이런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왜 그 사람과 결혼하기로 결심했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이렇게 답했다.
“그 사람과 함께 살면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야.”
이 한 문장은 인간관계의 본질을 정확히 짚는다.
좋은 관계란 나를 소모시키는 관계가 아니라, 나를 성장시키는 관계다.
우리는 빵만으로 살 수 없다
우리는 빵 없이 살 수 없지만, 빵만으로도 살 수는 없다.
계급과 경제적 조건은 삶의 중요한 요소이지만 삶의 전부는 아니다.
사람은 단순한 경제적 존재가 아니다.
삶은 수많은 관계 속에서 의미를 얻고, 그 안에서 비로소 ‘영(靈)’이 된다.
그래서 결국 모든 인식의 출발점도, 모든 변화의 끝도 사람이다.
가정도, 사회도, 공동체도 관계에서 시작해 관계로 완성된다.
오늘 나는 어떤 사람으로 관계 맺고 있는가
오늘 아침, 나는 다시 관계를 생각한다.
나는 지금 어떤 입장에 서 있는가.
나는 누군가를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존재인가.
그리고 나는 누군가와의 관계 속에서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가.
관계는 선택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다.
그리고 그 관계가 깊어질수록 우리의 세계는 조금 더 따뜻해진다.
그래서 나는 오늘을 조금 더 신중한 마음으로 시작해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