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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선생님께,
신생아 매직에 대하여

미국일기_할머니 되는 나날

by 올리

어떻게 지내고 계실까요?


저는 요즘 서울 소식은 거의 접고 있어요.

어디 먼 곳, 아득한 곳에 툭 떨어져서 지내보고 싶다... 는 생각을 늘 하곤 했던 제가,

요즘 이곳 생활에 대하여 마음의 방향을 바꾸려고 노력하다 보니

'여기가 바로 그곳이다, 아득히 먼 곳' 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고는 서울에서의 삶은 저만치 밀어놓고 있습니다. 소식 전하기에 게으른 저의 변명이 될까요.


여긴 아주 별세계여요.

하루 종일 시원한 집안에서 지내다 보니 하루가 어떻게, 한 주가 언제 지나는지 모르겠어요.

아기가 태어난 이후 저조차 딸과 함께 집콕 생활 중입니다. 달력도 없고 그저 눈 뜨고 움직이기 시작하면 새 날이 시작돼요. 서울과 소통하면 낮이고 밤이고 뇌는 깨어 움직여야 했을 거예요. 처음 이곳에 와서는 여기 낮에 깨어있고 밤엔 서울 기준으로 깨어 있느라 아주 난리도 아니었지요. 아기 탄생으로 인하여 모든 생활이 뒤바뀌고, 자발적으로 서울과의 소통을 게을리하면서 비로서 평화를 찾고 있어요.


게다가 이곳에서의 낮 시간은 대부분 아주 서늘한 어둠 속이라 동굴 생활과 다름없습니다.

항온 항습의 시스템으로 평균 온도 74도(섭씨 23도쯤)로 맞춰 놓고, 창문은 블라인더로 햇빛을 관리합니다. 낮엔 빛이 조금만 들어오도록, 밤엔 빛이 나가지 않도록 단속하는 정도이니 낮에도 밤에도 적당히 어두우면서 쾌적~합니다. 낮동안 집 밖은 너무 더워서 밖으로 나갈 마음이 생기질 않는데, 동네를 나다니는 사람이 없는 이유를 이젠 알 것 같아요. 이런 환경에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일에 열중한다면 대단한 독서가가 되거나 소설집 하나 툭 내놓은 작가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딸 내외가 '9 to 5'로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보니, 그것이 이 집의 또 다른 특성이 되는 듯해요.

일단 아침 일어나는 시간이 제 각각이어요. 저는, 아침 식사 준비는 포기했어요. 딸이 출산을 앞두고 있을 때는 이래도 되나 싶었지요. 제 식으로 '세끼를 챙겨라, 작게라도 영양가 있는 것을 취해야..., 과일 한 조각이라도..' 그런 제안을 몇 번 했다가 딸과 큰 갈등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느낌적 느낌이 들어서 이제는 아예 아무말 않게 되었습니다. 하물며 아기가 생긴 뒤로는, 밤부터 새벽을 거쳐 아침에 이르기까지 딸과 사위가 신생아와 벌였을 지난한 시간들이 있었을 터이니 그들의 아침 루틴은 저들 스스로 찾아가도록 저는 절대 아무 의견도 내놓지 않고, 또 방해하지 않도록 주의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저의 아침은 마음이야 어떻든 몸은 대체로 한가합니다.

사실 아기가 태어나서 이 집에 왔을 때, 저희 세 사람은 곧바로 좀비가 되었었지요. 딸은 아기에게 모유 수유를 해주는데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 줄 다 잊고 있었어요. 산모에게서 젖도 잘 나오지 않았지만, 아기는 어찌나 먹성이 좋던지요. 어미젖을 하염없이 빨아대며 거의 한 시간마다 앙앙앙. 3일쯤 지났을 때인가요, 딸은 지쳐서 울고 아기는 배고프다고 울고. 아기의 앙앙앙과 딸의 젖물리기, 그리고 사위의 둥개둥개 해주기가 거의 쉼 없이 반복되어야 하니까, 중간중간 제가 거들기도 했지만 어른 셋이 좀비가 되는 것은 정말 삽시간의 일이었어요.


다행히, 딸 내외는 일주일쯤 지나니까 묘수를 찾아내더라고요. 엄마 젖을 직접 수유하는 방식의 한계와 문제점을 수축기 사용과 분유를 조금씩 섞어 먹이는 것으로 대처해 나갔지요. 수유 시간과 양을 기록하면서, 아기가 울 때 그 이유를 몰라 무조건 젖을 물리거나 기저귀를 확인하거나 둥개둥개 얼렁뚱땅 온갖 방법으로 쩔쩔 매던 것을 수유 기록을 보면서 적절한 대응책을 모색해 나가게 되었지요.


이런 나날 속에 저의 역할은 걱정했던 것보다는 힘들지 않게 지나고 있어요.

딸 내외가 집에 있을 때는 전적으로 그 둘이 아기를 담당해요. 어른 셋이 날밤을 새는 것 같던 상황도 한 열흘 정도 지나니까 저는 면제가 되더라고요. 새내기 엄마 아빠가 잘하고 있습니다. 저는 일단 밤엔 잘 자고요, 아기 울음소리로 방해를 받더라도 저들의 요청이 있지 않고는 꾹 참고 아침에나 눈을 뜹니다. 그렇게 깼어도 부엌이나 거실 쪽으로는 나가지 않고 조용히 저의 아침 루틴을 합니다. 화장실을 다녀오고, 조용히 세수하고 아침 단장까지 착착. 휴대폰으로 확인할 사항들 점검하고 밤새 도착한 카톡을 보기도 합니다. 물론 지인이나 서울의 가족에게 조차 적극적으로 연락을 않고 있으니 대부분은 그룹톡의 대화들이고 또 광고들이지요. 빨간 표시를 하나씩 지워 나가며 여유롭게 서울 소식을 '관람'하고 나면 책을 읽거나 글을 씁니다. 그러다 딸 내외의 움직임 즉 하루를 시작하는 낌새가 느껴지면 부엌으로 나가 저의 할 일 - 밤새 생긴 설거지나 기타 등등 - 을 하면서 같이 하루를 여는 식으로 삽니다. 무척 수동적이지요. 그래야 하는 이유가 있답니다.


딸은 다시 출강하기 시작했어요. 출산하고 20일 만이었지요.

안타까워요. 34년 전, 출산과 육아가 전혀 장려되지 않던 그 시절에도 저는 2개월의 쉼을 보장받았는데 말이지요. 그러나 갖가지 방법으로 출산이 장려되고 육아환경이 좋아지고 있는 한국에서도 고학력 전문직 여성은 출산 후 2주 쉬기도 어렵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어요. 우리 딸의 경우를 '고학력 전문직'이라서 그렇다고 생각해야 될까요? 실은 좀 슬픈 현실입니다. 외국인으로서 '권리' 보다는 '자리 지킴'에 더 열심을 보여야 하는 것일 테니까요. 그나마 딸은 이렇게 부랴부랴 출강하게 된 것을, 거의 한 달간 외출도 못하며 지내던 나날의 답답함을 푸는 기회로 삼고, 멀지 않은 시기에 본래 하던 일로 돌아가 열심을 내야 할 상황을 대비한 워밍업 정도로 기쁘게 받아들이는 것 같았어요. 그런 딸이 대견하기도 했고 또 짠하기도 한 그런 마음입니다.


미국의 어느 멋진 여성과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 체격과 미모를 자랑하는 제 딸 (ㅎㅎ 동의하시죠?)이지만, 사실 요 얼마 전,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었어요. 체온이 39.5도까지 올라서요. 출산 후 2주가 체 안된 시점이었는데 출산 후 이튿날 씩씩하게 퇴원했던 그 병원을, 열흘 만에 다시 들어가서는 3박 4일이나 있다가 나왔네요. 원인이 명확하지 않은 무슨 '감염' 때문이라는데, 어쩌면 스트레스 때문이었을 거라는 저의 짐작에 제가 너무너무 미안한 마음이 있습니다. 그즈음 사위와 저 사이에 작은 오해가 있어 저도 울고, 딸도 울고, 사위는 상한 감정을 말하지 않고 지내느라 저하고는 얼굴도 마주치지 않고 씩씩대던 며칠이 있던 뒤였거든요. 이 일은 아기가 태어난 이후 여러 변화 속에서 서로 너무 피곤하여 인내심이 바닥난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화해를 하였는데, 그 이튿날 딸이 고열로 힘들어하게 되었으니, 어쨌든 산후조리 중에 있던 딸이 남편과 친정엄마 사이에서 마음 고생하느라 몸에 탈이 난 때문이겠지요.


저는 그 때 마음이 많이 상하였었는데 그 일은 나중에 찬찬히 말씀드릴게요.

다만 그 때 저는 딸과 사위, 모두에게 너무나 서운했어요. 딸과 아무리 이야기를 나누어도 제자리, 딸이 너무나 엄마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보따리를 싸고픈 마음으로 울기도 했었어요. 그러나 결국 사위라는 새로운 가족과는 이런 경우도 생길 수 있음을 인정하기로 했답니다. 또 이제 삶의 주인공은 딸 세대라는 것도 조금 느꼈고요. 또한 사위가 너무너무 낯설게 느껴진 경험이기도 한데, 이게 단순히 '사위는 백년손님'이라는 말로는 설명이 안 되는 것이었어요. 굳이 제목을 붙인다면 '외국인도 한국인도 아닌 자와 친밀하게 지내다 생긴 일' 정도? 아무튼 지금은 좀 더 생각이 필요해요. 이 일이 왜 생겼을까, 나는 왜 그 상황을 그렇게 서럽게 받아들였을까. 나아가 딸은 (사실 딸이 너무 남 같았어요. 그래서 나도 딸도 좁혀지지 않는 생각들 때문에 울었지만) 어떤 마음이고, 나는 앞으로 진짜 어른이 된 딸과의 관계를 어떻게 만들어가며 살아야 하나.. 등에 대해서 말이죠. 그 사건 이후, 우리 시대가 그러지 않았고, 지금 시대라고 해도 이들 만큼은 아닐 지극히 '부부 중심'의 생활공간에서 저는 더욱 조심하며 지내고 있어요.


당신이 왜 그러고 지내냐... 고 다그치지는 마셔요.

저의 모든 고민과 생각을 다 잘 헤아려 주실 선생님이시지만, 이 부분은 저 자신도 아직 잘 모르겠거든요.


아기는..

이걸 어떻게 설명드려야 할까요? 2.98kg짜리 작은 존재가 포대기에 싸인 체 제 두 팔에 들리어 안긴 기분, 그 아기의 얼굴을 바라보는 마음을 어떻게 설명드려야 해요? 그렇게 작고 조심스러운 존재를 가까이 할 수 있는 일은 34년 만의 일이었죠. 아기를 안았을 때 어찌나 감격스럽던지 제가 시를 다 지었다니까요.


제 손주니까, 내 새끼니까.. 그런 감정은 아니고요, 사실 최씨네 아기.. 그런 마음이 더 커서 내 손주.. 그런 마음은 멈칫해 있습니다. ㅎㅎㅎ 어린 생명에 대한 감동, 감탄의 마음입니다. 매일매일 보는데, 한 번에 40~50cc 정도씩 젖을 먹을 뿐인 그 생명체가, 고것만으로 제 응가도 만들고 쉬도 만들어 내면서 동시에 자기의 체중을 폭폭 늘려가는 그 놀라운 생산성이라니... 기가 막힙니다. 처음엔 개구리 앞다리 같았고, 윷가락 같던 팔다리가 이젠 미국 오이(아주 짧고 약간 통통함)처럼 채워지는 모습이 신기방기하답니다. 아기 얼굴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것도 놀라운데, 슬쩍 만지거나 가슴에 폭 안기라도 하면 이게 무슨 일일까요?


솨아악...

제 온몸에 무슨 호르몬이 퍼지는 느낌입니다. 마약 같은 물질이 퍼지는 것 같아요.

아, 그... 마약 중독이 아니라 '행복해지는 아가 중독'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네요.

시간 가는 줄, 침 흐르는 줄, 목 아픈 줄 모르고 저의 왼쪽 심장 앞에 놓여있는 그 신생아 얼굴을 쳐다보는 일은, 사이렌이 울려야 그칠 지경이라니까요.

그런 아기 곁에서 사는데도 제가 정신줄 놓지 않고 있는 비밀 하나 알려드릴까요?


아기를 안고 있던 딸이 아기 좀 봐 달라며 저에게 아기를 건내줄 때가 있습니다. 그때, 제가 두 팔을 벌려 아기를 받아올 때 얼마나 기쁜 지 상상이 되셔요? 그 따뜻하고 폭신하고 깨질 듯이 위태로운 존재를 두 팔로 안을 때 말이죠. 그렇게 받아 들고 나면 제 눈 10cm 아래에 동그란 아기 얼굴이 저를 향하고 있지요. 기가 딱 막힙니다. 쳐다보다 그 얼굴 속으로 제 얼굴이 들어갈 지경!


그런 아기를 안고 설렁설렁 걷기도 하고, 잰걸음으로 이 방 저 방 다니기도 하고, 음악 소리에 맞춰 왈츠를 추듯 빙글 덩실 움직거리기도, 또 어린이 동요에 맞추어 강종거리기도 하면서 왔다 갔다 이리저리 노니는데 시간이 얼마나 지나도 하나도, 정말 하나도 힘이 들지 않아요. 아주 할 만합니다. 더욱이 너무너무 행복해요.

그런데!!!


얼마나 지났을까요? 딸이 다가와 아기를 받아가겠다고 내 앞에서 팔을 내밀면, 저는 저의 두 팔을 뻗어 그 마술 같은 존재를 딸에게 건넵니다. 그런데 그렇게 두 팔을 뻗어 내줄 때 말이죠, 아기를 받을 때처럼 똑같이 제 두 팔을 뻗는 일인데, 아기가 담겨 올 때보다 아기를 건네어줄 때가 조금 더 좋다는 겁니다. 제게로 오는 아기를 향해 내뻗는 두 팔도 기쁘지만, 내게서 떠나보내고자 제 두 팔을 내뻗을 때는 더욱 좋은...ㅎㅎㅎ 그런 기분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서울로 돌아갑니다, 돌아가기로 한 그 날짜에.

신생아 매직이 황홀하기는 하지만 거기서 벗어나면 또 다른 좋은 시간이 있다는 것을 아직은 잊지 않고 있으니까요.


이제 절반 남았습니다, 외할머니로서 출장 근무하는 기간 말입니다.

우 하 하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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