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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반 홍교사 Sep 02. 2024

아이와의 약속

어젯밤의 일이다. 

하루일을 다 마무리하고 마지막으로 집에 있는 개구리 보드게임이 하고 싶다는 첫째 아이. 

둘째가 아파서 밤새 자다 깨다 해야 할 거 같은데,, 일찍 잠자리에 들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밤 9시반 넘어서 꼭 이 보드게임이 하고 싶다고 했다.


'아, 어떻게 하지?'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게임은 아니니, 한번 정도는 하고 자도 되지만, 어제는 둘째가 열이 오르내리니 영 마음에 여유가 없었다.


"이거 이대로 셋팅 해놓고 오늘은 자고 내일 눈뜨자마자 엄마랑 하자!"

그렇게 약속을 철썩같이 해두고 잠자리에 들었다.



밤새 둘째는 살짝 열이 있어서 내가 중간에 깨서 열 체크도 하고, 불편한 곳 없는지 챙겨보고, 해열제도 먹이느라 나도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더니 오늘 아침 일어나는 게 정말 고역이었다.

나는 잠을 잘 자야 다음 날 하루 일과를 그나마 버텨내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전날 밤에 조금만 잠을 설쳐도 그 다음날은 아주 비몽사몽이고, 몸도 좋지 않다. 


돌이켜보면, 둘째 아기 때 낮과 밤이 바뀌어서 밤에 깨어 있고, 깨어 있는 동안 울고 보채는 바람에 정말 몸과 마음이 너무 피폐했었는데. '나 잠만 좀 자자'고 울부짖었던 옛 기억이 오랜만에 소환되는 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아이들 밥 챙겨야 하고, 이날따라 이번주 있을 교회 바자회 준비로 아침부터 안하던 카톡을 보내고 하느라 시간이 흘러갔다.


엄마를 재촉할 만도 한데, 일찌감치 일어난 첫째는 엄마를 기다린다. 

"엄마, 이거 하자!"

"어, 잠깐만~" 하길 몇 번. 

첫째는 보채지도 않고 다른 일을 하면서 기다리다가 보니, 시간이 벌써 8시를 넘어간다.


퍼득 정신이 들어 첫째에게 "빨리 등교 준비하자!" 하고 보니, 개구리 보드게임을 할 시간이 없이 바로 나가야 했다.

그제서야 첫째가 볼멘소리를 한다.

"엄마, 어제 나랑 약속해 놓고는..."


그냥 미안하다고 할걸. 하지만 나도 너무 힘들었는걸. 자연스럽게 핑계 섞인 말이 나온다.

"엄마 탓하는 거야? 엄마도 어제 밤새 동생 간호하느라 제대로 잠도 못잤고, 너희 챙겼고, 그리고 엄마도 급하게 할 일이 있었어."


그게 뭐.. 아이한테 구구절절 핑계를 댔다. 그냥 약속 못 지켜서 미안하다고 할 걸 말이다.

학교 다녀와서 꼭 하자는 말을 하고 속상한 아이를 보냈는데, 내 마음도 좋지 않다.


'약속 못 지킨 엄마'


미안했다. 

그리고 힘들었다.

둘째가 열이 나서 유치원을 못가고 집에 있어서 힘든 건지, 첫째 때문에 마음이 힘든 건지, 아니면 아무것도 못하고 내 개인 일상이 올 스톱인 지금 이 상황이 힘든 건지 모르겠다.


엄마를 닮아 엄마의 사정을 봐주는 우리 첫째가 안쓰러운 건지, 나 먼저 생각하지 않고 식구들, 다른 사람들 먼저 배려하고 생각하느라 내 몸을 자꾸 돌보지 못하는 내가 안쓰러운 건지 모르겠다.




아이들과의 약속은 되도록 지키려고 노력한다. 물론 어떤 약속이든지 지켜야 하는 거지만, 특히 아이들에게 약속이란 규칙과도 같아서 한번 어기면 또 그래도 되는 줄 알거나 혹은 또 어길 거라 생각해서 부모의 말을 잘 듣지 않는 부모 권위의 추락과도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신뢰로운 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되도록 약속 한 것은 지키려고 하는데, 사소한(?) 약속에서 지키지 못한 것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자니 마음이 좀 불편하다. 그리고 핑계가 생긴다. 

'엄마는 할 일이 많잖아.', '엄마 몸이 한 개 잖아.', '엄마에게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어.'


그래도 지키는 거다. 아이와의 약속은 아이에게는 평생 흔적으로 남을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더 미안하다. 앞으로는 어떻게 아이와 의견 조율을 할까 고민하던 차에, 첫째 아이가 하교하고 집에 돌아왔다.


"첫째야~ 엄마가 아침에 너랑 한 약속을 못 지켜서 ..엄마가 너무 미안해서 이걸 이렇게 펴 두고 ....지금이라도 하려고.....(주저리주저리)"


"엄마, 나 이거 봐도 되지?"

딴 얘기하는 첫째. 소심한 엄마는 하루 종일 생각했더니만, 다 까먹고는 다른 걸 하겠다는 아이.

흠흠... "그래~"


'나만 진지했던 거야? 그런 거야...?'




고맙다. 

잊어 주기도 해서. 

그냥 우리 엄마 그래도 또한번 믿어주지 뭐. 

그렇게 생각해 주고, 이해해 줘서.




"그래도 개구리 보드게임 하고 싶으면 언제든 말해. 엄마가 약속했던 거니까, 이번에는 하던 일 다 멈추고 바로 달려와서 같이 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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