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등굣길.
첫째는 나가기까지 2분 정도 남을 때에야 비로소 옷을 입는다. 그전에 입고 있으면 옷매무새라도 정돈해 주고 싶은데, 후다닥 가방 메고 튀어 나가니 매번 잘 입었나, 신발 잘 신었나 마음이 쓰인다. 창문으로 내려가는 아이를 내려다보니 잠깐 서더니만 머리를 한번 턴다. '새 똥이 떨어졌나', '친구한테 뭐 불편한 말을 들었나' 그냥 나 혼자 걱정이 된다.
그런데, 계속 걱정할 틈도 없다. 잠깐 멍 때릴 시간도 안 주고 우리 집 둘째는 계속 엄마를 부른다.
"엄마~ 엄마!"
첫째와 다르게 혼자 빠르게 옷을 입고 준비한 둘째는 또 빨리 나가자고 재촉한다.
"너무 일찍 가면 위험할 수도 있어. 아직 시간 많아. 천천히 가자." 그렇게 말해도 계속 나가잔다.
등 떠밀려 밖으로 나왔는데, 또 뛰란다.
정말 정신이 없다. '엄마에게 조금만 쉴 틈을 주면 안 되겠니?'
자기만의 시간과 생각이 확실한 초등학교 1학년 둘째로 인해 종종 나는 진이 쏙 빠진다.
그렇다고 강하기만 하지 않다. 힘들고 속상해도 그걸 잘 티 내지 않는다. 아니, 왜 기분이 안 좋은지 잘 모르는 것 같다. 그래서 그걸 그냥 화로, 떼로 표현하는 것 같다.
오늘 이른 아침에 둘째가 자다가 흐느끼는 소리가 났다. 슬픈 꿈을 꾼 모양이다. 답답해서 잘 안 그러는데 이불까지 뒤집어쓰고 있다. 그래서 이불을 살짝 내려 주려고 하니, 휙 다시 이불을 끌어 얼굴을 가리고는 발을 찬다. 저리 가라는 거다. '왜 나한테 성질을 부리나' 싶은데, 우리 둘째는 가끔 꿈과 현실을 헷갈릴 때가 있다. 꿈속의 일이 진짜 같아서 꿈속에서 엄마한테 혼났으면 일어나서 엄마랑 말을 안 한다.
아마도 꿈속에서 내가 둘째에게 못되게 굴었나 보다. 참 난감하지만, 그냥 둔다. 말하고 싶을 때, 마음이 풀렸을 때 자신이 왜 그랬는지 알려줄 둘째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어른이 되어서도 내 마음이 왜 그런지 잘 알지 못한다.
평생 불편했으면서도 내가 익숙한 대로 시간을 사용하고 생활을 해 나간다. 계속 알아가는 중이고, 수정해 가는 중이다.
똑같은 10분이 남아도 첫째는 10분'이나'고, 둘째는 10분 '밖에'라고 말한다.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은 아니다. 다만, 두 아이를 다르게 보고 각자에게 알맞은 방법으로 격려해 주어야 함을 느낀다.
내가 첫째를 느리다고 말하지 않는 이유도, 둘째에게 짜증이 많다고 말하지 않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부정적으로 말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첫째는 여유가 있는 거고, 둘째는 자신의 생각이 확고한 것이다. 둘을 비교할 필요도 없다. 다만, 표현을 적절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첫째에게는 정해진 시간 안에서 자신이 자신의 때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둘째는 상대방의 상황에 따라서 자기의 의견이 항상 수렴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되, 어떤 순간에서도 둘째와 내가 합의해서 정한 약속은 엄마도 어기지 않으려고 노력한다는 것을 알려주려고 한다.
우리 아이들 오늘 하루도 무탈하게 잘 지낸 것만으로도 대견하다.
그거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