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잘할 필요는 없다.
그럴 필요도 없지만, 그럴 수도 없다.
사람은 누구나 그리 힘들이지 않고 잘하는 것이 있으면, 아무리 노력해도 내 옆에 있는 다른 누군가보다 못하는 것이 있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내 옆에 있는 아이들과 비교하고 자란다. 누가 뭐라고 안 해도 하루의 반나절을 학교라는 곳에 함께 있는 이상 비교를 안 할 수가 없다.
'나는 다른 아이들보다 잘하는 게 뭐가 있었지?'
생각해 보니, 어딜 가든 나보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있었던 것 같다.ㅎㅎ
대신 나는 '듣기'를 제일 잘했던 거 같다. 주의 깊게 듣고, 아이들의 마음을 잘 살피었던 것 같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어릴 때는 상대방의 마음을 돌보느라 나를 그만큼 돌보고 챙기지 못했던 것이 가장 후회가 된다. 그래서 어른이 된 지금,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그걸 얘기해 준다.
'내가 나를 먼저 돌보고, 내가 나를 제일 아껴주어야 한다는 것' 말이다.
아이들을 조력하는 엄마의 역할은 내가 지금 맡은 가장 주된 업무이다.
이 또한 내가 할 수 있는 것, 할 만한 것, 나도 즐겁게 할 수 있는 것들로 조력하면 된다. 즉, 내 깜냥 것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반장이나 부반장을 하라고 강권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람은 자기에게 맞는 옷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자기에게 맞는 옷'이라는 것은 나의 한계를 단정 지어버리라는 의미는 아니다. 내가 즐겁게, 기꺼이 잘할 수 있는 일들로 시작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걸 하면 된다. 그걸 하면서 조금씩 넓혀 나가면 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 첫째와 둘째는 자신의 일들을 참 성실히 해낸다. 아직은 어려서 완수해야 할 과제가 그리 많지 않은 까닭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알고, 그걸 해내는 건 자신의 일이라는 걸 아는 것 같다.
그게 참 감사하다. 내가 할 일을, 내가 주체적으로, 하는 것으로 알고 힘들어도 끝까지 할 수 있는 힘은 눈에 보이지 않는 능력을 키우는 데 참 중요하기 때문이다.
부모는 우리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 더 집중적으로 살펴보고 도와주면 될 것이다. 나도 열심히 살펴보고 있다. 불안의 눈이 아니라, 믿음의 눈으로. 답답한 간섭이 아니라, 넓은 울타리 안의 제한된 허용으로 말이다.
첫째가 4학년이 되니, 주변에는 선행을 시작하는 것 같다. 수학, 영어 학원은 기본으로 다니고, 옵션으로 예체능에, 집에서 하는 문제집도 풀어야 하니 하루가 얼마나 바쁠지 나처럼 나무늘보들은 그런 아이들을 보는 게 참 버겁겠다 싶기도 하다(하지만, 이건 지극히 주관적인, '느린' 나의 관점이다). 나는 여유와 빈 공간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나무늘보 엄마'이기 때문이다.
정말 중요한 것(숙제나 해야 할 과제)을 하고 나면, 그 외 시간은 빈 공간으로 둔다. 그리고 아이들이 스스로 채워나가도록 두는 편이다. 하는 일들이 어른의 눈에 생산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조금 더 교육적이고, 도움이 되는 것을 하면 좋겠는 어른의 눈에는 성에 차지 않는 시간 활용을 하는 우리 아이들이다.
그래도 둔다. 그때 매의 눈을 하지 않는다.
그냥 나의 일을 한다. 주로 나는 책을 읽고 글을 쓴다. 대단한 걸 하지는 않지만 나의 시간을 보낸다. 이 시간이 나를 살린다. 그렇게 책을 읽고 글로 쏟아놓는 이야기들이 내가 또 남은 하루의 시간 힘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나는 얼마나 마음이 유약한 지 하루에도 몇 번씩 넘어지고 무너진다.
하지만, 나는 엄마다.
내가 대충 살면 우리 아이들도 대충 살 거라고 생각하면 정신이 번쩍 난다. 그렇다고 뭐 대단한 걸 하지는 않지만,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 내가 즐겁게 기꺼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한다. 그러면 우리 아이들도 각자가 할 일들을 찾아 한다. 그렇게 멀리 가지 않고 넓은 울타리 안에서 자신이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일들을 한다.
하고 싶은 게 없으면 그냥 집 안을 배회한다. 그것도 그냥 둔다.
"엄마, 나 뭐 해?" 하고 물어보더라도(거의 우리 집은 둘째가 그런 말을 많이 한다.) 정해주지 않는다. '네가 하고 싶은 거 찾아보라고' 한다. 그렇게 또 생산적이지 않은 시답잖은 무언갈 하더라도 그냥 둔다. 그렇게 찾아갈 것이다. 아이가 진정으로 원하고 하고 싶은 것을 말이다.
저녁 준비하러 가야겠다.
'오늘 저녁은 또 뭐 먹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