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에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내 아이를 보듬을 수 있다. 어제밤에 우리 첫째는 나에게 이렇게 물어봤다.
"엄마는 내가 나쁜 짓을 저질렀다고 하면 어떻게 할거야?"
"잘못은 알려줘야하고 다시는 하지 않아야겠지만, 엄마는 무슨 일이 있어도 너희 편에서 있을 거야."
"응. 난 나쁜 일 안할거니까."
아마도 멋지고 훌륭한 아들이 아니어도 나를 사랑해줄 건지 묻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그 어떤 순간에도 너희 편이 되어 줄 것이고, 그저 어떤 모양이어도 사랑할 거라고 말해주었더니, 내심 안심하면서, 자신은 나쁜 행동 안할거니까 괜찮단다.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허용을 많이 하는 편이다.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도록 하되, 자기가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지켜보는 편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엄마이기 때문에 해줄 수 있는 넓은 울타리이다.
오늘 유치원은 바빴다. 내일 있을 부모님 참관수업으로 아이들은 그림 그리기를 했고, 우유도 마시고 한글쓰기도 하고 책도 읽었다. 자유놀이도 했고 초등학교에서 공연도 보았다.
오늘 나와 주로 놀이를 하는 발달장애를 가진 건강이(가명)는 특수선생님이 옆에서 봐주셔서 나는 다른 친구들을 돌보았다.
건강이가 대집단 이야기 나누기를 할때 내 앞에 앉았는데 나에게 기대려고 했다. 내가 "똑바로 앉아야해." 라고 말하고 일으켜 주려는데 특수 선생님이 오셔서 건강이에게 그렇게 기대는 게 아님을, 다른 친구들도 다 자기 자리에 똑바로 앉아 있음을 눈을 보고 반복해서 얘기해주셨다.
문득 나는 '그래, 건강이가 지금 당장 나와 있는 시간에 즐거운 것도 참 유익한 경험이지만, 어쩌면 평생 다른 친구들과 어울려 살아내야할 아이이기에, 규칙과 규율, 엄격함을 배우는 것이 더 중요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아이들의 삶을 참으로 응원하고 싶어졌다. '어디서나 내 편'이 있다는 건 세상을 살아갈 때 큰 힘이 될 것이고 부모가 없을 때도 그 힘을 가슴에 품고 또 담대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나는 건강이에게 기대고 싶은, 자신의 얘기를 들어줄 선생님으로 건강이를 도울 것이고, 또 사회 속에서 조금더 잘 어울려 살아가도록 또다른 선생님들이 건강이를 도와줄 것이다. 그렇게 사회 안에서 잘 성장해가는 건강이가 되길 간절히 바라본다.
그렇게 생각하니 우리 아이들의 선생님들께도 참 감사하다. 선생님들이 우리 아이들의 발달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해주고 계시니 말이다. 나는 부모로서, 엄마로서 그저 우리 아이들에게 사랑밥을 든든히 먹여서 학교로, 사회로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오늘 학교에서 본 공연이 '햇님달님' 이었다. 호랑이가 엄마를 잡아먹는 장면이 너무 리얼했다. 남겨진 아이들이 있기에 필사적으로 도망가지만 결국 떡을 다 뺏기고 호랑이에게 죽임을 당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는데 눈물이 났고, 남겨진 아이들이 엄마를 찾는 모습이 너무 마음 아팠다.
엄마가 되고 나서, 엄마 얘기, 아이 얘기만 나오면 울컥하니 마음에 무언가 묵직한 슬픔이 올라온다. 그 사랑이 느껴져서, 그 마음을 알 것만 같아서 자꾸 주책없이 눈물이 난다.
그래서 언제든 우리 아이들에게 꾹꾹 눌러담아 차고 넘치게 사랑밥을 주려고 한다. 어디가서든 엄마의 사랑 느껴지도록, 힘들고 슬프고 서러운 일이 있어도 그 사랑밥으로 이겨내고 더 멋지게 살아가도록 말이다.
엄마가 연결해주는 친구, 엄마가 대신 힘든 부분을 다른 사람에게 말해주는 그런 사회성 말고, 아이가 스스로 이겨나가서 세상 가운데 오롯이 혼자 설 수 있는 그런 사회성이 잘 자라도록. 사회성 없는 엄마이지만, 최선을 다해 오늘도 사랑밥을 먹여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