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의 자기 주도성

by 행복반 홍교사

어린 시절부터 모든 삶의 생사를 주관하던 부모라는 사람은 내 아이의 모든 것을 책임져야만 했다. 아기는 하나부터 열까지 혼자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말이다. 그러다가 조금씩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늘어난다. 그럴 때 부모가 해주면 아이가 자라지 못한다. 서서히 부모의 역할도 달라져야 한다는 말이다.


아이의 삶에 대한 선택을 대행하던 나의 역할을 아이에게 돌려주고, 나는 다시 아이 삶의 조력자로서, 지지자로서만 서야한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하는 수신호가 있다.

첫째 1학년, 등,하교를 함께 하던 시절부터 시작된 우리만의 전기 부호 놀이인데, 아이와 손을 잡고 걷다가 내가 아이의 손을 한번 꾸욱 잡으면 아이가 두번 내지 세번 꾹꾹 누르는 거다.


한번 누르면, '사랑해'

두번 누르면, '나도'

세번 누르면, '그만해'


첫째에게 손에 힘을 주어 꾸욱 누르면서 '사랑해'라고 하면, 첫째는 내 손에 힘을 두번 꾸욱 쥐며 '나도'라고 답해주었다. 이런 놀이는 딱 이맘 때만 할 수 있는 엄마의 특권이다. 왜냐하면, 아이의 손을 잡고 걷는 시간이 생각보다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클수록 엄마 손을 잡기보다는, 혼자 걷거나 친구들과 함께 하는 시간들이 늘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둘째는 이 전기 부호 놀이에서 조금 다른 양상을 보였다. 초등학교 1학년인 둘째의 손을 잡고 손을 꾸욱 눌렀는데, 어라, 우리 둘째는 냅다 '꾹꾹꾹' 세 번을 누른다. 그만하라는 거다.

그래도 여전히 꿋꿋히 나는 우리 둘째의 손을 잡고 '사랑해'라고 말한다.



사춘기를 앞둔 아이와 친구. 아이와 사회. 아이와 세상 사이에서 나는 더 이상 내 존재감을 발산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저 아이의 생각을 적극 지지하고 언제든 도와줄 수있는 긍정적 지원군으로 아이 옆을 지켜주어야 할 것이다.


너의 삶을 나의 틀에 맞추지 말자. 나는 나, 너희는 너희니까.

나는 그저 존재만으로도 너희를 사랑하는 엄마로 너희의 삶에 그 단한사람으로 그리 남았으면 해.


정혜신 작가님의 '당신이 옳다'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https://search.shopping.naver.com/book/catalog/32438200779?cat_id=50005778&frm=PBOKPRO&query=%EB%8B%B9%EC%8B%A0%EC%9D%B4+%EC%98%B3%EB%8B%A4&NaPm=ct%3Dmjcglm6w%7Cci%3D4420835f54defd985dce501c6ae6d9077f127623%7Ctr%3Dboknx%7Csn%3D95694%7Chk%3D2ea789806f6d741e5903e47a12bdf70c37ad103d



어떤 기간 동안, 어떤 특정 맥락과 상황 속에서는 내가 참고 견딜 수도 있지만, 나는 항상 그래야 하는 존재, 그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 '너도 있지만 나도 있다'는 자기에 대한 감각이 살아 있어야 공감자가 될 수 있다.


'너도 있지만, 나도 있다' 이 문장이 참 마음에 남는다.

오늘도 너희의 삶을, 나의 삶을 주도적으로 잘 살아가 보자.

매거진의 이전글중심이 단단한 육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