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이 빠른 사람과 느린 사람의 차이
어릴 적 여름방학이면 가족끼리 시골 할머니 댁(엄밀히 말하면 할머니가 계신 큰아버지댁)으로 놀러 갔었다. 사실 매년 여름, 겨울방학이면 가는 여정이어서 조금은 싫기도 했다. 일단 거리가 너무나 멀었다.
우리 가족끼리만의 근사한 휴가를 보냈으면 더 기억에 남았을까 싶지만, 그 당시엔 시골 친척집에 가는 일정 외에 선택지가 없었다.
우리는 그렇다 치고 엄마는 시댁에 가는 것이니 편하게 쉬지 못하셨을 텐데, 지금 생각하면 누구에게 좋은 여행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각 며느리들이 주방에서 일사불란하게 각자의 역할대로 주방일을 하셨었던 것 같은데, 엄마는 가끔 그런 말씀을 하셨었다.
"일을 잘하는 며느리들은 자신의 포지션을 잘 알고 잘 스며들어서 자기 일을 찾아 하는데, 엄마는 둔전둔전(우리 엄마 표현으로 '어리바리' 약간 이런 의미인 것 같다)하느라, 한참 할 일 찾다가 설거지 하고 그랬어."라고 말이다.
그 말이 무슨 말인지 그때까지는 제대로 일을 해 보지 않은,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란 나는 알지 못했다. 그렇게 어른이 되고, 결혼을 하고 여러 모임들 가운데 내가 일을 해야 하는 순간에야 알았다.
'아, 나는 참 빠릿빠릿하지 않구나..'
센스가 없는 것인지, 행동이 느린 것인지, 경험이 부족한 것인지 무슨 일을 할 때 뭐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릿속이 '멍'해지는 이 사태를 어쩌면 좋을까.
해야 할 일을 알고도 모른 척하지는 않는다. 그런 면에서 난 '소'과지, '여우'과는 아니다. 그런데 진짜 뭘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 참 난감하다.
손이 빠른 사람들의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공통점이 있더라.
1. 상황 판단력이 빠르다.
무엇을 지금 먼저 해야 하고, 그것을 하기 위해서는 어떤 것을 준비하고 실행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이 금방 난다.
2. 성격이 급한 편이다.
모든 손이 빠른 사람들이 그렇지 않겠지만, 일처리가 빠른 사람들은 대부분 속전속결의 행동 패턴을 보인다.
3. 감정에 치우치지 않는다.
해야 할 일을 보기 때문에, 사람과 상황을 보며 흔들리지 않는다.
나는 상황 판단력이 느린 편이다.
무엇이 날아와도 '어? 어? 어?' 하다가 2, 3초 후에 손이 나가는 편이라, 항상 타이밍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성격도 느린 편인데, 상황을 천천히 파악하고 그것에 대한 내 마음이 움직이는 것을 따르는 편이다.
이 정도 되면 손이 빠른 사람은 나랑 같이 있다가 마음이 급해진다. 말은 안 하지만 속이 터질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어쩌랴.. 이게 나다.
이쯤에서 우리 신랑의 얘기를 들어 봐야 한다.
신랑은 나랑 반대인 손이 빠른 사람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성격이 급하다 보니 아이들이 느리게 반응하는 것도 잘 참아 주지 못하는 편이다. 아이들은 어리니까 그렇다고 치고, 어른인 내가 느리게 반응하면 그건 귀책사유가 된다. 불만을 토로하는 이유가 된다.
나는 에너지를 모으는 사람이다.
나무늘보처럼 천천히 움직이지만 생각을 깊이 하고, 사람의 마음을 더 깊이 생각한다.
나도 사람이기에 모든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챙겨주지는 못하지만, 내 마음이 더욱 가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마음 나누기를 하는 편이다.
더욱 정성껏 대하고 더 많이 사랑을 전한다.
그러다 보니 또 에너지를 충전해야 하고 그럼 다시 동면(?)에 들어간다.
나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살이 찔 틈이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말이다. 그게 문제란 말이다.
다 잘할 수도 없고, 다 잘하려고 하지도 말자.
이제는 내 몸이 따라 주지 않으며, 내가 살지 못하면 우리 아이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조금은 향기 나고 매력적인 꽃이 되고 싶었다. 누가 봐도 눈에 띄는 그런 멋진 사람이 말이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그저 내가 할 만큼의 일들을 나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묵묵히 해내는 것.
그것은 할 수 있겠다.
내가 먼저다. 내 마음이 먼저다.
그러고 나서 주의를 돌아보면 보인다. 내가 할 일이, 그리고 내가 잘하는 것들이.
그때 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사람의 인정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내가 바로 서는 것', '내 중심을 바로 잡는 것'이라는 걸 잊지 않으려고 하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