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편화된 성찰들

10대의 사유

by 이상우

(1)몇 십년의 인생을 살아오면서 과거의 나에게 글을 써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닐까 싶다. 이 글은 나름의 중요성이 있다. 기억으로서, 또한 무의식으로서의 과거의 파편에게 안부를 묻는, 그러한 흥미성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사실 과거는 없음으로서의 '무‘다. 과거는 그저 ‘미리있었던' 현재에 붙인 가면일 뿐이며 나의 현재는 - '어떠한’ 현재든 - 끊임없이 흐를뿐이다. 하지만 한편으론 그 과거들의 특정 부분이 기억에 의해 보관되어 지금 나로 하여금 이 글을 쓰게 만드는 계기 중 하나가 된다. 만약 과거의 내가 이 글을 본다면 무슨 생각을 할까? 난 동정의 마음으로 나의 과거를 미래의 더 성숙해진 관점으로 분석하고 파악해 그에게 나름의 의미를 제공하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게 아니다. 난 그저 '과거의 나'라는 개념을 통해 다양한, 그럼에도 질서이탈적인 글쓰기를 할 뿐이다. 달리 말하자면 과거의 나에 다양한 사유를 연결해 정체불명의 무언가를 만들어낼 뿐이다. 나에겐 이러한 글쓰기가 지금으로선 편하고 흥미가 끌린다. 과거의 나란 한낱 허구에 지나지 않으며 설령 존재한다 해도 그것은 지금의 나와 그 근원에선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니까 나 자신이 글을 쓴다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난 과거, 현재, 미래의 나에게 무언가를 보내는 것이다.

(2)이 글은 새벽에 쓰고 있다. 가끔 이런 날이 있다. 새벽에 글을 쓰고 싶을 때가. 이 글 또한 시간이 지나면 그 빛이 바랠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은 쓸 수밖에 없다. 나에겐 선택지가 없다.

이 글이 정녕 어떤 의미를 담고 있진 않을 것이다. 새벽에 일어나 몽롱한 상태로 쓰는 글이니 말이다.


삶은 언제나 나에게 고민거리를 던졌다. 왜? 대체 왜? 자신의 인생을 긍정하라는 의도였을까? 아니면 굴복하라는 의도였을까? 아니면 그 밖의 것일까? 설령 여기서 어떤 선택을 한다 할지라도 그 선택은 또한 계속해서 새로운 의문을 제시할 것이다.

고민 또한 빛이 바래는 모양이다. 시간이 지나며 고민은 계속해서 변화하니까. 물론 그 내용이 말이다. 분명히 나에겐 여러 가지 사건이 있었고 여러 가지 고민이 있었다고 기억되지만, 결국 내가 진실되게 가지고 있는 건 지금 현재의 사건과 고민뿐이다.


(3)가끔 밤에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자연을 거닐 때면 나는 길게 나있는 계단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아름다운 소녀를 상상한다. 그 소녀와 눈이 마주치고 알 수 없는 감정을 느낀 채 난 그녀에게 다가간다. - 그녀도 이 현상을 거부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여 나는 그 소녀와 나란히 앉아 같이 이야기도 나누고 같이 자연을 거니는 상상을 하면 마음 한 구석이 상쾌해진다...... 그래서 그 후엔?

나에 대한 생각으로 정신이 엉망인 소년과 동류의 소녀. 그 둘의 만남이 대체 무엇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공감이라는 가치조차 들어올 수 없는 꽉 막힌 고민거리를 안고 있는 소년소녀. 대체 어떤 무엇이 내 마음을 채워준단 말인가.


(4)이 세계에서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돈도 아니요, 지식도 아니요, 명예도 아니요, 지혜도 아니요, 여자도 아니다. 이것들 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작은 것에 기뻐하고 큰 것엔 더 기뻐할 수 있는 정신의 예민함이다. 아무리 가진 게 많아도 아는 게 많아도 정신이 예민하지 않고 뭉특하면 어떠한 것으로도 기쁨을, 즐거움을, 행복을, 또한 슬픔조차 제대로 느끼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저 살아있는 시체처럼.


하지만 정신의 예민함은 쉽게 변화하니 뭉툭해지기 쉽고 정신의 뭉특한은 자신의 무능력함과 무기력함을 느끼고 또한 변화할 수 있으니, 즉 예민해질 수도 또는 더 상위의 형태로 변모할 수 있는 것이다.


(5)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게 나의 세계와 타인의 세계가 만나는 것이라 한다면 그것은 정녕 보통의 일이 아닐 것이다. 한 세계엔 매우 방대한 것들이 존재하고 그의, 타인의 세계도 그와 관련해선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난 나의 세계도 잘 다스리지 못하는 그런 주인이다. 그런 주인을 가진 세계가 타인의 세계와 공존하고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이런 내가 타인의 사랑을 원하는 것은 어쩌면 그 타인을 내 욕구 충족의 수단으로 삼으려는 무의식의 나약한 본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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