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오세요! 반갑습니다!
한껏 들뜬 목소리로 나는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눈이 펑펑 내리던 2012년 겨울. 지금은 대단위 아파트 단지로 탈바꿈한 대전 도안동 거리는 당시만 해도 택지 상가 조성사업을 시작하던 초창기로 논과 밭 언덕을 중장비로 밀어만 놓았지 그 넓은 지역에 단 하나의 아파트 단지만이 덩그러니 놓인 허허벌판이었다.
그것도 들리는 얘기로는 입주민이 없어 한 대기업에서 직원 숙소로 임대를 놓았던 -부도가 나는 바람에 지금은 이름도 잊혀진- 지역 건설사의 이름을 딴 아파트 단지 단 한 개만이 있었다. 버스 노선도 없고 택시를 타더라도 나가는 손님이 별로 없어 기사님들조차 들어오기 꺼려했고, 아파트 단지 상가도 부도가 난 아파트 단지 안이라 부동산사무소 한 개 그리고 빵집 한 개가 전부인 휑하다 못해 훵~한 곳이었다.
그곳에 아내의 말이 씨가 되듯. 나는 앞치마를 질끈 매고 치킨과 무를 담고 나르고 생맥주를 따르며 치킨집 사장이 되어"어서 오세요!"를 외치고 있었다.
사연은 이러했다.
백수가 된 이후로 이력서를 들고 전국 각지에 있는 선후배를 찾아다니다 지칠 대로 지친 나는 말 그대로 "퍼져"있었다. 자존감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고, 생활비조차 건네지 못하는 처지가 되어버린 "백수"남편은 아내에게는 이미 을중의 을이 되어버렸고 못난 아빠가 된 이후로는 돈벌이하는 아내가 집에 들어오기 전까지 초등학생이었던 아이의 등하교와 숙제 공부까지 책임을 자발적으로 져야만 하는 신세가 되어 있었다. 그 와중에 열심히 애를 키워 보겠노라고 너무 열심히 돌본 까닭에 얼마나 아이를 달달 볶아 댔는지 열 살도 안된 아이가 눈을 깜빡 거리고 다리를 젓는 시늉을 하며 시도 때도 없이 고개를 까딱 거리는 중증 "틱"장애가 시작 되었다. 머리에 침을 셀 수 없이 가득 꽂아 넣는 침 시술을 받고 오십만 원 가까운 돈을 내고 한약을 받아오던 그날. 아내는 한 가지 제안을 했었다.
"여보 치킨집 해볼래?"
재밌잖아. 여보 좋아하는 생맥주도 공짜로 맘껏 마시고!
애써 웃으며 말하던 아내의 그 어색한 미소가 아직도 생생하다.
그 말속에는 지역 방송사 아나운서로 얼굴 다 알려진 "내"가 닭을 튀기고 생맥주를 따르고 손님들이 먹고 난 후 아무렇게나 버려진 닭뼈와 코 푼 휴지를 치워야 하고 술 취한 취객을 달래야 하며 생각만큼 장사가 안될 때는 오토바이에 닭을 싣고 신나게 치킨 배달을 해야 하며 혹시라도 엘리베이터에서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다면 환하게 웃으며 요 앞 상가 **치킨입니다. 많이 시켜주세요라며 너스레를 떨어야 한다는 그 당시에는 미처 몰랐던 많은 의미가 포함되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말도 안 되는 대답을 하기 시작한 것이.
"그래야지..."
그랬다. 바로 그랬다. 그때도 그렇게 대답했다.
그 안에는 머든 해야지. 계속 이렇게 있을 수는 없다. 돈 벌어야지. 남편 노릇은 해야지. 그래야지. 내가 머를 따질 땐가. 그 생각이었던 같다.
당시 아내가 다니던 학교 미술 선생님 남편이 6개월 운영하던 치킨집인데 무역업을 하게 되어서 어찌어찌 들어간 반 정도의 돈만 받고 넘긴다는 얘기였다.
당장은 힘들겠지만 조금만 버티면 아파트가 많이 들어서고 대박이 날 거라는 위안과 함께 헐값에 넘긴다는 이야기를 열 번쯤 했다고...
그렇게 이리 빼고 저리 만들어 삼천만 원을 건네고 나서 이주 후
나는 치킨집 사장이 되었다.
시장 조사도, 치킨을 튀기고 굽는 노하우도, 마케팅 연구도 없이 그냥 사장이 되었다.
테이블 다섯 개. 그게 다였다.
오후 5시 오픈하여 새벽 1시까지 그렇게 치킨집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러다 망했냐고? 그게 아니어서 문제였다.
나는 내가 그렇게 장사에 소질이 있었는지 미처 알지 못했다. 단 하나의 아파트 단지라는 단점은 그 아파트 주민이 어디 멀리 나갈 수 없어서 올 수밖에 없는 이유로, 이름 없는 브랜드라는 약점은 새롭게 론칭한 새 브랜드의 맛집으로, 아나운서여서 창피하다고 생각했던 피하고 싶은 소문은 아나운서가 운영하는 치킨집이니 얼마나 맛이 있고 분위기가 좋겠냐는 생각지도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홀 안의 테이블 5개로는 넘쳐나는 손님을 받을 수 없어서 야외 테이블을 한 개 한 개 놓다 보니 12개의 "야장"을 펼치며 상가 앞마당을 독차지했다. 다 비어있는 상가니 머라 항의하는 사람도 없었다. 자리가 없는 손님은 상가 빵집에서 대기 표를 받아서 기다리는 웃지 못할 상황이 매일 이어지고 있었다.
대박.
이게 내 길이였나 싶었다.
딱 2년이었다. 손님인 줄 알았던 그 인자한 인상의 50대 중반의 아주머니께서 가게를 방문한 것이 정확히 이년이 지나던 시점이었다.
싸~했다.
가게 건너편에서 두 눈으로 야외테이블을 흝어보던 그 눈빛.
손에 든 서류철을 들추면 십 분간 무엇인가 서류와 가게를 번갈아가며 확인하던 그 손끝이.
가게 유리창 너머 길 건너 그분을 바라보면서 나는 무엇인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건 멀까.
뚜벅뚜벅 건너오고 있었다.
횡단보도도 없는 그 길을 중년의 안경 쓴 인자한 여인이 나를 향해 아니 가게를 향해
노란색 종이 서류철을 손에 들고 동시에 커다란 누런 봉투를 겨드랑이에 낀 채 걸어오고 있었다.
오지 마라 오지 마라
누군지도 모르겠고 무슨 일인지도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아프리카 사파리 여행 중 문짝이 떨어져 열린 자동차를 향해 다가오는 사자와 마주한 느낌이었다.
기어이 그분은 내 바람과는 다르게 기어이 문을 열고 들어오고야 말았다.
"어서 오세요"라고 하면 안 될 것 같아
그 말 말고 다른 말을 떠올려 봤지만 도대체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잘못한 것도 없으니 걱정할 것도 미리 우려할 것도 없었지만
불길한 상황의 기운은 사람을 마치 초능력자처럼 그것을 미리 느끼게 만들고 있었다.
그 자리에 딱 서있었다. 움직일 수가 없었다.
해표식용유 20리터짜리 빈 통이 오른손에 들려 있었고
막 켜놓은 포스기가 지지직거리며 프로그램을 로딩하고 있었고
전화주문을 놓칠세라 흰색 모토롤라 무선 전화기를 왼손으로 꽉 쥐고 있었다.
아무런 말도 못 하고 "응?" 하는 표정으로 그분을 응시했다.
세상에 본 표정 중에 가장 무미건조한 모습이었다.
그 여사님의 표정은.
그리고 가게를 한번 크게 둘러보더니 한마디 던진다.
"구청 위생과에서 불법 영업신고 접수받고 나왔습니다."
미. 치. 겠. 다.
동네 치킨 집서 불법 영업이라니?
그것도 신고를 했다니?
신원조회까지 완벽하게 통과한 직장에서 15년을 근무했고
살면서 불법이라고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신호위반 두 번과 과속카메라 한두 번
이외에는 사십 넘도록 저지른 게 없었는데 불법영업을 했다니!
갑자기 멍한 정적이 흐르고 나서 나는 거기서 또다시 말도 안 되는 한마디를 내뱉고야 말았다.
"아이고 사모님~"
이게 무슨 망언이란 말인가. 여기서 사모님이 왜 나오는지 나는 내입을 틀어막고 싶었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고
웬만하면 웃음으로 넘겨 줄줄 알았던 그분은
세상에 기분 나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당시 가게 손님 중 80프로가 아이들을 위해 치킨을 사러 오는 동네"사모님"들이었던 까닭에 그 단어가 입에 붙어있어서 그랬다는 가슴 아픈 이유를 자세히 들려 드리려 했으나
이미 내뱉은 사모님이라는 단어는 그분의 귀에서 머리로 그리고 가슴으로
마치 화살처럼 재빠르게 관통한 것이 틀림없었다.
정적이 흘렀다.
마치 천년처럼
인도 위 영업은 불법이고 누군가 사진을 이삼십 장 찍어 신고를 했다는 것이다.
불법. 신고.
이 말이 나에게는 엄청난 충격으로 당시에 다가왔다.
다행히 야외테이블을 치우고 다시는 업장 이외 영업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으면
일차 경고로 끝내겠다고
다만 다시 신고가 들어오면 엄청난 벌금과 영업정지를 각오해야 한다는 무서운 규정을 들이밀며
그 인자하신 사모님은 자세히 통보해 주었고 닭 한 마리 싸주겠다는 나의 호의를 찬바람
부는 쌩한 표정으로 거절한 채 돌아갔다.
장사를 오래 한 남들이 들으면 별것도 아닌 상황이겠지만
아쉬운 소리를 해보지도 않았고 불법이란 것을 생각해 보지도 않았던
온실 속 여리디 여린 화분 속 꽃처럼 직장생활을 해왔던 나에게는
불. 법. 영. 업. 신. 고라는 그 모든 것이 견딜 수 없이 괴로웠다.
야외테이블은 치워졌고 주변의 시선이 항상 거슬렸으며
밖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맥주를 마셔야겠다는 동네 주민들과 매일 테이블을 붙잡고 신경전과 시비를 벌여야 했으며
문신 가득한 무서운 분들이 억지로 펼친 야외테이블에서 술 마시고 난동을 부려
경찰차가 세대씩이나 출동했던 그날 이후 나는 조용히 가게를 다시 헐값에 넘기고
두 번째 백수가 되었다.
그렇게 직장생활도 그렇게 많이들 한다는 동네 치킨집조차도 제대로 해내지 못한
"능력 없음"을 다시 한번 확인만 시킨 채 나는 두 번째 백수로
집안으로 마음 편하게 들어올 수 도 그렇다고 집 밖으로 자신 있게 나갈 수 도 없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바로 그때.
아내가 나에게 그렇게 결정된 상의를 해온 것이다
"여보 나 경민이랑 캐나다 갈래"
"캐나다 갈까?" 혹은 "캐나다 가면 어떨까?"
이게 아니었던 거다.
그래서 그랬을 거다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