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나는 면직을 밝힌 이후, 많은 것을 고민했다."
면직을 선언한 이후, 면직 수리일까지 나는 많은 것을 고민했다. 공직 생활을 마무리하고 나면 무엇을 해야 할까?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나는 나름 인서울 대학을 학점 상위권으로 졸업했고, 학창 시절에도 다양한 경험을 쌓아왔다. 당구장 아르바이트부터 상하차, 카페, 옷가게, 노래방, 공공기관, 연구실 인턴 등등 짧지만 다채로운 일들을 해냈다. 그럼에도 지금 나의 미래를 다시 정립해야 한다는 생각은 쉽지 않은 문제였다.
퇴사를 앞두고 내가 가장 많이 고민했던 건 무엇을 해야 하는지였다.
많은 사람들이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 사이에 많은 고민을 하듯, 나도 마찬가지인 거 같다.
‘워킹홀리데이를 떠나볼까? 새로운 환경에서 완전히 다른 문화를 경험하며 힐링과 도전을 동시에 얻을 수 있을지도 몰라.’
‘대학원에 가서 공부를 더 하면 어떨까? 연구직으로 커리어를 쌓는 건 안정적이고 학문적인 성취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
‘아니면 아예 새로운 직무로 바꿔야 하나? 공직에서 벗어난 지금이야말로 도전할 수 있는 기회 아닐까?’
이 고민 속에서 내가 가장 크게 깨달은 것은 하나였다.
“나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내 능력도 중요하지만, 내가 몸 담은 시장의 규모와 트렌드도 중요하다.”
결국, 나는 요즘 가장 핫한 분야라고 할 수 있는 CS(컴퓨터 과학), 인공지능(AI), 데이터 분야에 눈길을 돌리게 되었다. 이 분야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내 전공(공학 계열)과도 어느 정도 접목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었다. 나는 이 분야에서 석사 학위를 받으면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대학원 진학을 결정한 뒤, 나는 데이터 분석이나 인공지능 관련 연구를 진행하는 연구실에 컨택 메일을 돌리기 시작했다. 물론 내 전공이 컴퓨터 과학과는 거리가 있었지만, 공학 계열이라는 점을 살려 관련 주제에 접근하려 했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더 까다로웠다.
한국 서상한 대학원 이상급 연구실들은 경쟁이 치열했다. 요즘은 도피성으로 대학원에 진학하려는 경향이 강해 TO(정원)도 적었다. 취업 시장이 얼어붙은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석사 학위를 통해 공부와 몸값을 동시에 올리려는 분위기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12개의 메일을 보냈고, 아래와 같은 결과를 얻었다.
5개: 무응답
1개: 정년 퇴임으로 인해 신규 모집 불가
2개: "자리가 없다"는 답변
2개: 미팅 진행
1개는 석박 통합 과정 우선 선발
1개는 석사 과정 가능하나 별도의 테스트 필요
12개의 메일 중 겨우 2개의 연구실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 그중 한 곳과의 미팅에서는 교수님과 논문을 주제로 한 디스커션(토론)을 진행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결과적으로 교수님은 긍정적인 의사를 밝혔고, 입학 시점과 인턴십 가능 여부를 논의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미팅 말미에 교수님이 덧붙인 한 마디는 내 계획에 큰 충격을 주었다.
"우선적으로 석박 통합 과정 학생을 선호합니다."
나는 순간 당황했다. 처음부터 석사 과정 지원으로 연락을 드렸음에도, 석박 통합이라는 말을 꺼낸 이유가 이해되지 않았다. 석박 통합 과정은 기본 7년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계획에 들어갈 수 없는 시간이었다.
결국 고민 끝에 이쪽 연구실은 가지 않기로 했다. 괜찮은 조건이긴 했으나, 이렇게 말을 바꾸는 사람 밑에서 일하는 건 그리 좋은 선택이 아닐 거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대학원 컨택의 과정은 쉽지 않았다. 12개의 메일 중 5개는 아예 답이 없었고, 정년 퇴임이나 자리 부족을 이유로 거절당하기도 했다. 겨우 진행된 미팅 중에서도 한 곳은 석박 통합 과정이었고, 다른 한 곳은 석사 가능성을 열어두었지만 추가 테스트를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
“뭐든 계획대로 되는 인생은 없다.”
대학원도, 진로도, 커리어도 결국엔 내가 발로 뛰며 하나씩 열어가야 한다는 사실.
그리고 무언가를 고민하는 당신이라면 일단 부딪혀라.
필자도 고민과 잡생각이 정말 많고, 완벽하지 않으면 시작을 못하는 어리석은 놈이지만 인생을 살아오며 빠른 실패가 득이 된 경우가 훨씬 많았던 것 같다.
나는 아직 어떤 길로 가야 할지 명확히 알 수 없었다. 워홀, 대학원, 직무 변경 모두 저울질하며 시간을 보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있었다. 내가 선택한 길을 더 가치 있게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
"길은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나는 여전히 내 길 위에 있다. 실패와 고민 속에서도, 조금씩 내 방향을 찾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