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깎이로 들어간 굳은살

by 비상 시 출구

가파른 오르막 올라 작은 집 도착하면 아무것도 없다 덩그러니 놓은 떡갈색 책상과 의자 같은 색의 옷걸이와 서랍장


잠시 바닥에 드러누워 본다 바빠진 숨을 잠시 고르고 주섬주섬 옷 벗어 욕실로 간다 강한 수압과 뜨거운 물로 몸을 진정시키고 빠르게 씻고 나온다 불 다 끄고 백광색 조명이 천장 바라보게 키면 이제야 찾아오는 독백의 시간 따뜻한 마실거리 끓이고 수증기가 방 안에 차오르고 남은 물을 하수도에 흘려보내 깨끗하게 씻어낸다 이제 슬슬 바닥에 요 깐다 매트리스가 있었는데 얼마전에 세로로 세워 버렸다 하루중에 일정 시간만 보내는 공간 계속 유지해야할 이유 거의 없다 막상 누워보면 등이 뻐근하지만 대신 이제 피곤하지 않으면 눕지도 않는다 뒤에 안락한 잠자리를 만들어두고 딱딱한 나무의자에 않는다 차갑다 작은 방석이라도 둘까했지만 오래도록 지속되어 온 게으름과 자칭 나만의 감각 나무 살결을 직접 댄다 허리 필 수 밖에 없고 앉고 나면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와이파이 없이 노트북을 두들기다가 온라인 세상과 접할 일이 있으면 잠시 글들을 옮기고 곳곳에 흩어진 책 하나 주섬주섬 뒤척이다가 잠깐이라도 집중해서 읽기 시작한다 첫 장에 공을 들인다 천천히 한 줄 한 줄 읽어내려간다 계단 같은 줄글 듬성듬성 뛰어 내려올 때면 책을 덮을 때다 무리해서 걸은 날이면 책도 들어오지 않는다 스멀스멀 잠의 기운이 몸 안에 몽롱히 퍼진다 천장으로 향해둔 조명을 바닥으로 내리고 막 만들어진 가장 낮은 침소로 향한다 흥미롭지 않은 책을 들고 가는 것이 포인트 이해되지 않는 글을 읽다보면 자연스레 눈꺼풀이 감겨오고 이때 타이밍 잘 잡아야 한다 와인잔 유리그릇이 가득 쌓인 테이블보를 한 순간에 빼는 릴스처럼 다가오는 적을 보며 짐짓 떨리는 손으로 검을 쥔 검사처럼 단 한 순간 책을 딱 접고 조명을 끄고 잠에 든다


이 과정에 오기까지의 불편함들을 사랑한다 내가 나로 남을 수 있게하는 일상의 불편함들은 어느샌가 만들어진 삶의 굳은 살들을 찬찬히 베낀다 연필깍이 속으로 들어가는 연필의 심정은 아마도 편안함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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