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도시는 이제 원물이라곤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데
가장 흔한 도로 옆 가로수마저 뿌리 통째로 심어다 가지런히 배열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가 형성한 안정과 위로라는 개념은 끝나지 않는 연극 관객석, 그것도 화장실조차 마음 편히 다녀올 수 없는 가운데 자리로 우리 스스로를 밀어넣음에 불과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여기서 편집증적 갈등요소가 발발하는데
바람을 피하기 위해 작은 움집에서 시작해 무거운 콘크리트를 부어다 만든, 건축은 인공과 동치된다
단순히 자연에 대항하려던 인간의 본성적 욕구를 넘어서 현대의 건축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데
그 아름다움이란 단순히 조형적인 것을 넘어 이젠 자연을 인공물과 결합시키거나 그 안으로 끌어오는 것에 주력하는 모양이다
얼마나 외부와 내부의 경계를 투명하게 구성했는지, 경계가 얼마나 명확하지 않는지 등이 그 기준이 된다
그럼으로써 건축적 아름다움을 아는 사람(이론을 접하고 그것을 배운 사람,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배우지 못하면 아름다움을 알 수 없고, 더 심각한 것은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외부적 대상을 객관적 질서 속에 배치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의 미적 기준을 적용하므로써 만들어지는 것이다. 즉 현대 야구에서 타법에 대한 연구가 적극적으로 진행되면서 많은 투수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타법의 연구라는 것은 던지는 투수와의 대립선에서만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표면적으론 투수들이 어려움을 겪는 듯 하지만 실상 과거나 매한가지이다. 즉 아름다움 역시 자신의 직접적 경험이라는 그물에 현재적 감각이라는 바닷물이 지나가며 물고기가 걸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여긴 괄호로 시작했으니 이만 닫아야 한다. 너무 길어지면 괄호를 시작하게 된 의도를 잃을 수 있다)들은 그 대상을 접하며 그곳이 자연이 아님에도, 특정한 대상이 아님에도 마치 실제적으로 맞닿아 그 안에서 공간감을 만끽한다고 착각하게 된다.
이 모든 것은 원물에 대한 두려움으로 탄생한 도시의 편집성에서 비롯되었다.
우린 더 세밀하고 조잡하게 파고들어 나노적 구분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