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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기쉼 May 27. 2023

100% 착즙 된 나를 만난다면

[강박]

불편한걸 나는 못 느끼는데, 내 몸은 느껴요. 

그게 누적되면, 병이 나요.




어릴 때부터 우리 집은 있는 그대로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인색했다. 그래서 참고, 참다가 폭발적으로 기분을 드러내기를 반복했는데 그럴 땐 '기분파'다, '지나치게 감정적'이다, '감정에 취해 사는 것 같다'는 평가를 받았다. 



나는 자연스럽게 올라오는 감정을 조절하게끔 교육받았다. 이 교육은 효과가 좋았다. 아무리 짜증 나고 화가 나는 상황에서도 일단은 웃어 보일 수 있었다. 어디서나 감정컨트롤을 잘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화를 내는 날이 1년에 한 번 정도 있었을까? 만약, 내가 화를 낸다면 누구나 그럴만했다고 인정하곤 했다.



나에겐 그게 굉장히 중요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수용 가능한 정도로만 표현하는 것. 그래서 나의 전부가 수용되었으면 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누군가 나의 '진짜' 전부를 알게 되면, 나는 결코 수용되지 못할 거라는 것. 



더 정확히는,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아직 나의 본모습을 모르기 때문이고,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진짜 내 모습을 눈치챘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결국 '내가 문제'다. 이것이 내가 가진 세계관이었다.



그래서 나는 대화를 할 때, 줄곧 객관적인 사실만을 늘어놓곤 했다팩트만 전달하면서도, 상대방이 나의 입장에서 감정을 읽어주기를 내심 바랐다. 기분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억울함이나 기쁨을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으로 의사소통하는 것이 옳다고 믿었다.



화가 나는 순간에 화를 내는 것은 하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울어야 할 때 울고, 웃어야 할 때 웃지 못하는 순간이 많았다. 깊은 빡침이 올라올 때, 웃어넘기는 법을 배웠다. 나의 감정은 항상 일관되어야 했다.



나는 왜 사람이기를 포기하고, AI처럼 살았던 걸까?



감정을 드러내는 나를 만나고 싶다.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

감정을 표현할 줄 아는 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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