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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기쉼 Jun 06. 2023

하찮은 캥거루의 탈출

[인정] 맞춤형 인간탈피

너의 삶이 온통 
'OO'를 위해 세팅되어 있어.

마치, 충전기에 꼭 맞는 에어팟을 꽂아야 작동하는 것처럼.




나의 삶이 누군가를 위해 일하는 기계와 같다면. 나를 위해서 사는 삶이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서 사는 삶이라면 어떤 기분일까. 믿고 싶지 않지만, 상담사는 내가 그런 삶을 살아왔다고 했다. (이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까지,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해서 회피하느라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오랜 도망 끝에 마주한 나의 모습은 다음과 같다.






OO가 편하게끔, 나를 맞추며 살아왔다.



OO에는 수많은 것들이 들어갔다. 그중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고, 나를 가장 사랑하는 것. 그래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은



엄마.



그랬다. 나는 엄마와 나를 깊이 동일시하고 있었다. 



나는 엄마의 세월을 먹고 자랐다. 너무나도 소중한 존재였기에, 엄마는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어서 나를 길러냈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나는 그 어려움을 제공한 장본인이기도 했다. 그래서 엄마가 힘들어하는 모습이 내 탓인 것처럼 느낄 때가 있었다. 그 순간들을 견디기가 힘들었다. 



엄마가 힘들어할 때 깊은 죄책감을 느꼈다. 그리고 엄마가 행복할 때 안도했다. 나는 엄마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랐다. 나의 부모님 세대는 삶이 참 팍팍했던 시대다. 철이 들고 나서부터 부모님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고, 내가 부모님의 자랑이 되어드리고 싶었다. 그동안 고생한 것 이상으로 보상을 해드리고 싶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부모님이 원하는 모습으로 나를 맞추어 살기 위해 자발적으로 노력하기 시작했다. 부모님 때문이 아니라, 인정받고자 하는 내 욕심이 낳은 일이었다. 



하지만 누군가를 만족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결국 나는, 나 자신도, 나의 부모님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삶을 살았다. 그 스트레스를 다시 엄마의 탓으로 돌리며 쏟아부었다. 지독히도 못된 악순환이었다.



캥거루족이었던 나는, 이러한 현실을 깨닫고 나서야 비로소 정서적인 독립을 굳게 결심했다.



나와 부모님 모두를 위한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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