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손 두 발 다 들기\^0^/
나는 원래 어떤 사람이었을까? 엑셀과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고, 편안한 나를 마주하자. 불안과 의무감을 걷어낸 본연의 모습을 알고 싶었다.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이래도 되나 싶었지만 어차피 그날 죽었다면 오늘은 '덤'일 뿐이었다. 제로베이스라고 생각하니까 용기가 났다.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나는 오늘, 다시 태어났다. 처음부터 뛰어가려고 하지 말고 걸음마부터 떼자. 자연스럽게 무언가 '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까지 기다려보자. '해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에 아등바등 애쓰지 말자.
그날부터 온종일 덩그러니 나를 던져놓았다. 배가 고플 때까지 밥을 먹지 않고, 졸릴 때까지 잠을 자지 않았다. 아마 누군가 나를 봤다면, "드디어 미쳤구나"라는 말이 절로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한심하게 보이더라도 모든 시간을 '나'에게만 집중하기로 했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사람인지 끝까지 알아내고 싶었다.
처음 태어난 사람처럼, 있는 그대로의 나를 마주하는 첫걸음이었다.
‘스토리’가 좋다
가만히 허공을 응시하다 가장 처음 머릿속에 든 생각은 유튜브를 보고 싶다는 것이다. 그렇게 알고리즘의 노예가 되었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고 유튜브만 보는 날도 있었다.
그러다 문득, 알고리즘이 있는 그대로의 가장 나를 잘 드러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천재생목록을 처음부터 찬찬히 살펴보았다. 역시, AI는 과학이다. 해킹을 당한 것처럼 관심사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나는 추천된 영상을 크게 세 가지로 분류했다.
먹방
청춘(꿈, 연애)
이야기(사람, 삶, 인간관계)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끌렸던 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와 삶, 인간관계다. 누군가의 이야기가 계속 궁금했고, 재미있고 좋았다. 그렇게 우연히 가장 좋아하는 어떤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운동을 하고 싶다.
다음으로 관심을 가진 것은 운동이었다. 그동안은 안 하면 마음이 불편해서 운동을 했지만, 이제는 운동이 '하고 싶었다'. 사실은 운동을 좋아했었구나, 꾸준히 해온 것엔 이유가 있었다.
운동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 마음에도 변화가 있었다. 그전에는 운동 후에 안도감을 느꼈지만, 이젠 웃음이 났다. 조금 행복한 것도 같았다. 땀을 내고 나서 씻을 때, 시원한 공기를 들이마실 때의 기분이 좋았다. '좋아한다'라고 생각하니까, 조금씩 세상이 나아 보이는 것 같았다.
'다행'이라고 점철되었던 삶에, '좋다'는 단어가 불쑥 끼어드는 순간이었다.
정리를 하고 싶다.
이건 정말 예상하지 못했던 거였는데, 방을 정리하고 싶었다. 여기저기 물건이 너저분하게 있는 게 싫었다. 콘셉트는 '덜어내기'었다. 깔끔한 미니멀리스트가 되자. 물건과 옷을 전부 꺼내서 방 한가운데 쏟은 다음, 꼭 필요한 것만 남기고 과감하게 버렸다. 어느새 의류수거함이 옷을 토해내고 있었다. 미안한 마음에 비닐을 깔고, 욱여넣었던 옷을 다시 꺼내서 차곡차곡 쌓았다. 이 엄청난 짐들이, 그동안 끌어안고 살았던 삶의 무게 같다는 생각을 하며 그 밤에, 나는 살아온 짐을 가차 없이 버리고 또 버렸다.
꼼꼼하게, 다시 어지르지 않도록 물건을 배치하는 데만 꼬박 3일이 걸렸다. 하지만 정리를 마치고 나니까 뿌듯함 이상의 행복이 밀려왔다. 그동안은 방이 정리되지 않아도 괜찮은 줄 알았는데.. 내가 너저분한 공간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깔끔하고 단순한 것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아주 조금씩 실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동안 '해야 한다'는 이유로 '하고 싶은' 것은 뒤로 미루면서 억누르고 살아왔다는 것을 인정하게 됐다.
하고 싶은 데로만 하는 삶은 정말 편안했다. 하지만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사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그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보고 싶다. 할 수만 있다면 내가 원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 싶다. 나의 욕구와 자연스러운 흥미, 내가 잘하는 것을 찾아서 직업으로 연결 지을 수는 없을까?
내가 찾고 싶은 여섯 번째 조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