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1화 숨겨진 목소리
방 안은 조용했다. 디지털 시계의 숫자들이 깜빡이며 흐르는 시간이 고요하게 쌓여갔다. 11:47. 시간이 지나가는 건 아는 데, 그 흐름 속에서 무엇도 달라지지 않은 기분이었다. 주인공은 작은 책상에 앉아 있었다. 책상 위에는 여러 개의 마이크와 녹음 장비들이 산발적으로 놓여 있었다. 화면을 들여다보며, 귀를 기울였다. 자신이 만든 목소리를 되풀이해 들으며 고쳐 나가는 그 과정은 언제나 그렇듯 반복적이었다. 목소리의 톤, 발음, 길이… 하나하나 맞추려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버린다.
“이건 너무 부자연스럽네… 아니, 이건 너무 힘이 들어간 것 같아…”
주인공은 입술을 깨물며 말을 되뇌었다. 반복하는 자신이 싫을 때가 많았다. "왜 이렇게 안 될까?"라는 물음이 자꾸만 머릿속을 떠돌았다. 이게 나의 목소리일까? 나는 언제 이걸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불안한 마음에 그저 멈추고 싶은 순간들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저 원하는 대로 목소리가 나오지 않으면 모든 것이 헛된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뭐. 별거 아니겠지.”
혼자 중얼거렸다. 언제부터 이렇게 점점 모든 게 사라져가는 것만 같았다. 작은 화면 속에서만 일어나는 일이지만, 그 사실이 마치 거대한 외로움으로 그녀를 감쌌다. 목소리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그 순간들이, 그 이상한 공허한 느낌이 하루하루 더 쌓여가고 있었다.
몇 시간 후, 화면 속에서 드디어 알림이 왔다. 댓글 하나. "목소리 좋아요, 힘내세요!" 비록 작은 응원이었지만, 그 댓글을 보고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그나마 그 말을 붙잡고 있으면 어딘가 나아질 것 같다고, 그런 작은 위로에도 의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속 어딘가에는 여전히 불안한 물결이 밀려왔다.
“이게 나의 목소리일까?” 그 질문은 점점 더 커졌다. 그냥 내가 해야 하는 일이었을까, 아니면 내 본 모습을 그대로 담아야 하는 걸까? 계속해서 이어지는 생각에, 잠시 그녀는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어두워져가는 하늘과 불빛들이 내다보였다. 그런 모습 속에서 불안한 기운이 더 짙어져갔다.
“진짜 이게 내가 하고 싶은 건가? 그냥 다 내버려두면 될까?”
자꾸만 떠오르는 생각들. 사람들이 원하는 것과, 내가 원하는 것이 다르다는 불편함. 혹시 내가 내 목소리를 숨기고 있는 건 아닐까? 정말 나 자신을 보여주는 게 맞을까? 그 물음은 계속 머릿속을 떠돌았다.
그녀는 다시 한 번 입술을 가볍게 깨물고, 스마트폰을 들어 영상 댓글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그 안에서 '힘내세요'라는 댓글을 보고 나서, 잠시 마음이 놓였다. 그래도, 조금씩은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씩만 나아가도, 그게 희망이 되지 않을까. 어쩌면 그 작은 댓글 하나가 그녀에게 필요한 위로일 수도 있었다.
"그래, 내 목소리도 언젠가는 찾을 수 있겠지."
그렇게 중얼거리며, 다시 녹음 버튼을 눌렀다. 이번엔 조금 더 편안하게, 자연스럽게. 그리고 목소리의 떨림을 조금 덜어내고, 진심을 담아봤다. "이건 나의 목소리." 자신에게 그렇게 말하며.
디지털 시계는 12:05를 가리켰다. 한 시간, 두 시간이 지나갔지만 그 시간 속에서 무엇도 바뀌지 않는 듯했다. 그러나 그녀는 조금씩,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며 녹음 버튼을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