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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즈속 덧된 목소리

1부2화

by 윤하루

주인공은 천천히 손끝을 디지털 녹음기의 버튼에 올렸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었지만, 오늘은 그 버튼을 누르는 순간이 더욱 중요한 것처럼 느껴졌다.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녹음 버튼을 눌렀다. 녹음이 시작되자, 첫 음성은 예상보다 크게 울려 퍼졌다.

“아…”

주인공은 급하게 버튼을 멈췄다. 녹음이 실패했다는 걸 바로 짐작할 수 있었다. 불안한 마음이 머릿속을 휘저었다. 어깨가 움츠러들었고, 가슴은 조여왔다. 손목이 떨리며 녹음기를 다시 잡았다. 이번에는 조금 더 차분하게, 더 섬세하게 하려고 했지만, 또다시 실수가 나왔다. 목소리가 고르지 못했고, 너무 힘이 들어갔다.

“그래, 이번엔… 잘 마무리해보자.”

주인공은 다시 한번 마음을 가다듬고, 버튼을 눌렀다. 이번엔 조금 더 낮은 톤으로, 좀 더 부드럽게, 차분하게 녹음을 시작하려 했다. 수없이 많은 성우들이 해온 말투를 떠올리며 따라 해봤지만, 역시나 목소리는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 마치 가면을 쓰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불완전한 소리가 울려 퍼졌고, 계속해서 어색한 발음이 나왔다.

“왜 이렇게 밖에 못하는 걸까?”

주인공은 목소리 하나하나가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 한번 녹음을 멈췄다. 화면 속에 나타난 비어 있는 녹음 시간, 그리고 끝내지 못한 목소리. 모든 것이 그녀를 압박했다. '왜 이런 결과물만 나오지?'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마음속의 불안은 더 커져갔다. 이러다가는 정말 ‘나’라는 사람이 한심해보일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도 잘 연기하지 못하고 끝날 거라면, 그냥 포기하는 게 낫겠어.”

내면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연습할수록 자신을 잃어가는 느낌이었다. 그저 남들의 목소리도 따라 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주인공은 손목을 움켜잡으며 그 생각을 떨쳐보려 했지만, 마치 머리 속에서 돌아가는 톱니바퀴처럼 끊임없이 그 내면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이건 아니야.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도 나의 것으로 못 만들었어. 나는 차라리 내 목소리로 해볼까?”

그녀는 일순간 깨달았다. 이제, '내 목소리로 해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그만 남들의 목소리를 따라 하지 못하고 포기하는 것은 너무 늦었다. 그러나 그 순간, '나의 목소리'를 낸다는 것이 더 두려운 일이었다. 그 두려움이 다시 그녀를 덮쳤다. 자신을 드러내는 것, 진짜 '나'를 보여주는 것이, 그 불안감을 이겨내는 것이 무서웠다.

"그래도 해야지... 내 목소리로."

주인공은 다시 한 번 버튼을 눌렀다. 이번엔 조금 더 의지를 다지며, 자신을 믿기로 했다. 그러나 그 순간, 목소리는 여전히 불안정했다. 떨림과 두려움이 섞여 있는 목소리. 그 소리가 너무 약하고, 작고, 불완전했다. 주인공은 그 목소리의 진동이 가슴 속에 깊게 파고드는 것을 느꼈다.

"이게 바로 진정한 나야."

내면의 목소리가 점점 더 작아졌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그 목소리는 온전히 나의 것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그냥 이렇게 포기할까?'라는 유혹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예전처럼 도망가려는 마음이 들지 않았다. 실수하고 실패하는 그 과정 속에서 조금씩 자신을 찾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목소리의 떨림 속에서 조금씩 그녀의 본질이 드러나는 것 같았다.

"휴… 이번에는 마무리만 하자."

그녀는 마음을 다잡고 다시 한번 마이크 앞에 섰다. 실패하고, 두려움 속에서 길을 찾고, 그 길을 가겠다는 결단을 내렸다. 그리고 다시, 조금 더 자신을 숨기기로 했다.

“그냥 이번엔, 다른 사람의 목소리부터 다시 연습해보자.”

이번에도 주인공은 자신의 목소리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성우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또 다시 그들이 했던 말을 흉내 내기 시작했다. 어느새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목소리로 말하며, 그 속에서 자신을 찾으려 했다. 주인공은 그제야 마음을 다잡고 그 목소리를 내뱉었다.

"어쩔 수 없잖아… 내 목소리로는 아직… 너무 무서워."

그녀는 잠시 숨을 고른 후, 다른 사람의 목소리로 대사를 다시 시작했다. ‘내 목소리’는 여전히 멀리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한 걸음 한 걸음 그 길을 가고 있었다. 어느 날, 진짜 ‘내 목소리’를 찾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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