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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항 속 금붕어를 바라보는 밤

by 윤하루

밤이 깊어갈 무렵, 나는 습관처럼 책상 앞에 앉았다. 아무도 없는 방, 멈춰 있는 공기, 형광등 아래에서 잔잔히 흔들리는 어항 속 물결. 그 속을 천천히 유영하는 금붕어 한 마리가 내 시선을 붙잡았다. 괜스레 마음이 끌렸다. 오늘따라, 그 작은 생명이 나와 닮아 보였다.

금붕어는 둥그런 어항 속을 한 방향으로 돌다 말고, 잠시 멈춰 나를 바라보는 듯한 눈을 한다. 작은 눈, 빛을 반사하지 않는 무심한 검은 점 두 개. 그 속엔 감정이 없었다. 그래서 오히려 무서웠다. 나는 문득 내가 금붕어 같다고 생각했다. 아니, 금붕어가 나 같다고.

사는 공간이 이 어항처럼 한정되어 있고, 그 안에서 하루 종일 같은 자리를 맴돌며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 수도 없고, 어항 밖 세상은 늘 굴절되어 보이기만 한다. 금붕어가 보는 세상은 어떤 빛깔일까. 내 방처럼 침묵에 잠겨 있을까. 혹은 내가 보지 못하는 환한 풍경이 어항 밖에 존재하는 걸까. 그런 걸 모른 채 살아가는 건 어쩌면 평온한 일일까, 아니면 절망적인 일일까.

내가 지금 여기에 앉아 있다는 사실조차, 누군가에겐 보이지 않을 수 있다. 마치 어항 속 금붕어를 지나치듯. 나도 이 세상 어딘가에서 유영하고 있지만, 그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는 존재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잠긴다. 나는 이 공간을 나의 어항이라고 불러도 될까. 벽, 창문, 책상, 침대. 규칙적으로 정리된 사물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나를 움직이게 하지는 못한다. 나는 오늘 하루를 또 같은 궤도로 떠다녔다. 아무 의미도 목적도 없이.

금붕어는 천천히 지느러미를 흔들며 방향을 바꿨다. 나는 갑자기 울컥해졌다. 저 조그만 몸으로, 매일 같은 길을 걷는 일이 얼마나 지루하고 외로울까. 하지만 그 금붕어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건 생명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말을 하지 않기로 선택한 것처럼 보였다. 그것이 오히려 나를 더 닮았다. 나는 종종 말을 하지 않는다. 말하면 어딘가 깨질 것 같아서. 말하는 순간, 내가 진짜로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질까 봐 두려워서. 그래서 나도 어항 속 금붕어처럼 입을 뻐끔거리기만 하고, 아무 말 없이 다시 돌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때때로 물었다. 왜 그렇게 조용하냐고. 무슨 생각을 하냐고. 하지만 그때마다 나는 웃기만 했다. 그 질문들이 내게 닿기 전에 이미 물속에서 찢어진 파동처럼 흩어져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너무 오래 이 어항 속에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물의 압력이 피부에 느껴지지 않게 되었고, 수면과 수면 아래를 구분하는 경계도 흐릿해졌다. 내가 지금 숨을 쉬고 있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다.

어항에 손을 댄다. 미지근한 유리벽. 그 안쪽에서 금붕어가 가까이 다가온다. 아무런 경계도 없이. 나는 그 따뜻한 무관심에 위로를 받는다. 살아 있다는 건, 누군가와 눈을 마주치는 일일까. 금붕어와 나 사이엔 단단한 유리막이 있지만, 그 벽 너머로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그저, 바라보는 것. 말도, 터치도, 약속도 없이. 그건 아주 오래된 위로처럼 느껴졌다.

밤은 점점 깊어지고, 방 안의 공기도 무거워진다. 하지만 나는 일어날 생각이 없다. 금붕어가 어항 속을 한 바퀴 더 도는 동안, 나도 내 방을 한 번 더 눈으로 돈다. 똑같은 구조, 똑같은 그림자. 그리고 그 안에 여전히 갇혀 있는 나.

나는 더 이상 금붕어가 불쌍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부럽기까지 하다. 그에겐 잊어버릴 수 있는 본능이 있으니까. 돌아도 돌아도 같은 경로를 또다시 새롭게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 나에겐 없는 그것. 나는 돌 때마다 기억한다. 언제 이 길을 돌았는지, 어떤 감정이 있었는지. 그래서 더욱 고통스럽다.

나는 금붕어의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다. 그저 금붕어라고만 불렀다. 이름을 붙이는 순간, 더 이상 바라볼 수 없을 것 같아서. 이름이 생기면, 사라질 때 더 아플 것 같아서. 그리고 나는 너무 많은 이름들을 잃어버려 왔다. 그 이름들은 물속에서 기포처럼 올라왔다가, 터지고, 사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 밤도 어항 앞에 앉아 있다. 어쩌면 내일도 이 자리에 앉을 것이다. 그리고 금붕어는 여전히 같은 궤도로 유영하고 있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약속이다. 말로 하지 않아도 되는 약속. 고요한 물속에서만 가능한 약속.

그래, 이 어항은 나의 거울이다. 나는 금붕어를 바라보며 내 속을 들여다본다. 작고 투명한 세계 속에서, 우리는 함께 살아남고 있다. 아무도 몰래, 아무도 모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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