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머릿속은 시끄러웠다.
‘방금 그 표정, 나 때문이었을까?’
‘혹시 내가 뭘 잘못한 건가?’
‘그냥 지나간 말인데, 왜 계속 신경 쓰이지?’
처음엔 단순한 궁금증이었다.
그런데 그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더니, 곧 의심이 되었다.
이유 없는 불안이 마음속을 휘감기 시작했고, 아무 일도 없던 순간은 곧 누군가의 판단과 숨겨진 비난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이성은 말한다.
“그럴 리 없어, 그냥 넘겨도 돼.”
하지만 감정은 느릿하게 말꼬리를 감는다.
“그래도 혹시 몰라. 이상했잖아, 뭔가.”
그 순간 나는, 마치 느린 속도로 조여오는 능구렁이에게 감긴 듯한 기분이 들었다.
제자리에서 꿈틀대는 마음을 조용히 조여오는 것.
숨통은 아직 막히지 않았지만, 그 촉감이 분명히 느껴지는 상태.
빠져나오려고 애쓸수록 더 단단히 조여오는 감정.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그건 증거 없는 감정이었고, 내가 이상해 보일까 봐 두려웠다.
하지만 나는 분명히 알았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건 사실이 아니라, 상상이 만들어낸 의심의 늪이라는 걸.
그리고 그 늪에 내가 너무 자주, 너무 익숙하게 빠지고 있다는 걸.
어느 날은 결심했다.
의심이 올라올 때마다 한 발짝 물러서 보기로.
“그럴 수도 있어” 대신, “아닐 수도 있어”를 먼저 말해보기로.
내가 감정을 믿기 시작하면, 현실은 그 감정의 모양대로 왜곡된다는 걸,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아서.
나는 아직도 가끔 그 능구렁이와 마주친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더 빨리 알아차릴 수 있다.
이 감정은 지금 나를 삼키려는 중이라는 걸.